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日記

화방재(어평재) ~함백산~은대봉~ 싸리재(두문동재)

opal* 2008. 1. 27. 13:53

 

함백산(1573m).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의 경계, 사흘 전 다녀온 계방산(1577m) 다음으로 여섯 번째 높은 산.

화방재(960m)를 중심으로 태백산(1567m)과 마주보며 백두대간 마루금을 이루는 산이다.

두 번의 만남이 있었던 추억은 온갖 야생화가 만발했던 천상화원, 산행을 더디게 하라며 유혹하던 곳.

제철 과일 찾듯, 겨울 산행맛 찾아 나서는데 오늘은 어떤 모습의 만남이 될지...

 

집을 나서서 커다란 느티나무 가지 끝에 걸린 섣달 스무날 달과 인사 나누고 차에 오른다.

유명세 값인지, 휴일이라 그런지  다른 날 보다 인원이 많아 대형 버스 두 대에 빈 자리가 없다. 

 

네 시간 반 걸려 화방재(어평재) 다가가니  왕복 2차선 중 한 차선은 대형 버스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차례를 기다리던 차들은 고개마루에 올라 짐짝 내리듯 사람들을 쏟아 붓고 꽁지 빠지게 달아난다.

눈축제가 열리고 있는 태백산을 찾는 이들과 함께 화방재는 잠시 波市를 이루다 양쪽 산으로 스며든다.

 

초행길 같으면 이곳에서 종주자들과 함께 알록 달록한 리본들이 나풀거리는 대간길 따라 오르겠지만 

체력 안배를 위해 만항재까지 차로 이동한다. 눈 쌓인 길은 Cal소비가 많아 빨리 지치기 때문이다.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과 신라 선덕여왕 5년(서기 636년)에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정암사(淨巖寺)도 들려보고 싶지만

언제나 마음 뿐, 5대 적멸보궁인 정암사엔 수마노탑(水瑪瑙塔:보물 410)과 열목어 서식지(천연기념물 73)가 있다.

언젠가 기회가 오리라 믿으며 화방재에서 고한으로 가는 길(414번)에 있는 만항재에 내린다. 

광산이 많아 전성시대를 이루던 때 운반을 위해 만든 길은 높은 곳까지 연결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개 만항재(1330m), 이곳에도 차들이 많이 와 있다.(11:20)

많은 구조물을 이고 있는 함백산 정상이 클로즈업 되며 등산객들이 간간히 오르고 있다.

넓은 임도 옆 낙엽송 빽빽한 눈쌓인 숲은 흑과 백 이등분으로 나뉘었다.

신록의 계절 5월 중순, 종주 중 숲 속 의자에서 잠시 초록 공기 마시며 땀 닦던 추억 어린 곳이다.

 

적설량이 많아 대간길로 가질 못하고 임도 따라 가다 등산로로 접어드니 많은 등산객들 한줄로 오른다.

한 발자국이라도 옆으로 잘 못 딛으면 무릎은 고사하고 허벅지까지 빠질 지경이다.

조금 더 돌더라도 제설차가 지나간 흔적이 있는 넓은 임도 따라 오르는 사람들도 많다. 

추월할 수 없는 급경사 오르막, 속도 빠른 사람은 뒤에서 답답해하며 씩씩 거린다.

어딜가나 사람 많이 모인 곳엔 별 사람 다 있다. 맨살의 어깨와 무릎 나온 민소매와 반바지 차림에 배낭 멘 등산객도 눈에 띈다.

옷을 껴입고도 추워하는 엄동설한에 웬 객기? 하는 눈초리로 모두들 한 번씩 쳐다본다.

 

임도를 만났다 헤어져 올라선 넓은 쉼터, 돌아서니 발아래 대한 체육회 선수촌 마당이 하얗고, 온 세상이 하얗다.

수리봉 뒤로 태백산 천제단에 인사하니 문수봉 돌탑도 손짓한다. 열흘 전엔 이곳을 종일 보며 산행했으니 반대 입장이 되었다. 

정상을 쳐다보니 쪽빛 하늘과 하얀 눈, 그 사이에 알록달록 꼬물 꼬물, 바위와 사람들이 무리지어 흩어질 줄 모른다.

맑은 날씨가 오늘도 축복을 내려준다.

 

해발 1572,9m 함백산 정상. 태백산 보다 조금 더 높은 곳, 마냥 걸으니 만항재에서 1시간 반.

화방재부터 걸어온 선두주자는 벌써 몇 십분 전에 추월했다. 바람이 심하지만 한참을 머물렀다.

사방을 둘러본다. 좌측 위 방향으로 철쭉 많던 두위봉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구별을 못하겠다. 

남쪽으로는 태백산(1567m)이 우뚝솟아 소백산 방향 대간 길 마루금을 감추어 놓았다.

 

태백에서 시작된 시선은 대간줄기 따라 이곳에서 잠시 주춤, 각도를 달리하여 북쪽으로 주목군락지를 지나

중함백, 은대봉, 그 뒤로 금대봉(1418m). 겹겹이 쌓인 산줄기 중간, 한一 字로 획을 그으니 비단봉(1303m) 자태가 곱상하다.

