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9월의 시 몇 수

opal* 2023. 9. 1. 18:21


9월 첫날의 시


                     정연복

어제까지 일렁이는
초록물결인 줄만 알았는데

오늘은 누런 잎들이
간간히 눈에 뛴다.

쉼없이 흐르는
세월의 강물따라

늘 그렇듯 단 하루가
지나갔을 뿐인데

하룻밤 새 성큼
가을을 데리고 온

9월의 신비한 힘이
문득 느껴진다, 
 

9월이 오면

                   안  도  현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을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9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9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위 시는 2005.09.02에도 있음)



9월의 기도

                    
정  연  복

시원한 바람이 분다고
너무 들뜨지 않게 하소서

마치 우리들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혹독한 무더위가 있었기에
신선한 가을도 있음을 알게 하소서

참된 기쁨은
슬픔 너머 찾아온다는 것

고통과 인내의
긴 터널을 통과하고서야

삶은 성숙되고 열매 맺힘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이렇게 살게 하소서

                        이  해  인

가을에는
따뜻한 눈물을 배우게 하소서.
내 욕심으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소리 없이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맑고 따뜻한 눈물을 배우게 하소서.

가을에는
빈 가슴을 소유하게 하소서.
집착과 구속이라는 돌덩이로
우리들 여린 가슴을 짓눌러
별 처럼 많은 시간들을 힘들어 하며
고통과 번민 속에 지내지 않도록
빈 가슴을 소유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풋풋한 그리움하나 품게 하소서.
우리들 매 순간 살아감이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
누군가의 어깨가 절실히 필요할 때
보이지 않는 따스함으로 다가와
어깨를 감싸 안아 줄수 있는
풋풋한 그리움하나 품게하소서.

가을에는
말 없는 사랑을 하게하소서.
사랑 이라는 말이 범람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간절한 사랑을 알아주고 보듬어주며
부족함조차도 메꾸어줄 수 있는
겸손하고도
말없는 사랑을 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정녕 넉넉하게 비워지고
따뜻해지는 작은 가슴 하나 가득
환한 미소로 이름없는 사랑이 되어서라도
그대를 사랑하게 하소서.

참고로
'9열의 시 모음'은
2007년  9월1일자에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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