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26회(26구간.벌재~문복대~저수재~촛대봉~시루봉~싸리재)

opal* 2005. 12. 6. 08:55

 

05:30. 출발. 때 이른 겨울추위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이 영하권으로 차창에 하얀 성애가 예쁜 무늬를 만들어 밖이 안 보인다.

08:00. 박달재 휴게소. 얼음 위에 서서 흰 눈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는다.


09:30. 벌재 도착. 쌓인 눈을 밟는 힘든 오르막, 겉 옷 하나 더 입고 아이젠 착용하니 행동이 둔해지고

걸음걸이도 제대로 안된다. 힘들게 올라섰다 내려서니 지난번 하산 후에 간식을 먹던, 문복대 안내판 있는 자리다. 


10:00.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823m 봉우리. 힘겹게 올라서는 능선에 바람이 세차 발자국마다 눈보라를 일으키며

반사되는 빛에 눈이 부시다. 찬바람에 체감온도가 떨어지니 얼굴과 손이 얼어 카메라 배터리가 얼지않게 옷 속으로 감춘다.

처음부터 힘이 드니 ‘오늘 하루를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들목재까지 내리 꽂히듯 내려선다.


10:30. 다시 오르는 오르막의 눈길은 앞선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가기도 힘들어 어느새 땀이 흐르며 옷이 젖는다.

나무가 없는 바위에 올라서서 돌아보니 회색빛 공간이던 황량한 산들을 첫눈이 입체감으로 보이게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11:20. 문복대(1074m) 도착. 운봉산이라고도 하고, 지도에는 문봉재라 되어있다. 이제야 처음으로 만난 차디찬 표지석을

부여잡고 한 컷 찍고, 이십분 쯤 내려서니 좌측 멀리 목장인 듯 주황색 지붕 건물 몇 채가 흰눈 위 나무사이로 보인다.


11:55. 비포장도로의 넓은 임도. 저수재인가 했더니 '장구재, 저수재까지는 20분 걸림'하고 누군가가 친절하게도

노란 표지판을 꽂아 놓았다. 내려딛는 능선 좌측 아래엔 커다란 안테나와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이며,

측으론 구불구불 내려가는 포장도로가 쭉쭉 뻗은 낙엽송 사이로 보인다.


12:15.  충북과 경북의 경계인 지방도로 973번의 저수령(850m). '용두산 등산로 입구'라는 팻말이 방금 내려온 산을 가르키고,

길 건너 커다돌엔 저수령과 유래에 대해 새겨 놓았다. 단양 쪽엔 휴게소와 주유소가 있고 팔각지붕의 정자도 있지만

바람이 심해 쉴 수가 없다. 활과 화살 모양의 커다란 예천군의 관광 안내판 뒤에서 잠시 바람을 피해 뜨거운 물과 떡 간식을 먹는다. 


12:55. 촛대봉(1080m). 가파른 오르막을 다시 땀을 흘리며 올라서니 충북 단양에서 세워 놓은 까만 대리석에 흰 글씨로

새겨진 표지석이 있다. 우리가 지나온 능선들이 흰 눈으로 인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이정표에 있는 글자를 누군가가 ㅊ字를 ㅈ字로 점을 지워 깔깔대며 한참을 웃었다. 힘든 산행 중에 웃을 수 있는 기회다.   


13:10. 고비밭, 싸리밭을 지나 소백산 투구봉(1080m) 도착. 드디어 소백산이란 표현이 보인다. 아 그래도 여기까지 왔구나...

투구 모양의 커다란 삼각형 바위 하나가 서 있는 옆으로 설경이 좋은 전망대엔 바람이 심해 눈보라가 날린다.

가야할 건너편으로 아직도 또 다른 두 개의 더 높은 봉우리가 보인다.


13:30. 해발 1110m의 시루봉. 어느 산악인이 하얀 종이에 적어 코팅하여 나무에 묶어 놓았다.

앞 선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잔 나뭇가지 사이를 헤치며 힘들게 올라섰다 내려서고 다시 오르니

쾌청한 날씨의 파란 하늘과 흰 눈 사이의 빨갛고 노란 리본들이 더 산뜻한 모습으로 눈보라와 함께 나풀댄다.


14:10. 충북과 경북의 경계인 회색빛 능선을 계속 따라가다 처음으로 푸른 잎의 산죽을 만난다. 

우측의 경북 쪽으로 빽빽하게 조림된 잣나무 군락지를 20분 쯤 끼고 돌아 가파른 내리막을 눈에 미끄러지며 내려서니

투구봉 2.6km, 싸리재 950m 이정표가 서있는 배재(해발 950m)에 도착한다.


1057m의 봉우리를 오르는 능선엔 바람에 날린 눈이 쌓여 있어 푹푹 빠지는 눈길을 앞 사람들의 발자국만 그대로 밟으며 오른다.

멀리 장쾌하게 뻗어있는 높은 산들을 바라보며 저 능선들도 언젠가는 다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호연지기를 느낀다.


14:45.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와 싸리재(133.5m) 도착. 해의 길이도 짧고 눈길도 위험하여 오늘의 대간 길은 여기서 접고

하산을 서두르며 좌측 단양면 유황온천 방향의 등산로(2.7km)로 내려딛는다.

계곡은 이미 산 그림자로 어두워지고 바위 길은 눈에 덮여 스틱을 찍으면 그대로 스키타듯 미끄러지기도 한다.


15:00. 돌 길의 하얀 눈 위에 떨어진 아이젠 하나를 줍는다. 발자국이라곤 우리 팀 밖에 없으니 당연히 일행의 것이겠지...

주인을 찾고보니 바로 내 짝꿍 것. 바위 아래로 흐르는 물을 건너기도 하고 낙엽 반 눈 반인 길을 걷기도 한다.


15:30. 눈 덮인 돌 위에서 보기좋게 미끄러지며 나둥그라지는데 배낭이 많도와줘 다치지는 않고 손목만 조금 아프다.

물이 없는 곳이라 천만 다행. 물에라도 빠졌으면 얼마나 추울까? 추위에 얼 생각만 해도 아찔...

발자국이 이러 저리 나 있어 어느 길이 맞는 것인지 대강 짐작으로 방향만 보고 앞 사람 쫓아 내려서니 수풀이 정신없다.


15:45. 차가 기다려 주는 온천 앞으로 도착하니 높은 산엔 아직 햇살이 남아있다.

추운 곳에서 허겁지겁 늦은 점심을 먹고 귀가 행 차에 오른다.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6시간.


2005.12.6.(화).  백두대간 26구간을 종주하다.

        (벌재~문복대~저수재~촛대봉~시루봉~배재~싸리재-단양 유황온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