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를 채우면서
천 양희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걸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천 양희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산을 넘어 버렸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강 넘어 버렸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집까지 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걸 위해 다른 것 다 버렸지요
그 땐 슬픔도 힘이 되었지요
그 시간은 저 혼자 가버렸지요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었지요
오래된 가을
천 양희
돌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나 본 적이 있는가
새벽 강에 나가 홀로
울어 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 해 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 같이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바람 속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한 사람을 나 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이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 간다
(2005/12/9, '퍼온글, 스크랩'에 올렸던 글)
1942 부산 출생
경남여고 졸업.
1966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1965 ≪현대문학≫에 박두진의 추천으로 <정원(庭園) 한때>, <화음(和音)>, <아침>을 발표하여 등단.
1996 문학사상사 주관, 제10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수상작 : 단추를 채우면서>
1998 현대문학사 주관, 제43회 현대문학상 수상 <수상작 : 물에게 길을 묻다>
2005 제13회 공초문학상 수상자 <수상작 : 시집 ‘너무 많은 입’>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평민사 1983
시집 <사람 그리운 도시(都市)> 나남 1988
시집 <하루치의 희망> 청하 1992
시집 <마음의 수수밭> 창작과비평사 1994
시집 <오래된 골목> 창작과비평사 1998
잠언시집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1998
단편 소설 <하얀 달의 여신> 1999
시집 <너무 많은 입> 창작과비평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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