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이 해인 - 바다 새, 고독을 위한 의자, 풀꽃의 노래.

opal* 2007. 9. 10. 16:45

 

 

바다 새

 

                      이 해인

 

이 땅의 어느 곳

누구에게도 마음 붙일 수 없어

바다로 온 거야

 

너무 많은 것 보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예까지 온 거야

 

너무 많은 말들을

하고 싶지 않아

혼자서 온 거야

 

아 어떻게 설명할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이 작은 가슴의 불길

 

물 위에 앉아 

조용히 식히고 싶어

바다로 온 거야

 

미역처럼 싱싱한 슬픔

파도에 씻으며 살고 싶어

바다로 온 거야

 

 

 

고독을 위한 의자

 

                      이 해인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바쁘다고 밀쳐 두었던 나 속의 나를

조용히 들여다 볼 수 있으므로

 

여럿 속에 있을 땐

미쳐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고독 속에 헤아려 볼 수 있으므로

 

내가 해야 할 일

안해야 할 일 분별하며

내밀한 양심의 소리에

더 깊이 귀 기울일 수 있으므로

 

그래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여럿 속의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

고독 속에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다

 

 

풀꽃의 노래

 

                        이 해인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좋아

 

바람이 날 데려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

 

하고 싶은 모든 말들

아껴 둘 때마다

씨앗으로 영그는 소리를 듣지

 

너무 작게 숨어 있다고

불완전한 것은 아니야

내게도 고운 이름이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만

서운하지 않아

 

기다리는 법을

노래하는 법을

오래 전부터

바람에게 배웠기에

기쁘게 살 뿐이야

 

푸름에 물든 삶이기에

잊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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