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장 석주
먼지가 되어 먼지의 꿈을 꾸며
수백 년 동안 잠들어 있던
내가 다시 일어난다면
수천 개의 일요일이 한꺼번에 오리라
친구들은 하나도 없고
내가 걸었던 길이며 집들 남김없이 사라져버린 뒤
나 길 잃고
길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 있게 되리
나를 감싸는 허탈과 슬픔의 이유를
누구에게도 묻지 않으리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새들은
내게 잊혀진 섬의 소식을 실어 나른다
난 한 번도 나 자신이었던 적이 없다!
새들은 나를 무서운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생선 내장에 썩는 악취로 진동하는 도시를 버리고
여름 태양이 바다 한가운데 피워낸 돌의 장미,
발 밑에 수많은 청어들을 기르는 섬으로 가리라
달빛 속에 잠든 해안을 거닐며
배고프면 해안을 뜯어먹고 벌거벗은 채 잠든다
심심하면 물 속을 헤엄치며 청어들과 놀고 몇 번 하품도 하고
마침내 내가 먹고 버린 청어가시들과 함께 실종되리라
푸른 달빛에 바래진 화석 되리라
썰 물
장 석주
저 물이 왔다가 서둘러 가는 것은
아무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너 너른 뻘 밭은
썰물의 아픈 속내다
저 물이 왔다가 서둘러 가는 것은
털어놓지 못한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저 뻘 밭에 여름 철새 무리의 무수한 발자국들은
문자를 깨치지 못한 썰물의 편지 같은 것
썰물이 자꾸 뒤를 돌아 보면서도
저렇게 서둘러 돌아가는 것은
먼 곳에서
누군가 애타게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은 천 개의 눈을 가졌다>
(2006.10.13. Diary 에 한 번 올렸던 글)
현 시인, 현 소설가, 현 문학평론가
1954. 1. 8 충남 논산 출생
1975 ≪월간문학≫ 시부문 신인상에 <심야>가 당선되어 등단
1979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날아라 시간의 포충망에 붙잡힌 우울한 몽상이여」가 당선되어 등단
1979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 「존재와 초월」 가작
고려원 편집장 역임
청하 편집발행인 역임
계간 현대시세계와 현대예술비평을 펴내며 기획과 편집을 주관
2002년 조선일보 이달의책 선정위원 역임
2003년 MBC '행복한책읽기'자문위원 역임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와 동 대학원에서 소설창작과 소설이론 강의
현재 명지전문대와 경희사이버대학교에서 시창작 연구와 문예편집론 등의 강의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햇빛사냥> 고려원 1979
시집 <완전주의자의 꿈> 청하 1981
시집 <그리운 나라> 평민사 1984
시집 <어둠에 비친다> 청하 1985
시집 <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 나남 1987
시집 <어떤 길에 관한 기억> 청하 1989
시집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 문학과지성사 1991
시집 <크고 헐렁한 바지> 문학과지성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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