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채 밝기 전 출발(06:00)하여 영동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 유리는 두꺼운 성애 무늬가 밖과 차단된 세상을 만든다.
한 손을 펴 유리에 대보니 얼어 붙은 수증기들이 금방 녹으며 흘러 내린다.
밖의 환경에 따라 다섯 손가락과 손 바닥 만큼만 색을 달리하며 투영되는 모습이 활동사진 같아 재미있다.
구정도 지나고 2월도 어느새 한 순旬이 다 간다. 막바지 겨울을 호젓하게 맞기 위해 열흘 만에 다시 대관령(832 m)에 섰다.
영서와 영동을 구분 지으며, 우리나라에서 제일 낮은 기온을 대표하는 곳, 대륙 편서풍과 습기많은 바닷바람이 부딪쳐 많은 눈 내리면 교통두절 소식 가끔 들리는 곳. 아스팔트 포장 길만 빠꼼히 열려 있다.
'대관령 국사 성황당'이 쓰여진 키 큰 立石 , 선자령 등산 안내판 등이 쌓인 눈에 가려 윗 부분만 보인다.
눈目에 보이던 세상을 눈雪이 모두 덮었다. '모두 무죄'라던 시인의 글귀가 떠오른다.
하얀 설경이 눈부시지만, 터널이 뚫린 후 넓은 벌판으로 변한 옛 대관령 휴게소는 등산객들만 찾는 곳으로 변했다.
대관령 북부 휴게소 옆으로 가 기상 관측소 쪽으로 오른다. 넓던 임도는 바람이 옮겨다 쌓아논 눈으로 길이 엄청 높아 졌다.
쌓인 눈은 그대로 얼어 단단하나 옆으로 잘 못 딛으면 한 없이 빠진다. 찔러보니 스틱 하나 길이가 다 들어 간다.
길 옆 밧줄 매인 나무 기둥들은 위만 조금 보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느 것은 다 묻혀 흔적만 나타난다.
대관령에서 300m 이정표, YTN 촬영기자가 커다란 카메라를 장전하고 단체로 온 팀에게 들이대고 있다.
설원을 취재하러 온 모양이다. 콘크리트 포장 도로는 제설 작업을 하여 걷기에 편하나 길 옆에 쌓인 눈은 어깨 만큼 높다.
통신 회사 철탑을 가둔 철망 울타리, 기둥에 매어진 알록달록한 대간 표시 리본들이 바람에 나풀거린다.
"저 리본들을 보면 울긋불긋한 천이 걸린 성황당 생각이 난다"는 젊은 산우.
"오늘의 테마는 무엇으로 하실 건지요?" 산행 일기를 한 동안 안 쓰다 요즘 산행기 두 어번 썼서 올렸더니
"간결한 문체에 함축미가 돋보인다" 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젊은 산우, 옆에서 걸으며 묻는다.
"글쎄요, 쓸지 말지는 집에 가 봐야 알겠고, 미리 정하지 않고 그때 그때 산행 후 생각나는 대로 썼어요."
어떤 날은 막힘없이 이어저 생각 날 때가 있고, 어떤 날은 한 줄도 끼적대기 싫을 때가 있다.
백두대간 종주 시에는 메모지를 여러번 준비 했지만, 요즘은 그것도 꾀가 나 연필 쥐기도 귀찮다.
대관령 산신을 모신 국사 성황당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TV에서 보던 강릉 단오제 생각이 떠오른다.
대관령 옛 고속도로에서 북쪽으로 1km 거리, 大關嶺 國師 城隍 신위를 모신 제당이 있다.
大關嶺 國師 城隍堂(중요 무형 문화재 제 13호)은 강릉 단오제의 주신인 서낭신을 모시는 곳이다.
당 뒷쪽으로 산신당 위치, 제당은 기와를 얹은 작은 목조건물, '성황사'란 현판이 있다.
활과 화살을 메고 백마 탄 노인 국사 성황, 말고삐와 말채를 잡은 시종, 성황신을 호위한 앞 뒤 호랑이.
성황신 화상 앞에 대관령 국사 성황 지신의 위패가 안에 모셔져 있다.
매년 음력 4월 12일이면 금줄을 매고 제사 때에 걷는다. 음력 4월 보름, 강릉으로 위패를 모시고 갔다가
단오제 마지막 날 거행하는 송신제에 남대천에서 대관령으로 다시 모셔온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의 토속신은 범일국사라 하는데 국사 서낭과 그의 부인인 국사 여서낭 제사를 지낸다.
신라시대 강릉에서 태어나 국사 지위에 오른 범일 스님은 말년에 이곳에 머물며 불교 전파 후 입적하여 이곳 수호신이 되었다.
그의 부인이 된 여신은 강릉 정씨댁 처녀라고 하는데 처녀 아버지 꿈에 산신이 찾아와 자기 딸과 혼인하겠다 하여 물리쳤는데
어느날 딸이 산에 올라갔다가 호랑이에게 업혀갔다. 마을 사람들이 대관령 일대를 수색, 성황당을 지날 무렵
성황당에서 인기척이 나 들어가보니 정씨 딸이 서낭木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데리고 올 수 없었다.
