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日記

네 번째 오른 태백산.

opal* 2006. 1. 31. 14:56

 

비나 눈이 오겠다는 예보를 듣고 집을 나서니 나목 가지 끝에 빗방울이 맺혀있다.

 

오늘 산행 중에 눈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05:30. 출발.

 

07:50. 차가 이상하다며 통화 하는 기사님의 목소리에 잠이 깨어 밖을 보니 잔뜩 흐린 날씨에 강원도 땅의 산과 들판은

은빛 세계로 변하고 도로는 빙판으로 변해 많은 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못 낸다.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밖의 세상은

구경하기 좋은데 차가 이상하다며 속도를 못 내니 불안과 걱정으로 맘대로 표현들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09:00. 영월의 어느 국도변 휴게소 마당에서 된장국으로 아침식사. 차는 먹은 것도 없는데 한 시간쯤 달리고 나니

제대로 속도를 내며 정상으로 달린다. 눈꽃 핀 높은 산과 산자락 아래로 흐르는 남한강 따라 구불구불 달리는

도로변 나뭇가지의 눈꽃을 보고 앞자리 사람들 이제야 감탄사를 내 뱉는다.


11:15. 화방재 도착. 5시간 45분이나 걸렸다. 차에서 내리니 가느다란 눈발이 내리며 바람이 분다.

꼭 일 년 전인 작년 2월1일에도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하며 바람이 몹시 불어 생애에 제일 추운 고생을 했던 생각이 나는데

오늘도 바람이 불면 어쩌지? 땀을 흘리며 언덕을 치고 올라 숲 속으로 들어서니 어제 밤에 내린 눈이 너무 깨끗해 밟기가 아깝다.

낙엽송 사이로 넓게 깔린 산죽나무의 파란 잎 위에 쌓인 눈이 곱고 아름답다. 쌓인 눈의 무게가 무거울 텐데 잘 지탱해준다.


11:40. 고갯길의 무사 안전을 위해 태백산 산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는 당집인 산령각을 지나니

숲 속에 안개가 끼어 마치 동화속의 雪國 같다. 아낙네들의 감탄 섞인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이 맛으로 산에 오겠지?

발목까지 빠지는 눈은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아 밟아도 뽀드득 소리가 없지만  오르막길에 자꾸 뒤로 미끄러지는 모습이

힘들어 보였던지 오늘의 후미대장이 손을 잡고 이끌어 준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벌써부터 힘들어 하다니.


유일사 입구에서 올라오며 만나는 삼거리를 통과하고 돌 위로 눈이 쌓인 오르막을 올라 우측위로 철망 안에

기계로 깎아 세운 삼층석탑을 본 후 유일사 쉼터에 내려서서 뒤에 오는 일행 기다릴 겸 과일 간식을 먹는다. (12:30.)


 13:00. 해발 1531m의 주목 군락지. 온 몸에 하얀 눈꽃을 피우고 있는 주목나무들 한 그루 한 그루가 예술이다.

기암괴석이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없는 밋밋한 능선을 가진 산이지만 적설 등반의 겨울산행지로 손꼽히는 이유는

살아있는 나무나 고사목 한 폭 한 폭의 비경 때문이 아닐까? 머리에 흰 눈을 쓰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도 아름답지만

영하 몇 십도 추위의 칼바람과 맞서서 이겨내는 생명력이 돋보인다. 


올해로 네 번째 온 산행인데 작년엔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고 추워 어느 곳도 쳐다볼 수가 없어 땅만 바라보고 걸었더니

아름다운 모습을 이번에 한꺼번에 보여주려고 어제 저녁에 눈이 내렸나 보다. 모두들 멋진 설경 속에 묻혀 사진 찍기

바쁘다. 고도가 높은 곳으로 오를수록 나뭇가지에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상고대에게 시선을 빼앗겨 전진을 못한다.


13:40. 장군봉(1566.7m). 태백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 천제단 앞에 치성을 드리기 위해 놓았던 것이나 먹은 후의 쓰레기는

 각자 본인들이 깨끗이 치우고 갔으면 좋겠다. 흐린 날씨와 안개로 장쾌하게 뻗은 산줄기는 볼 수 없다.

