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도 종환 - 오월 편지, 자목련, 지는 꽃 보며.

opal* 2008. 5. 3. 23:33

 

 

오월 편지

 

                              도 종환

 

붓꽃이 핀 교정에서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떠나고 없는 하루 이틀은 한 달 두 달처럼 긴데
당신으로 인해 비어 있는 자리마다 깊디깊은 침묵이 앉습니다
낮에도 뻐꾸기 울고 찔레가 피는 오월입니다
당신 있는 그곳에도 봄이면 꽃이 핍니까
꽃이 지고 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며 찔레가 피는 철이면
더욱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
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여
오래도록 서로 깊이 사랑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면 꼭 가슴이 메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
너무도 아프게 헤어져 울며 평생을 사는지 아는 까닭에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고 오늘처럼 꽃잎에 편지를 씁니다
소리없이 흔들리는 붓꽃잎처럼 마음도 늘 그렇게 흔들려
오는 이 가는 이 눈치에 채이지 않게 또 하루를 보내고
돌아서는 저녁이면 저미는 가슴 빈 자리로 바람이 가득가득 몰려옵니다
뜨거우면서도 그렇게 여린 데가 많던 당신의 마음도
이런 저녁이면 바람을 몰고 가끔씩 이 땅을 건너갑니까
저무는 하늘 낮달처럼 내게 와 머물다 소리없이 돌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이여.

 

 

자목련

 

                    도 종환


너를 만나서 행복했고
너를 만나서 고통스러웠다

마음이 떠나버린 육신을 끌어안고
뒤척이던 밤이면
머리맡에서 툭툭 꽃잎이
지는 소리가 들렸다

백목련 지고 난 뒤
자목련 피는 뜰에서
다시 자목련 지는 날을
생각하는 건 고통스러웠다

꽃과 나무가
서서히 결별하는 시간을 지켜보며
나무 옆에 서 있는 일은 힘겨웠다
스스로 참혹해지는
자신을 지켜보는 일은

너를 만나서 행복했고
너를 만나서 오래 고통스러웠다

 

 

 

지는 꽃 보며

 

                                 도 종환

 

꽃도
윤회하는 걸까
지는 저 꽃잎들은
이제 업을 다 벗고 가는 걸까

돌아오는 새들은
삼천대천 세계 다 지나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온 것일까

나만 아직도
못 벗고 있는 걸까
업의 그물
육도윤회의 이 굴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