아버지는 꾀를 내어 화가에게 부탁하여 자기 딸 모습을 그려 붙이자 딸이 떨어져 데려 올 수 있었다.
호랑이가 처녀를 업고 가 산신령과 혼인한 날이 음력 4월 15일 이라 이곳 사람들은 그날 제사를 지낸데서 유래,
향토 문화제인 강릉 단오제가 시작 되었다.음력 4월 15일 제관이 무녀와 함께 국사 서낭신께 성황제와 산신제를 올리고
굿을 끝낸 다음 신이 내린 신간목을 꺾어 강릉을 향하다 구산 서낭당에서 제를 지내고 여서낭신이 모셔진 강릉 國師女隍祠에
서낭신과 함께모셔 두었다가 단오제 전야제 때 대관령 산신각에서 서낭신을 불러 무녀가 신주를 모시고 제단으로 가는 행사이다.>
심한 바람을 연상하고 왔는데 생각보다 바람이 적으니 포근한 봄 날씨 같다. 등에 땀이 후즐근하게 밴다.
세멘트 길과 헤어져 나무가 있는 눈밭으로 들어서니 조림해 놓은 키 작은 가문비는 눈 이불 덮고 휴식 중이다.
언제 커서 바람과 맞설 수 있을런지. 찬 바람과 눈 쌓인 벌판을 걷노라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내용은 생각 날듯 말듯한
영화 '닥터 지바고'. 언젠가 몹씨도 춥던날, 태백산 장군봉에서 천제단 사이의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에도 생각 났었다.
영화에 나오는 세모난 악기 바랄라이카의 경쾌한 음률이 바람결에 들리는 듯하다.
새봉과 옆으로 늘어선 하얀 기둥 풍력 발전기들이 올려다 보인다.
하얀 풍차 사이로 정상에 군시설 있는 황병산(1407m)과 그 옆으로 산 전체가 온통 하얀 소황병산도 보인다.
두껍게 쌓인 눈 빝으로 물이 흐르는 습지에 빠져가며 소황병산과 노인봉을 오르고, 진고개까지 갔던 생각 난다.
낮길이가 짧은 12월 어느 날, 새벽 4시 반에 출발하여 해를 꼴딱 넘긴, 거리가 길어 10시간 산행을 했었다.
오늘은 곤신봉(1127m)에서 하산 한다. 소황병산 방향으론 적설량 많고 러셀이 안되어 통제 한단다.
눈 덮인 설원이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새봉을 오르다 돌아보니 열흘 전에 왔다가 산행 못한 백두대간, 능경봉(1123m)과 고루포기 산이 약 올린다.
지금은 러셀이 되어 있을까? 눈이 많아 산행을 못하다니... 대간 종주 시에도 없었던, 첫 경험 이다.
그 옆의 발왕산, 젖먹이 에미젖 모습 이다. 유선 만큼 여러 갈래의 슬로프를 자랑하며 봉긋이 솟아 있다.
꼭대기 전망대는 작은 젖꼭지. 산행 할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저 전망대 식당 벽을 살펴 보리라,
어느 시인 말대로 철들어 가는 녀석의 그 낙서가 아직도 있는지를.
아침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지인을 만났다, 발왕산엘 간단다. 지금 쯤 이곳 보고 있겠지? 마주 보며 웃는다.
새봉에 오르니 강릉시와 동해가 한 눈에 조망된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애매모호한 이 모습, 사방이 탁 트인 전망에 가슴 답답한 사람 있을까?
오르기만 하면, 날씨만 좋으면 이렇게 잘 보이는걸, 굳이 인위적인 전망대가 필요한 것인지?
날씨가 좋아 숲 길 사이로 보이는 능선 넘어 선자령 정상, 벌레 꼬물대듯 산객들의 움직임까지 보인다.
바람 심한 능선을 오르는 동안 선자령 찬사를 아끼지 않는 젊은 아낙들, 감탄하며 충력 발전기 배경으로 기념담기에 여념 없다.
네델란드 풍차, 스위스 설경, 히말라야 등 멋진 곳 줏어대며 모두 합쳐 놓은 곳 같단다. 이곳 저곳 모두 다녀오기라도 했듯이.
젊은 산우, 산 비탈에 객기 한 번 발동시키니 허벅지까지 빠진다. 두 발 모두 빠지니 얼른 빠져나오지 못해 힘들어 한다.
많은 눈을 기대했던 넓은 설원, 눈은 바람에 다 날리고 초원을 이루던 풀들만 누워 있다.
눈이 많으면 빠져서 힘들다 하련만, 없으면 없어 아쉬우니 사람 마음이란 참. 알다가도 모른다 했던가?
