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의 산들은 선線으로 말한다.
봄산의 능선들은 어느 계절보다 여리고 멀고 부드럽다.
여름철의 그것처럼 무디지 않고,
가을철의 그것처럼 날카롭지 않고
겨울철의 그것처럼 흐리지 않다.
그것은 여인의 젖가슴처럼 여리고,
그립도록 멀고, 그리고 졸리도록 부드럽다.
그래서 우리는 이 봄산의 능선에서 졸림 같은 휴식과,
여인의 젖가슴 같은 위안과,
오래도록 잃어버린 향수를 되찾는 것이다.
이른 봄의 산들은 또 다시 그 요술 같은 색깔로도 말을 한다.
봄산의 골짜기는 아무도 그 색깔을 말하지 못한다.
회색인가 하면 엷은 보라색이 감돌고,
보라색인가 하면 다시 연두색 아지랑이에 눈이 시려져 온다.
봄에는 산들이 그렇게 요술 같은 색깔로 말을 한다.
그리고 또 말한다.
봄의 산들은 무엇보다도 그 너그러운 기다림으로
다시 우리들에게 말을 한다.
봄의 산은 오만스럽게 위압하지 않고,
차갑게 안으로 침묵하지 않고,
험상궂게 우리를 시험하지 않는다.
봄은 기다림의 계절이다.
그것은 여름으로 가는 길섶 위의
너그럽고 덧 없는 축복의 계절일 뿐이다.
봄의 산도 마찬가지다.
바위 그늘에 남아 있는 잔설殘雪,
아직도 노란 잔디 위로 솟아오른 할미꽃 봉우리,
푸드 등, 환청처럼 흔적 없는 작은 산새의 날개 소리,
골골골 바윗돌 밑을 흘러내리는 차가운 시냇물소리,
내리는 듯 마는 듯 머리칼을 적시는 가는 이슬비,
그리고 좀 더 늦게는 온산을 물들이는 진달래꽃 무리와
무성하게 부풀어 오른 보리밭 위를 굴러가는 여린 바람결...
그 어느 것 하나라도 기다림 아닌 것이 있는가.
봄의 산들은 그렇게 부드럽고,
소리 없이 초조하지 않게 계절을 기다리고
또 너그럽게 계절을 떠나보낸다.
언제나 너그러운 기다림으로 말을 한다.
이 청준
'詩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 세영- 진달래꽃, 푸르른 봄날엔, (0) | 2008.04.09 |
---|---|
나 태주-목련부처 (0) | 2008.04.09 |
이 해인 - 봄편지, 봄 햇살 속으로, (0) | 2008.04.01 |
김 소월- 가는 길, 님과 벗, 님에게,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0) | 2008.03.31 |
진악산에서 (0) | 2008.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