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일기예보에 신경이 곤두선다.
"이번 겨울 한파 절정". "서울 아침 기온 영하 11.6` C". "한낮에도 영하의 날씨". "동파 주의".
3년 전 겨울, 내 평생 제일 큰 추위를 태백산에서 맛 보았는데 오늘 또 그런 건 아닌지?
"태백의 정기를 듬뿍 보내줄테니 올 한 해도 즐건 일만 있으라"며 어제 산에서 새해 덕담을 보내준 친구,
태백산 산행하며 얼굴이 따가워 혼났다는 정보를 주기도 해 중무장으로 준비하고 나섰다.
신설되거나 또는 확장, 직선화시킨 길이 예전의 오지인 태백 다니던 길이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 산간지역의 구불구불 도로는 어쩔 수 없어 멀미 증세를 나타내는 이도 여전히 있다.
생각보다 일찍 화방재 도착(10:10)하여 산으로 오르니 꼬드득 꼬드득 얼은 눈 밟는 소리가 재미있다.
스틱 꽂히는 소리도 덩달아 쌔액 쌔액 보조를 맞춘다. 눈(雪)에 반사되는 강한 빛이 청명한 날씨를 반증한다.
사길령 매표소를 지나고 산령각을 지나니 땀이 뻘뻘,윈드자켓은 가방에 넣은 채 차에서 내렸어도 추운줄 모른다.
바람이 없으니 따뜻하게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길은 이미 나 있어 눈에 빠질 일은 없으나,
길 옆 산죽 위로 소복히 쌓인 예쁜 눈 모습을 담느라 무릎까지 빠진다.
"언니의 저 열정을 누가 막어? 정말 대단해." 뒤에 오던 멋쟁이 일행이 한마디 하며 앞으로 추월 한다.
백두대간 마루금인 이 길은 오늘로 몇 번 째인지 이젠 한 손 갖고 모자를 것 같다.
태백은 겨울 산행지로 알맞아 추운 계절에 많이 왔었다.
좌측에서 함백산이 인사하고 사진 찍어 달라 조르며 계속 쫓아오나 나무가지들이 훼방을 놓는다.
한 시간 더 지나 유일사 쉼터(11:20). 온 몸을 다 들어낸 함백산을 찍어 주며 다시 한 번 인사 나눈다.
눈 꽃 보러 온 많은 사람들의 행렬 뒤에 따라 오른다. 나무에 핀 눈 꽃은 안 보이고 발에 밟히는 눈만 많다.
주목 군락지의 나무들도 눈 이불을 벗은 채 서 있다. 오를수록 상큼한 날씨가 눈을 더 희게 만든다.
정상이 가까워 오니 가느다란 가지 끝에 매달린 설화가 군데 군데에서 모습을 들어낸다.
전에 본 모습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지만 아쉬운대로 눈(目)이 즐거워 모습을 담는다.
입체감을 나타내며 함백산 옆으로 이어져 뽐내고 있는 산 줄기들의 조망이 압권이다.
장군봉에서 천제단으로이어지는 능선에서의 날아갈 듯한 칼 바람,
속 눈섭까지 하얗게 고드름이 달리는 매서운 추위를 예상했더니... 전혀 아니올씨다다.
평일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인파도 적다. 정상석 부여잡고 먼저 찍히겠다는 아우성도 덜하다.
나뭇가지의 하얀 눈과 천제단의 검은 돌이 대조를 이루는 모습을 찍다 보니 정상까지 간간히 보이던 일행들이 아무도 안 보인다.
세련미 넘치는 여인, 긴 산행은 이제 꾀가 난다더니 자신이 선택한 등산로 찾아 내려 갔나보다.
태백산 첫 산행 날, 일행들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인파 속에 묻혀 천제단 정상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쩔쩔매던 생각이 난다.
가 본지 오래된 반재로 하산해 짧은 산행 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자작나무 숲과 마루금에 미련이 있어 문수봉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세 번째 제단 지나 부쇠봉 앞에서 백두대간 마루금과 아쉬운 작별을 한다.
멋진 주목나무와 천제단 봉우리 돌아보며 앞 봉우리에 오르니,
빤히 보이는 문수봉이 1.2km라는 큼지막한 숫자, 파출소와 소방서 전화 번호가 적혀 있는 안내판이 있다.