산행 시작 한 시간 사십 분 걸려 선자령(1157m) 도착. 강릉시와 평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능선에서 뻗어내린 계곡의 경관이 수려해 선녀가 아들 데리고 와 목욕을 즐겼다는 전설 있는 곳.
소백산 능선 칼바람을 연상 시키는, 사방으로 탁 트인 황량함이 있는 곳, 파란 하늘과 하얀 설원 사이의 바람이 오늘은 젊잖다.
많은 산들만이 둘레에 즐비하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벌판에 우뚝 세운 정상석은 혼자 있어도 크건만, 엎드린 친구 등에 올라 섰다.
전에 있던 작은 정상석 아담하고 예쁘던데, 갈 수록 커지는 표지석이 환경 친화적이지 않아 거슬린다.
태백에서 올라온 백두대간 줄기는 두타, 청옥산을 거쳐 이름 조차 없어질 정도로 망가진 자병산을 거친다.
석병산을 올랐다 내려 삽당령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이름 생소한 석두, 화란봉을 달린다.
이름도 요상스런 닭목재, 고루포기, 능경봉을 거친 후, 영동과 영서를 가르며 구름도 쉬어 간다는 대관령 넘어
오대산을 향하다 이곳에서 잠시 머무른다. 백두대간 주 능선을 이루며 표고차 317m로 길게 이어져 있어
trekking couse로 알맞은 곳. 바람이 심해 큰 나무는 자랄 수 없고 키작은 풀들의 세상이니 겨울에는 설원이요,
여름에는 초원이다. 간간히 만나는 나무들은 키가 작다. 키 큰 나무 없고 바람 심하니 눈꽃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풍력 발전 단지의 메카가 된 이곳, 쉬고 있는 것들이 간간히 눈에 띈다.
상표는 모두 외제인데 고장일까 쉬는 걸까? 모두 49기에 삼양목장 일대 4대를 함치면 53대란다.
많은 돈 투자 했을 텐데 방치되어 있는건 아닌지. 소음 없으면 동물들에겐 좋으나 고장이면 어쩌지?
선자령에서 곤신봉(1131m)으로 이어지는 대간 마루금은 많은 눈으로 밟을 수 없어 임도따라 걷는다.
길 옆에 쌓인 눈이 키보다 높다. 바람과 눈이 만든 멋진 작품들 감상하기 바쁘다.
평지에 가까운 넒은 임도 따르다 만난 나즈목 탈출로, 보현사로 갈 수 있는 가파른 계곡로 이다.
초지와 동해 일출 전망대까지 못 갈 바에야 이곳에서 하산 생각 했었는데 발자국 조차 없다.
대간 산행 아닐 때 하산 했었는데 지금은 적설량이 많고 러셀이 안되어 있어 곤신봉으로 향한다.
곤신봉(1131m)에서 백두대간과 작별 인사 나누고 U턴, 보현사 방향 능선으로의 하산은 초행길이다.
급경사에 적설량이 많아 서 있기만 해도 곤두박질, 다칠까 겁나 아예 주저 앉으니
가속이 붙으며 몇 십 m를 초고속 자동으로 미끄러진다. 워낙 가파른 곳이라 제동이 안 걸린다. 스릴이 느껴진다.
돌에라도 부딪칠까 겁을 냈지만 적설량이 워낙 많아 완충제 역할을 한다. 나뭇가지 조차 잡을 수 없게 빠르다.
아이젠이 무색하고 스틱도 소용 없다. 한 사람 미끄러지기 싫다며 옆으로 러셀을 시도하니 허리까지 빠진다.
나즈목에서 보현사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은 깊고 깊은 계곡인데 반해
이 곳은 능선으로 되어 있어 돌아 보면 장쾌하게 뻗은 대간 줄기가 잠시 올려다 보이기도 한다.
저곳은 초지일까 아님 각 방위 대로 마주 보이는 표지돌 있는 동해 전망대 쯤일까,
나름대로 계산하고 추억에 젖기도 하며 낮은 곳을 향해 내려서고 또 내려 딛는다.
눈 위에 철퍼덕 앉아 음미하는 간식 시간, 떡과 과일, 따뜻한 coffee가 한층 더 맛좋다.
힘듦 뒤의 휴식과 편안함, 짧은 시간이기에 더 행복한 순간, 이 맛을 어디에 비교하랴.
대간 종주 중 이런 여유 처음이라는 산객 있으니 얼마나 뛰어 다녔을까 싶다.
1000m가 넘는 곳에서 해발 가까이 내려딛는 능선은 지루함이 느껴진다.
大公山城址(일명 보현산성)를 지난 숲 속, 선답자들의 발자국 따라 오르 내리며 걷고 또 걷는다.
대공산성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13:50, 하산 종점까지 또 40분을 걸으니 下山만 2간 20분 걸렸다.
登山보다 下山이 더 힘든 산행 날. 산행 소요시간 5시간.
동해를 바라보며 산행 했으니 방앗간은 필수, 주문진 항에 들려 싱싱한 회 맛 즐기고 귀가행 차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