초원을 이루던 고냉지 넓은 채소밭은 하얗게 칠해져 설원을 이룬다.

능선에 늘어선 풍력 발전기들은 눈보다 더 희다. 전망대에서 이쪽을 바라보며 감상하던 매봉산이 정겹게 쳐다보며 웃는다.

"저기 선자령이 보인다" 옆에서 누군가 외친다. 풍력 발전기가 있으니 선자령인줄 착각하나 보다. 이젠 볼 수있는 곳이 많아졌다.  

 

매봉산을 내려서면 피재, 삼수령이라 불리는 고개다. 한강, 오십천, 낙동강으로 갈라져가는 빗물의 운명이 정해지는 곳.

그곳에서 시선이 멈춘다. 대통령 당선자의 선거 공약인 대운하건설이 어떻게 이루어 질 줄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이 강 저 강의 물줄기를 이어 놓겠다 했으니 국토를 훼손 시키는 것은 아닌지,

낮은 곳을 향해 순리대로 흐르던 물이 역류 하는건 아닌지, 이 나라 국토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아름다운 금수강산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국민 한 사람의 작은 소망이 스친다.

 

추위가 엄습해와 떠날 준비 하는데 중계탑 쪽 아래에서 부르는 소리 들린다.

오랜만에 참석, 같이 산행 한지가 오래된 지인, 어묵과 계란 넣어 끓인 뜨거운 라면 한 그릇 담아 준다.

온 몸이 얼어오는 추위에 언 손을 녹여가며 끓인 따뜻한 정이 얼마나 고맙던지.

극구 사양함에도 추위 많이 탄다며 작은 Hot pack까지 쥐어주니 또 이렇게 신세를 지며 산다.

 

먹고난 가방 챙겨 부지런히 북사면 내려가니 차가 오를 수 있던 헬기장은 눈 속에 동면하고,

더 가파르게 내려가니 눈 속에 빠지는 정도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많은 등산객들의 왕래가 있었건만 다져지기는 커녕 워낙 많은 양의 눈이라 포슬 포슬하다. 

어느곳은 발자국 폭이 좁고 골이 깊어 길이만 길면 봅슬레이 해도 좋겠다.

 

이정표 기둥이 목까지 파묻혀 겨우 글씨만 보인다. 어느 부위까지 빠질지 몰라 아무 곳이나 딛을 수가 없다.  

어느곳은 발자국 대로 두 발을 벌리고 뛰어 내려야 한다. 양 발 모양대로 하나씩 딛게 나란히 파여 있다. 

양 발자국 사이의 눈은 높은 채 얼어 있어 엉덩이 한 번 부딪치니 무척 아파 얼얼하다.

철조망 옆의 내리막에 모두들 엉거주춤, 잔뜩 긴장된 걸음이라 몸의 균형이 잘 안 잡힌다.

 

힘들게 내려서니 힘든 삶이 여기도 있다며 옆에서 나무들이 외친다. 한 나무에 生死가 공존하는 주목 군락지.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푸른 하늘 배경으로 우뚝 우뚝 솟아 있다. 나무에게 삶의 방식을 배운다.

 

작은 봉우리 하나 넘기를 무릎까지 빠지며 일렬 행진이다.

나무 울타리 쳐진 커다란 주목 한 그루 있는 쉼터, 사람 반 눈 반으로 편히 쉴 자리 조차 없다.

돌덩이를 둥글게 둘러 놓아 잠시 쉴 수 있던 돌 의자들은 눈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다. 

치켜 올려다 보이는 중함백 봉을 향해 오르다 말고 돌아보니 함백산이 아쉬운듯 허리굽히며 내리 쳐다본다. 

많던 사람들 다 내려가고 하얀 소복 입은 채 쓸쓸히 서 있다.

봉우리에 오르니 좌측에 넓은 임도가 눈에 살짝 감추어지고 우측으로 매봉산 풍력발전기들이 가까이 다가온다.

 

조망이 시원스런 바위 제 3쉼터(15:05),

늘어진 가지와 푸른 기상을 자랑하는 가문비 사이로 내다보니 은대봉이 속살을 들어낸 채 빨리 오라 손짓한다.

작은 오르막 너댓 개를 솔직하게 보여주며 지루해 하지 말라고 미리 이른다. 녹음 옷 입었으면 못 볼 속살이다.

은대봉 뒤에 하반신을 살짝 가린 금대봉이 빨리 오면 자기도 만날 수 있단다.

 

중함백 내리막, 앞에 가는 사람 균형 잃으며 몇 번을 엉덩방아, 조금 가다 보니 그 앞 사람이 엎어진다.

앞 사람들 몸소 시범으로 주의 준다. 조금 가파른 오르막이나 내리막에선 정체현상까지 일어난다.

