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유 안진 - 침묵하는 연습, 버리기 연습, 키,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opal* 2007. 9. 5. 23:04

 

침묵하는 연습

 

                       유 안진

 

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 일수록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말들이 얼마나 사람을 탈진하게 하고

얼마나 외롭게 하고 텅 비게 하는가?

 

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안에 설익은 생각을 담아두고

설익은 느낌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려 무르익히는 연습을 하고 싶다

 

다 익은 생각이나 느낌 일지라도 더욱 지긋이 채워 두면서

향기로운 포도주로 발효되기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침묵하는 연습

 

비록 내 안에 슬픔이건 기쁨이건...

더러는 억울하게 오해받는 때에라도

해명도 변명조차도 하지 않고

무시해버리며 묵묵하고 싶어진다.

 

그럴 용기도 배짱도 지니고 살고 싶다.

 

 

버리기 연습

 

                       유 안진

 

몸에 안 맞는

옷가지를 버리듯

분에 넘치는 꿈을 버린다

 

이 빠진 접시도

곁들여 버리듯

풀기 죽은 오기를 버린다

 

잘라 내어도 자라나는

대밭의 죽숙 같은

외통 고집을 버리고

 

사람 한 번 잘못 본

이 두 눈을

후비어

우물파서 버리고

 

 

 

                유 안진

 

부끄럽게도

여태껏 나는

자신만을 위하여 울어 왔습니다

 

아직도

가장 아픈 속 울음은

언제나 자신을 위하여

터져 나오는

 

얼마나 더 나이 먹어야

마음은 자라고

마음의 키가 얼마나 자라야

님의 몫도 울게 될까요

 

삶이 아파 설운 날에도

나 외엔 볼 수 없는 눈

삶이 기뻐 웃는 때에도

내 웃음 소리만 들리는 귀

내 마음 난장인 줄

미쳐 몰랐습니다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유 안진

 

값 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시는 것을

 

그래서 들꽃 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그래서 하늘의 눈금과 땅의 눈금은

언제나 다르고 달라야 한다는 것도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