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이 성부 - 산경표 공부, 좋은 일이야, 벽소령 내음, 선 바위 드러누운 바위

opal* 2008. 3. 15. 13:53

 

 

 

좋은 일이야

 

                  이 성부

 

산에 빠져서 외롭게 된
그대를 보면
마치 그물에 갇힌 한마리 고기 같애
스스로 몸을 던져 자유를 움켜쥐고
스스로 몸을 던져 자유의 그물에 갇힌
그대 외로운 발버둥
아름답게 빛나는 노래
나에게도 아주 잘 보이지

산에 갇히는 건 좋은 일이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빠져서
갇히는 건 더더욱 좋은 일이야
평등의 넉넉한 들판이거나
고즈넉한 산비탈 저 위에서
나를 꼼꼼히 돌아보는 일
좋은 일이야
갇혀서 외로운 것 좋은 일이야

 

 

산경표 공부

 

                        이 성부

 

물 흐르고 산 흐르고 사람 흘러
지금 어쩐지 새로 만나는 설레임 가득하구나
물이 낮은 데로만 흘러서
개울과 내와 강을 만들어 바다로 나가듯이
산은 높은 데로만 흘러서
더 높은 산줄기들 만나 백두로 들어간다
물은 아래로 떨어지고
산은 위로 치솟는다
흘러가는 것을 그냥 아무곳으로나 흐르는 것
아님을 내 비로소 알겠구나!
사람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들 흘러가는지
산에 올라 산줄기 혹은 물줄기
바라보면 잘 보인다
빈 손바닥에 앉은 슬픔 같은 것들
바람 소리 솔바람 소리 같은 것들
사라져 가는 것들 그저 보인다

 

 

벽소령 내음

 

                      이 성부

 

이 넓은 고개에서는 저절로 퍼질러 앉아
막걸리 한 사발 부침개 한 장 사 먹고
남쪽 아래 골짜기 내려다본다
그 사람 내음이 뭉클 올라온다
가슴 뜨거운 젊음을 이끌었던
그 사람의 내음
쫓기며 부대끼며 외로웠던 사람이
이 등성이를 넘나들어 빗점골
죽음과 맞닥뜨려 쓰러져서
그가 입맞추던 그 풀내음이 올라온다
덕평봉 형제봉 세석고원
벽소령 고개까지
온통 그 사람의 내음 철쭉으로 벙글어
견디고 이울다가
내 이토록 숨막힘 사랑 땅에 떨어짐이여
사람은 누구나 다 사라지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씩 떨어지지만
무엇을 그리워하며 쓰러지는 일 아름답구나!
그 사람 가던 길 내음 맡으며
나 또한 가는 길 힘이 붙는다

 

 

선 바위 드러누운 바위

 

                           이 성부

 

외로움은 긴 그림자만 드리울 뿐
삶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고즈넉한 품성에 뜨거운 핏줄이 돌고
참으로 키가 큰 희망 하늘을 찌른다
저 혼자 서서 가는 길 아름다워라
어둠속으로 어두움 속으로 솟구치는
바위는 밤새도록 제 몸을 닦아
아침에 빛낼 줄을 안다

외로움은 드러누워 흐느낌만 들릴 뿐
삶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슬픔은 이미 기쁨의 첫 보석이다
외로움에서 우리는 살고 싶은 욕망을 터득한다
산골짜기에 또는 비탈에
누군가의 영혼으로 누운 바위는
금세 일어나서 뚜벅뚜벅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