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타고 싶은 날
김 재진
이제는 낡아 빛바랜
가방 하나 둘러메고 길을 나선다
반짝거리는 레일이 햇빛과 만나고
빵처럼 데워진 돌들 밟는
단벌의 구두 위로 마음을 내맡긴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떠나는 친구 하나 배웅하고 싶은
내 마음이 간이역
한 번쯤
이별을 몸짓할 사람 없어도 내 시선은
습관에 목이 묶여 뒤돌아 본다
객실 맨 뒤칸에 몸을 놓은
젊은 여인 하나
하염없는 표정으로 창 밖을 보고
머무르지 못해 안타까운 세월이 문득
꺼낸 손수건 따라 흔들리고 있다
친구에게
김 재진
어느 날 네가
메마른 들꽃으로 피어
흔들리고 있다면
소리 없이 구르는 개울되어
네 곁에 흐르리라
저물 녘
들판에 혼자 서서
네가 말없이 어둠을 맞이하고 있다면
작지만 꺼지지 않는 모닥불 되어
네 곁에 타오르리라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로
네가 누군지를 위해 울고 있다면
손수건 되어 네 눈물을 닦으리라
어느 날 갑자기
가까운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안타까운 순간 내게 온다면
가만히 네 손 당겨 내 앞에 두고
네가 짓는 미소로 위로 하리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 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 누구나 혼자 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 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진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짜피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고 할 수 없는 수 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 몸에 바람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1955 대구 출생
계명대 기악과 졸업
1976년 < 외로운 식물의 꿈 >으로 조선일보와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1985 <<시인>>에 시 <어느 60대에게> 발표
<<오늘의 시>> 동인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누가 살아 노래하나> 시인사 1987
< 실연가 >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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