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새벽에 집을 나선다.
06:00. 승차. 2주 만의 참석인데 몇 달 만에 보이는 얼굴들도 있어 더 반갑다.
08:00. 양평의 ××× 휴게소. 오는 동안 비는 그치고, 밥 생각이 없어 미역국만 훌훌 마신다.
10:00. 백성동 도착. 56번 국도의 내면 창촌리에서 들머리를 잡아 문암산을 올라 백성동으로 하산 예정이었는데,
창촌리를 지나치는 바람에 백성동에서 역으로 산행하기로 하고 하차하여 길옆의 안내판을 보니 문암산(1146.4m)과
석화산(954.5m)이 한 줄기로 가까이 있어 석화산으로 먼저 오른다. 콘크리트 포장도로에 쌓인 눈은 차바퀴에 다져지고 얼어,
위로 눈 녹은 물이 흐르니 유리알 만큼이나 반질대며 미끄러워 그냥은 도저히 밟을 수가 없다.
빙판인 포장도로를 끝내고 눈 쌓인 숲으로 들어서서 앞 사람들 따라 가는데 성큼 성큼 만들어 놓은 발자국의 보폭이 넓어
그것도 쫓아가기 힘들다. 보폭을 좁게하며 눈을 밟으니 발 하나가 푸욱 빠진다.
러셀(russell-앞서가는 사람이 눈을 밟아 다져가면서 나아가는 일) 하는 선두는 얼마나 힘들까?
10:40. 계곡을 건너 경사가 급한 오르막에 매어놓은 밧줄을 잡고 오르는데 한 발자국을 떼어 놓으면 두 발작만큼
뒤로 미끄러지며 손이 땅으로 간다. 오를수록 안개가 많아 수묵 담채화 같은 분위기는 좋으나 적설량이 많아 힘이 배로든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뒤로 미끄러지며 엎어지기를 서너 번, 나만 그런 게 아니라서 서로 쳐다보며 웃느라 재미도 있다.
11:00.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에 앞에 가던 일행이 보기에 안쓰러웠던지 스패츠를 빌려주신다. 우선 고맙다 하고,
뒤에서 발자국만 따라다니느라 일부러 안 가져왔노라 했다. 안내를 하려는지? 하얀 개 한 마리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람들을 따라 오른다. 다리 길이만큼 다 빠져도 긴 다리를 가진 나 보다 잘도 오른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엔 바람에 날려 쌓인 눈이 많아 깊은 곳을 피해 옆으로 오르니, 낙엽과 함께 미끄러지기도 한다.
그냥 걷기도 힘든 오르막에 복병이 참 많다. 눈이 많은 곳에선 아이젠도 도움이 안 된다. 그나마 날씨가 춥지 않아 다행이다.
이렇게 많은 눈 속에서 날씨마저 춥고 바람이 불면 어쩔 뻔 했나?
11:30. 앞 사람들과의 차이를 많이 내며 낑낑대고 올라섰는데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으니 이곳이 정상인가 보다.
흐린 날씨와 안개로 가시거리가 짧으니 전망은 전혀없고 숲 속의 나무만 겨우 보인다. 길도 없는 곳을 눈을 헤치며 올라섰건만
표지석도 없고,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노란바탕의 화살표 판에 ‘하산 길 2.5km, 남은 시간 1시간 30분’이란 글만 써 있다.
바위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노송들이 많아 이런 저런 모양의 나무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후미대장님 도착하여 함께 내려서는데 밧줄을 잡고 절벽 같은 돌 틈사이로 내려서는 하산 길 또한 만만치가 않다. 이곳을 내려서서 다시 문암산으로 오르는 걸까?
11:55. 비탈면에 심겨져 사방이 어두운 잣나무 조림지. 나무에서 나무로 이어 매어놓은 굵고 흰 밧줄을 잡고 내려서는
경사도가 급한 내리막은 제동도 안 걸리며 한 동안을 저절로 미끄러지며 초고속으로 내려가진다. 앞에서 내려서시는 한분은
쉴 새 없이 엉덩방아를 찧는다. 어짜피 줄을 잡아야 내려갈 수 있으니 뒤로 서서 내려서면 엉덩방아는 피 할 수 있는데 말이다.
12:00. 조림지를 다 내려서니 ‘석화산 0.5km, 창촌리 1.5km’ 이정표, 당연히 능선 따라 직진 하는 걸로 생각 했는데
좌측 아래로 표시지가 눈 속에 꽂혀 있어 후미대장이 선두에게 연락하니 하산 하라는 답을 받는다. 엥?
이제 겨우 열두신데 벌써 하산이 그럼 문암산은 어찌되고? 오는데 걸린 시간만 해도 4시간이나 걸렸는데 두 시간 산행하고
벌써 하산? 이렇게 짧은 산행하려고 이곳까지 왔단 말인가?
눈이 녹아 질척대는 좁은 길을 그냥 내려서자니 조금은 아쉬워 Love story의 주인공은 못 될망정 넓은 눈밭에 온 몸으로 도장 찍고,
벌목하여 쌓아놓은 나무 위에 누워 보기도 하고, 가져온 것 그대로 가져 갈 수 없다며 일행이 꺼내 주는 간식을 먹고,
깨끗한 눈 그냥 두고 오기 아까워 길도 아닌 곳에 마구마구 발자국을 남기며 내려서니 12:30에 운두령 국유림 영림사무소에 닿는다.
다 내려서서 선두에 섰던 분께 물으니 겨울산행 사고 없으면 다행이란다. 러셀 하느라 힘들었나보다.
종일 날씨가 흐려 시계를 보지 않고는 분간이 안 된다.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2시간 30분.
창촌교 다리 옆에 차 세워놓고 부쳐주는 해물 파전으로 간단히 점심요기 하고,
왕복에 소요되는 긴 시간이 조금은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귀가행 차에 오른다.
2006. 2. 14.(火). 홍천 석화산( 문암산과 같은 산이 아님)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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