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이 영하권 날씨라는 예보.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
옆지기 날씨 춥다며 자제를 권유하지만, 새해 첫날 더 큰 추위에도 다녀 왔으니 더이상 말리지 못한다.
서울 아침 기온 영하 9도, 체감온도는 영하 10도를 넘겠단 소리 듣고 새벽 시간 집 나서니 바람이 심하다.
차에 올라 졸음으로 부족한 잠 보충하고 나니 차창 안 쪽에 성애가 두껍게 얼어 밖이 안 보인다.
계방산,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과 홍천군 내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
한라, 지리, 설악, 덕유, 다음으로 남한에서 다섯 번째 높은 산, 두 번인가 다녀온 산이다.
마지막 다녀 온게 지난해 2월 말 경, 일년이 채 안 되었다. 그 땐 바닥에만 눈이 있었다.
1월에만 응봉, 백운, 덕유, 계룡, 한라, 태백산을 다녀 왔으나 눈다운 눈, 멋진 설경 맛이 부족했다.
산세가 좋은 고봉에 비해 유명세는 덜하지만 설화가 아름다워 겨울에 찾는 산, 오늘은 또 어떤 모습일지.
31번 국도상에 있는, 지리산 성삼재와 맞먹는 높이의 산행 깃점 운두령(1089m)도착(09:30).
차에서 내리니 찬 바람이 냅다 뺨을 후린다.
가방에 넣었던 윈드 자켓을 도로 꺼내 입고 계단을 오르니 얼굴이 따갑다. 금방 발이시려 온다.
십 여분을 오르니 커다란 나목에 하얀 옷을 입힌 상고대가 잠시 푸른하늘 배경으로 황홀경을 이룬다.
능선의 등산로엔 바람이 지나가며 눈을 휩쓸어다 쌓아 놓아 무릎까지 빠지는 곳도 있다.
선답자들의 발자국 따라 오르고 또 오르니 백두대간 종주 때 겨울 산행 생각 난다.
정상 높이가 1,577m이니 들머리 운두령과 표고차는 488m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계속되는 오르막이라 안에서는 땀이 뻘뻘, 밖에서는 얼굴이 얼얼. 1496봉까지 오르기가 힘들다.
햇살과 바람에 황홀경 상고대도 잠시, 가지를 감싸고 얼어 붙었던 雪花도 모두 떨어져 눈 위에 뒹군다.
뒤에 오던 여인 사진 담는 틈을 이용해 추월한다. 모자 아래 나온 귀밑머리가 입김에 하얀 상고대로 변했다.
능선에 쌓인 눈은 모자 챙을 이루고, 산죽 위에 살포시 내린 눈은 이불 노릇을 하고 있다.
우측 나뭇가지 사이 멀리 하얀 모자를 쓴 정상이 보인다. 앞 봉우리도 덩달아 하얗다.
뒤로 보이는 산 줄기들이 모두 입체적으로 그려진 화폭이다. 헬기장을 지나 1,496 봉, 거침없이 조망되는 온 세상이 다 雪國이다.
새하얀 눈꽃 자태가 푸르디 푸른 하늘과 궁합을 이루며 화사하고 화려하다. 어느 가을 하늘이 이보다 더 푸를까.
사진 담느라 지체되니 함께 온 산객들은 이미 정상에서 꼬물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강풍에 눈보라가 날린다. 겨우내 못 보던 멋진 모습에 취해 추위도 잊는다.
고생 끝에 얻은 보람일까? 힘든 만큼 기쁘다. 정상은 가까우나 올라설 줄 모른다.
오늘 처음 보는 일행 한 사람, 내 느낌과 같은지 사진기들고 분주하다. 작은 디카의 한계를 느낀다.
계방산 정상. 조망이 아름답고 멋진 산, 남으로 흐르는 능선에서 올라오는 이들도 있다.
능선으로 하산해도 되는데 내려가는 사람들이 없다. 같이 온 일행들 모두 하산하고 안 보인다.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줄기가 장쾌하다. 멀리 노인봉이 하얗다, 황병산은 더 하얗다.
선자령은 설원을 이루고 있겠지, 잠시 백두대간 생각에 잠긴다.
내 사랑 백두대간. 어딜 가나 마루금만 보이면 마음에 소용돌이가 인다. 맘이 설렌다. 잊을 수가 없다.
