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김 재진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기차 타고 싶은 날, 친구에

opal* 2007. 10. 15. 14:54

 

 

기차 타고 싶은 날

 

                                    김 재진

 

이제는 낡아 빛바랜

가방 하나 둘러메고 길을 나선다

반짝거리는 레일이 햇빛과 만나고

빵처럼 데워진 돌들 밟는

단벌의 구두 위로 마음을 내맡긴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떠나는 친구 하나 배웅하고 싶은

내 마음이 간이역

한 번쯤

이별을 몸짓할 사람 없어도 내 시선은

습관에 목이 묶여 뒤돌아 본다

객실 맨 뒤칸에 몸을 놓은

젊은 여인 하나

하염없는 표정으로 창 밖을 보고

머무르지 못해 안타까운 세월이 문득

꺼낸 손수건 따라 흔들리고 있다

 

 

친구에게

 

                  김 재진

 

어느 날 네가

메마른 들꽃으로 피어

흔들리고 있다면

소리 없이 구르는 개울되어

네 곁에 흐르리라

 

저물 녘

들판에 혼자 서서

네가 말없이 어둠을 맞이하고 있다면

작지만 꺼지지 않는 모닥불 되어

네 곁에 타오르리라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로

네가 누군지를 위해 울고 있다면

손수건 되어 네 눈물을 닦으리라

 

어느 날 갑자기

가까운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안타까운 순간 내게 온다면

가만히 네 손 당겨 내 앞에 두고

네가 짓는 미소로 위로 하리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 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 누구나 혼자 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 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진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짜피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고 할 수 없는 수 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 몸에 바람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1955 대구 출생  
       계명대 기악과 졸업  
1976년 < 외로운 식물의 꿈 >으로 조선일보와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1985 <<시인>>에 시 <어느 60대에게> 발표  
       <<오늘의 시>> 동인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누가 살아 노래하나>    시인사  1987
< 실연가 >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