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김 광섭 - 산. 성북동 비둘기, 가을.

opal* 2007. 10. 31. 06:49

 

 

 

                       金  珖燮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업뎄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들만 남겨놓고 먼 산 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지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 봐

지구처럼 不動의 자세로 떠난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좋게 엎데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게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 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神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 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 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高山도 되고 名山도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성북동 비둘기

                                         김 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一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를 입에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가을

 

                            김 광섭

 

여름 하늘이 밀리면서 훤해지는
가을 높은 하늘에서
흰 빛깔이 내리니
젊음과 꿈의 푸른 빛이
널리 건너편으로 날린다
천지 허전하여
귀뚜라미 마루 밑으로 기어들고
가뭄에 시달린 가마귀들 빈밭에 모여서 운다

서풍 찬 바람에 나무 잎새들이 힘없이 진다
장미 꽃잎이 우시시 지는 소리에 가슴이 울린다
피는 꼽다 지는 꽃을 따라가는 것이 더 많다
갈대와 같이 조용히 생각하는 철
돌도 생각에 잠든 빛
산이 익어서
산마다 단풍이 들며 단풍이 빨갛게 타서
풀지 못한 염원의 祭石 위에
피를 흘리며 딩군다

기러기가 칼칼 울며 고향하늘을 향해 간다
따라 못 가는 서러움
꽃보다 짙은 단풍의 강토
싸늘한 바람과 가냘핀 햇빛에
뉘우치며 혼자 생각는 가을
잊어버린 노래가
구름에 흘러가는
병든 향수의 길

서러운 세월이 가고서도 서러운 세월이 겹쳐서
인간 천년의 꿈이
한 마리 산새만도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