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잎
도 종환
가을 가고 찬 바람 불어 하늘도 얼고
온 숲의 나무란 나무들 다 추위에 결박당해
하얗게 눈을 쓰고 발만 동동 고르고 있을 때도
자세히 그 숲을 들여다보면
차마 떨구지 못한 몇개의 가을잎 달고 선
나무가 있다 그 나무가 못 버린 나뭇잎처럼
사람들도 살면서 끝내 버리지 못하는
눈물겨운 기다림 같은 것 있다
겨울에도 겨우내 붙들고 선 그리움 같은 것 있다
아무도 푸른 잎으로 빛나던 시절을 기억해주지 않고
세상 계절도 이미 바뀌었으므로
지나간 일들을 당연히 잊었으리라 믿는 동안에도
푸르른 날들은 생의 마지막이 가기 전 꼭 다시 온다고
죽은 줄 알았던 가지에 잎이 돋고 꽃 피고
설령 그 꽃 다시 진다 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살아 있기 때문에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 생도 짙어져간다는 것을
믿는 나무들이 있다
살아 있는 동안은 내내 버리지 못하는 아픈 희망
저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푸르른 그리움과 발 끝 저리게 하는 기다림을
낙 엽
도 종환
헤어지자
상처 한 줄 네 가슴에 긋지 말고
조용히 돌아가자
수없이 헤어지자
네 몸에 남았던 내 몸의 흔적
고요히 되가져 가자
허공에 찍었던 발자국 가져가는 새처럼
강물에 담았던 그림자 가져가는 달빛처럼
흔적없이 헤어지자
오늘 또 다시 떠나는 수 천의 낙엽
낙엽
파도와 갯벌 사이
도 종환
쌓았단 흩어 버리고 쌓았단 흩어 버립니다
모았다간 허물어 버리고 모았다간 허물어 버립니다
파도와 갯벌 사이에 찍은 흔적처럼
결국은 아무 것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만났단 헤어지고 만났단 헤어집니다
구름과 하늘이 서로 만났던 자리처럼
결국은 깨끗이 비워 주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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