능선따라 내려서니 문수봉 갈림길 이정표. 아니 이게 어떻게 된거지?
이곳에 표시된 숫자는 문수봉 1.9km로 표시되어 있다. 둘 중에 하나가 분명히 틀렸는데 어느게 맞는 걸까? 불과 3분 거리 사이다.
아니면 위에서 눈으로 바라보는 거리와 걸음으로 걷는 거리를 나타냈음일까?
사진까지 찍었으니 내가 잘못본 것은 아니겠지?
신갈나무와 자작나무의 고목이 많은 능선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상고대가 있었으면 금상첨화 일텐데. 아쉬운 마음을 간직한 채 잠시 쉬어 물 한 모금 마신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가 지났다. 어쩐지 배꼽시계가 울리더라니.
셔터를 누르니 낯선 여인들이 지나가며 디카냐고 묻는다. 본인은 추워서 필카를 가져 왔단다.
주머니 속에 난로와 카메라가 동무하며 같이 왔다하니 끄덕인다.
문수봉에서 태백 정상과 일행을 찍어 달라기에 받아 들고 보니 파노라마로 겨우 상반신만 찍힌다.
메뉴를 고치라 했더니 들고만 다녔지 만질 줄 모른단다.
지리산 노고단보다 10m 더 높은 문수봉, 사방으로의 조망이 멋져 쉽게 내려닫질 못한다.
망경사를 품고 천제단을 이고 있는 태백에서 대간 줄기 따라 함백산으로 시선을 옮기며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돈다.
능선과 계곡, 나무와 흰 눈이 대조를 이룬 비경,
어느 때는 산수화로 보이던 산들이 오늘은 한폭의 서양화다. 굵고 힘차게 텃치한 붓자국이 선명하다.
문수봉과 소문수봉 거리는 500m, 문수봉에서 400mm 거리에 이정표가 있다.
소문수봉이 100m 거리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 거의 다 이 갈림길에서 당골로 내려간다.
혼자 소문수봉을 찾으니 1465m가 표시된 작은 정상표지목 기둥 혼자 함백의 많은 철탑들과 정답게 얘기 나누고 있다.
해발 높이는 문수봉보다 50m 낮지만 조망은 여전히 시원스럽고 좋다. 기념을 남기고 싶은데 아무도 없다, 방법이 생각난다.
백두대간 종주시 부봉에서 처음 시도했고, 동악산에서 등산객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다 할 수 없이 또 한 번,
세 번째 찍어 보는 Self. 아쉬운 대로 얼굴과 기둥의 숫자가 나타났으니 증거는 확실하니 재미 있다.
능선따라 내려가는 등산로에 발자국이 안보여 되돌아 이정표 앞에서 당골로 향했다. 계곡이라 쌓인 눈이 더 많고 가파르다.
등산로 옆으로 매어진 줄을 잡고 엉거주춤 내려가는 모습들을 보니 관광으로 온 사람들이 미처 아이젠을 준비 못한 것 같다.
좁은 내리막에 봅슬레이 타듯 엉덩이 썰매 타는 등산객들은 재미 있단다. 산 위에서 보낸 긴시간을 만회하느라 초고속으로 달렸다.
넓어진 임도에 내려오니 푸대자루 썰매타기를 즐기는 어른들이 많다.
당골 광장엔 눈축제 준비가 한창, 어디서 그리 많은 눈을 가져 오는지 눈조각 만들 눈을 차로 실어다 쌓고 있다.
붐빌 주차장을 예상하여 영월을 오가는 31번 도로, 큰 길가에 차를 세워 놓아 한 참을 걸었다.
산행 시간 5시간은 내게 딱 알맞은 시간. 사진 찍는 시간이 포함된 여유로운 시간. 오늘 하루도 감사 드린다.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희귀하고 아주 멋진 노송 한 그루를 오는 길에 만났다 . 오전에 지나가며 눈인사만 나누었던 나무다.
귀가 시간이 일러 잠깐 차 세우고 찰칵. 어느 유명한 제약회사의 주인공이란다.
이 소나무 뒤로 보이는 암릉이 멋진 단풍산 산행을 기대하며 귀가행 차 안에서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