 다음 백두대간 산행 때 오면 그때는 또 어떤 모습일까?


13:50. 영봉(1560m). 천제단은 이곳 제일 큰 둥근 울타리의 천제단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300m거리에 직사각형의 작은 장군단, 남쪽으로 300m거리에 울타리가 없는 하단, 세 군데 이다.

휴일에 오면 태백산이란 글자가 새겨진 긴 바위를 잡고 사진 찍기 위해 한바탕 난리를 치는데 명절 끝의 평일이라 그런지 호젓하다.

음복주? 한 모금을 얻어 마시고 문수봉 쪽으로 향하여 하단을 지나 다시 교목의 잡목 숲 雪國으로 들어선다.


14:05. 부쇠(1546.7m)봉. 우측으로는 소백산 쪽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로써 이곳부터 화방재까지는 다음 백두대간 산행 때 다시 걷게 될 곳이다. 해발 1462m의 문수봉 갈림길을 지나 얽히고 설킨 큰 나뭇가지의 상고대를 올려다보느라 목운동 하고,

하얀 수피를 자랑하는 자작나무의 상고대와  흰 눈이 만든 터널을 지나는데 전투기의 금속성 소리가 고막을 찢는다.


금천 갈림길을 지나 문수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오르막 길. 눈에 무릎까기 빠지며 후미대장 스틱 한쪽 끝을 잡고 이끌려 올라서니

그것조차 힘이 들어  팔이 아프다. 뒤에 오는 젊은 아낙 부러운 눈치로 바라보며 시샘하기에 "혼자 힘으로 다닐 때가 좋은 거란다."

움직이지 않고 있다 나와 그런지 몹시 힘이 든다. 오늘이 음력 정월 초사흘, 명절 지내느라 많이 먹어 체중이 늘었나?


14:55. 문수봉(1517m). 너덜지대의 바위 위에 돌탑 몇 기가 여기저기 분산되어있다. 사방이 탁 트인 곳이긴 해도

잔뜩 흐린 날씨라 먼 곳은 보이지가 않는다. 잠시 서서 빵조각과 초콜렛으로 시장기를 달랜다.

당골 광장으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나 소문수봉으로 가는 길은 바람이 막히고 눈도 더 많이 쌓여있어 설경이 더 실감난다.

다른 팀들은 천제단이나 문수봉에서 하산을 하여 우리 팀 일행의 발자국만 남아 있다.


15:15. 소문수봉(1485m). 이곳역시 바위들만 쌓여있는 너덜지대 봉우리. 멋진 모습 담느라 시간 보내고,

해발 1400여m의 높이를 유지하며 이어지는 능선의 하얀 나라에 홀려 서너 시간이 후딱, 체력의 한계로 지체할 수가 없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예술 속으로 다시 들어가 쌀가루 같이 포실 포실한 눈을 밟으며 맨 뒤에 처져 발자국 따라 내려선다. 


15:25. 1350m의 소문수봉 갈림길. 능선과 헤어져 골짜기로 들어서니 나무가 더 빽빽한 숲에 경사가 가파르다.

5분쯤 내려서니 1325m, 다시 5분을 내려서니 1235m, 고도가 뚝 뚝 떨어진다. 발자국 옆으로 눈 속에 파란 바가지가 보여 가보니

 샘물이 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줄행랑을 놓다가 두 번의 엉덩방아, 바위 위로 눈이 쌓여 잘못 딛으면 그대로 미끄러진다.


15:45. 해발 1134m, 당골 광장 1.3km, 마지막 이정표 지나, 전망대에서 우리가 내려온 곳을 잠시 올려다보고,

계곡의 다리 건너 쭉쭉 뻗은 울창한 낙엽송 숲 사이를 내려오니 축제를 치루고 난 당골 광장의 눈 조각들이 보인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모양의 조각품을 만드느라 수고하신 분들에겐 미안하지만 천상의 세계에 자연이 만들어준 예술 속에서 몇 시간을 지낸 후에 보니 작은 공간에 만들어진 인위적인 그 모습이 조잡스럽게 보인다. 사람 마음이란 이토록 간사하단 말인가?


16:15. 주차장 도착.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5시간.


2006. 1. 31.(火) 네 번째 오른 태백산 산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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