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박 용 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은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 만큼이 인생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박 용 재
사랑하지 않으면
산도 계곡도 물도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으면
너의 싱그런 가슴도
팽팽한 엉덩이도
애인들의 이빨도 눈물도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으면
네가 아끼던 자동응답기도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죽음의
예감도 보이지 않는다
3 박 4 일간 시골에 간다던 사람
그렇게 지구의 하오를
산책하러 갔던 사람
그대의 자동응답기는 앵무새처럼
3 박 4 일만을 되풀이하고 있구나
사랑하지 않으면 너의 목소리도
쓴 웃음도, 지리산의 몸도, 눈물도
너의 우연한 죽음도 보이지 않는다.
봄밤의 편지
박 용 재
꽃들이 툭툭 떨어져
대지의 품에 안기는 봄밤
낡은 볼펜으로 편지를 쓴다
그대와 걸었던 길들을 따라
자욱하게 먼지를 일으키며
바람의 떼들이 달려오고
그대를 사랑한다던 서투른 맹서도
바람처럼 달려온다.
세월 속으로 꽃들은 조용히 왔다가 갔다
이 쓸쓸한 봄밤 내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를 그냥 곁에 두고 싶은
편안함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듣던 노래
함께 가던 영화관의
퀘퀘한 냄새를 잊지 못한다.
그대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일상이 기억 속에서 재빠르게 지나간다.
과거로부터 편지들이 배달되고
다시 그대에게 답장을 쓰는 것은
내가 지고 가야할 운명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그 짐을 덜어줄 동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벽이 저만큼 등불을 켜고
걸어오는 봄밤
그대의 깨질 듯한 웃음소리가 그립다
박 용 재
강릉 출생.
1984년 `심상'으로 데뷔.
성균관대 대학원 공연예술학 전공.
시집 `조그만 꿈꾸기'`따뜻한 길위의 편지' `우리들의 숙객'`불안하다 서 있는 것들'
희곡 `담배 피우는 여자' 뮤지컬 극본 `고래사냥' `하드 락 카페'
무용 극본 `객인'등. 저서 `뮤지컬감상법'
현 스포츠조선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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