많은 사람 행렬이라 일행 알아보기도 힘들다. 어떤이 일부러 발자국 옆을 딛어보니 다리 하나가 다 묻힌다.

 

중함백산을 다 내려와 사거리 이정표  제 2쉼터, 현재시간 15:30,

싸리재(두문동재)에서 기다리겠다고 약속했던 차는 많은 눈으로 오를 수 없어 아래에서 기다린다는 연락에,

많은 사람들이 능선따라 대간 길 걷기를 포기하고 좌측 적조암 방향으로 하산 한다.

산행 시간도 예정시간보다 많이 걸리고 있다. 어평재(화방재)에서 산행시작 다섯 시간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탈출로로 내려가니 백두대간 길이 한적해졌다. 왼손은 고한에, 오른손은 태백에 걸치고 걷는다.

사람들이 덜 다닌 대간 길, 발자국 따라 걸으니 양쪽에 쌓인 눈 높이가 옆구리까지 차 오른다.

이렇게 많은 눈 속에 첫 발자국을 남긴이는 누구였을까? Russell 하신분들께 감사 드린다.

'함백산 금대봉, 야생화 군락지'라고 나무에 매단 플랭카드 아랫부분이 눈에 묻혀있다.

 

깨끗하고 고운 눈위로 여기저기 짐승 발자국이 나 있다. 꼭 꼭 찍힌 발자국 넓이가 손바닥만 하다.

무슨 짐승 발자국이 이렇게 아름다울까, 그나 저나 눈이 이토록 많으니 먹이를 어디서 구하지?

짐승들 위해서는 눈이 빨리 녹아야 겠는데 고산지대의 겨울은 길기만 할테니 걱정이 된다.

 

은대봉 오르기 직전 제 1쉼터(16:00).  정암사 안부. 발 아래가 태백선 철길 정암터널이다.

터널 우측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추전역이 있다. 8월 한 달 빼고는 늘 난로가 따뜻한 역이다.

눈과 바람이 빚은 예술 감상하랴,  발 하나 잘못 딛을까, 주변을 둘러 보지 못한 채 아래만 쳐다보며 걸어왔다. 

한줄기 흘린 땀 보충하느라 냉수 한 컵 들이킨다. 깊은 발자국따라 일렬로 줄서서 다니느라 맘대로 먹을 수도 없다.

정상에서 라면 안 먹었으면 지칠뻔 했겠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 전한다.

 

은대봉(상함백, 1442,3m), 2년 전에 없던 작은 정상석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어느새 그림자가 길다(16:35). 

전에 세워논 안내판엔 천의봉이라 씌여 있었다. 헬기장으로 넓고 큰 나무들이 둘려쳐 있어 조망은 별로다. 

발자국 없는 곳 택해 딛어 보니 늘어진 손 아래까지 다리 길이가 다 빠진다.

 

몇 발작 내 딛으니 갈색의 아주 보드라운 짧은 털옷 입은 금대봉(1418m)이 넓게 자리하며 나타난다.

한강 발원지인 儉龍水를 품고 있는 산이다. 마치 비단 같다. 이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내려서며 감탄하니 비단봉이 질투한다. 그 옆 매봉산(천의봉,1303m)도 그림같은 하얀 발전기를 자랑한다.

급경사 내리막, 깊은 눈에 다시 한 번 빠져가며 두문동재(싸리재, 1268m) 도착(17:05). 짧은 해길이가 저물고 있다.

 

금대봉과 함백산을 가르는 38번 도로 싸리재는 도로라기 보다는 설원이란 표현이 어울린다.

'두문동은 원래 북한 개풍군에 있던 지명, 개성 송악산 서쪽 자락 만수산과 빈봉산 두 곳에 두문동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 충신들이 조선 개국에 반대하며 저항하자 조선 태조는 두 곳의 두문동에 불을 질러,

살아남은 일곱명의 충신이 숨어든 곳이 정선의 고한 땅이었고, 이들은 두문불출 했다고 전해진다.'

 

키보다 큰 '두문동재 백두대간' 표지석과 작별 인사 나누고 눈 쌓인 도로를 구불구불 내려선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갯길이 지루한지 앞 선사람들 S字를 세로질러 가드레일 넘어 지름길을 만들었다.

길도 아닌 가파른 내리막을 눈속에 묻힌 낙엽과 산죽에 미끄러지며

가드레일 넘기를 서너 차레 반복하는 사이 나뭇가지 사이로 마지막 빛을 발하던 해가 숨어 버린다. 

 

두문동재에서 40 여분 내려오니 터널 간판이 보이고,  터널을 통과한 차들은 걸어 내려오는 사람들 약 올리듯 쌩쌩 달린다.

산행시간 이르면 금대봉까지 다녀올 생각 이었는데... 焉敢生心 !!!

 

눈에서 시작하여 눈으로 끝낸,  흙 한 번 못 밟은 채 원 없이 걸은 눈 길,

몇 년 동안 밟을 눈을 하루에 다 밟은 눈 산행이 되었다.   산행 소요시간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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