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진악산에서

opal* 2008. 3. 24. 22:11

 


나무는

 

                                             류 시화

 

나무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 가지와 뿌리는 은밀히 만나고
눈을 감지 않아도
그 머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나무는
서로의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누가 와서 흔들지 않아도
그 그리움은 저의 잎을 흔들고
몸이 아프지 않아도
그 생각은 서로에게 향해 있다

나무는 저 혼자 서 있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세상의 모든 새들이 날아와 나무에 앉을
그 빛과
그 어둠으로
저 혼자 깊어지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새와 나무

 

                            류 시화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 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아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겨울나무

 

                         양 수창

 

날이 밝도록
울고 있었구나.
한 번 닫은 마음을
열 길이 없었구나.

강물도
굽이굽이 손을 뻗는데
닿을 수 없었구나.

돌아서서
돌아서서 흐느끼는
바람소리.

겨울 나무야,
밤새
토해낸 오열(嗚咽)이
가지마다 하얗게
눈꽃으로 피었구나

 

 

 

꽃마음 별마음

 

                             이 해인

 

오래 오래 꽃을 바라보면
꽃마음이 됩니다.

소리없이 피어나
먼데까지 향기를 날리는
한 송이의 꽃처럼.

나도 만나는 이들에게
기쁨의 향기 전하는
꽃마음 고운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싶습니다.

오래 오래 별을 올려다보면
별마음이 됩니다.

하늘 높이 떠서도
뽑내지 않고 소리없이 빛을 뿜어 내는
한 점 별처럼,
나도 누구에게나 빛을 건네 주는
별마음 밝은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싶습니다.

 

 

바위

 

                                           유 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忘却)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