겨울 나무
도종환
잎새 다 떨구고 앙상해진 저 나무를 보고
누가 헛살았다 말하는가 열매 다 빼앗기고
냉랭한 바람 앞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누가 잘못 살았다 하는가
저 헐벗은 나무들이 산을 지키고
숲을 이루어내지 않았는가
하찮은 언덕도 산맥의 큰 줄기도
그들이 젊은 날 다 바쳐 지켜오지 않았는가
빈 가지에 새없는 둥지 하나 매달고 있어도
끝났다 끝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실패했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
이웃 산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걸 보면서도
지킬 자리가 더 많다고 믿으며
물러서지 않고 버텨온 청춘
아프고 눈물겹게 지켜낸 한 시대를 빼놓고
-시집 《부드러운 직선 》창비시선 177. 1998
裸木
유창섭
칼바람 눈밭에서도
나무는 당당하다
꽃을 피워내며 몸을 낮추고
잎을 거느리며 가지를 늘어뜨리고
열매를 키우며 몸을 숙이던
나무는
잎도 열매도 모두 내려놓고
겨울날부터
차가운 바람
살이 터지는 추위에도
더욱 몸을 꼿꼿이 세우고
어찌 당당히 맞설 수 있는지
욕심도 버리고
빈 몸이 되면
떳떳할 수 있다는 걸
침묵으로 말한다
(유창섭·사진작가 시인, 1944-)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어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둣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음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지하의 뿌리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나무도 아닌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五友歌
尹善道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빛이 맑다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때가 많은도다
맑고도 그칠 때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어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둣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음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지하의 뿌리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나무도 아닌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치니
밤중의 광명이 너만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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