주변의 산들은 많은 이름을 갖고 있건만 안타깝게도 내겐 무명산이다. 알아볼 수 없어 미안하다.
계방산 정상에서 이어지는 오대산 두로봉에서 비로봉을 거쳐 양수리까지 뻗은 줄기가 한강 정맥이란다.
남으로는 보래봉, 회령봉, 흥정산, 태기산, 북으로 소계방산, 문암산, 맹현봉, 개인산, 방태산이 있다 하나 구별을 못하겠다.
이런 저런 모습 몇 장 더 찍고 하산을 서두른다.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줄기따라 작은 봉우리 넘어 500m정도 거리에 주목 군락지.
수령 많은 붉은 줄기의 주목, 적목이 반긴다. 굵은 나무는 우리네 서너 명이 손을 잡아야 둘레를 감쌀 수 있다.
하늘이 안 보이게 빽빽한 가지들은 위로는 설화, 안으로는 상고대에 휩싸여 있다.
어두워야 할 속가지에 눈에 반사된 빛이 조명 역할을 해 주어 아주 훌륭하다. 감탄을 금치 못한다.
요리조리 봐가며 사진 담느라 시간 지체. 주위에서 한 사람이 보조한다. 하산 약속시간(14:30) 맞춰 즐긴다.
노동계곡으로 이어지는 하산 길은 잠시 급경사, 적설량도 많아 아이젠이 무색하다.
비탈에 절로 미끄러지며 엉덩이가 닿으니 그대로 썰매없는 썰매를 탄다.
일어서서 내려가다보면 또 엉덩방아, 가방이 벼개 노릇을 해 준다. 엉덩방아 찧은김에 엉덩이 썰매로 내려간다.
장갑이 젖어 손이 시리다. 비상용과 두꺼운 장갑이 있으나 카메라 자주 꺼내야하니 불편하다.
산위에서 늦어진 시간 만회 하느라 하산 때는 초고속이다.
산간벽지 노동리 계곡 옆 이승복 생가, 깊은 산 속 외딴 집 하나, 볼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1968년 12월 9일, 무장간첩 5명이 이승복, 엄마, 두 동생 살해, 아버지와 형은 중상 입히고 도주.
"공산당이 싫어요." 신화의 영웅, 승복이의 외침과 단칸 초가집은 그 시절 반공교육의 일환으로 단장 되었지만,
후에 조작된 사건으로 알려졌다.
승복이네 집을 지나니 지난해 산행 때, 이 근처 빙판에서 팔에 골절상 입고 석달간 산행을 못했던 동료의 생각이 난다.
그때는 얼음이 녹아 흐르며 길이 반질반질하던 대로였으나 지금은 눈으로 덮여있다.
골짜기 바람이 매섭게 인다. 바닥의 눈들이 일어나 춤을 춘다. 산정보다 더 차갑게 와 닿는다.
내리막 골짜기 다내려서서 걷는 평지는 지루한 느낌이 든다. 길 옆 양지의 하얀 눈에 낙서를 한다.
"자갸, ♡", 내 사랑 자기는 바로 산이라는 뜻인데 남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 할까?
마을에 내려오니 커다란 큰 회오리가 일어 눈보라가 앞을 막으며 정지 시킨다.
무슨 바람이 이리 심하담? 중얼거림이 끝나니 주차장, 언제나 그렇듯이 맨 마지막 도착 인물이 된다.
따끈한 국과 밥 한 술 후루룩. 가방 안의 뜨거운 물과 간식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춥기도 하지만 셔터 누르기 바빠 쫄쫄 굶다 내려 왔으니 맛 없을리 없다.
준비해준 분께 감사드리며 차에 올라 우물쭈물 하는 동안 영동고속도로 속사 IC.
오후 세시 출발하니 정체 현상은 없다. 요즘은 계속 귀가 시간이 이르다.
날씨가 추워 빨라진 행동은 귀가 시간까지 영향을 끼친다.
오늘은 친구들 모임이 있는날, 지난 달도 산행요일과 겹쳐 불참했다. 멋진 설경 담아 전송하며 친구들한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산행 중의 춥고 배고픔은 멋진 겨울설경 맛으로 대신하고, 하산하여 따뜻하고 배부르니 스르르 찾아오는 이 있어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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