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곤히 잠들어 코 골고 있어야 할 새벽 두 시 반, 셔틀버스도 쉬는 시간이라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6.5km를 한 시간에 걸었으니 자신이 생각해도 엄청 빠른 속도로 걸었다. 영시암을 거쳐 수렴산장까지 또 한 시간,
너무 빨리 걷는 바람에 수렴산장에서 잠시 휴식 후 뒤에 온 사람들과 함께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인다.
지난해 처음 산행 때는 한계령에서 올라 중청, 소청지나 봉정암에서 걸었지만, 이번엔 반대로 백담사 입구부터 걸어
수렴산장에서 용아장성릉을 오른다. 좌측으로 오르는데 길도 없는 비탈면은 얼마나 가파르던지. 앞 사람 신발이 얼굴에
부딪칠 정도의 급경사, 낙엽에 빠지고 돌멩이 굴러 떨어지는 급경사다. 스틱은 아예 사용할 수 없어 돌과 나무 잡으며
반경 1 m 정도 비추는 렌턴에 의지하고 낑낑대며 네 발로 간신히 기어 오르니 갑자기 부모님 생각,
평소엔 잊고 지낼 때가 많다가도 육신이 힘들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버지, 건강한 체력 물려주신 두 분께 늘 감사 드린다.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이번에도 용아장성 걷기 위해 나섰어요,
아버지 닮아 건강한 딸 이번에도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오르고 있어요.
눈과 눈을 마주 할 순 없어도 늘 제 곁에 계시는 아버지, 아버지도 아시죠? 아버지 앞에선 늘 어린애 이고픈 딸의 마음을,
아버지 사랑해요. 길도 없는 이런 곳엔 위험 요소가 많아 낙오되지 않으려고 남들 뒤 잘 따르고 있어요.
대형 버스로 하나 가득 온 사람들 중 아버지 딸이 제일 고령이에요. 아버지 딸 장하죠?"
비좁고 위험한 바위틈을 일렬로 차례 기다려 내려섰다 능선에 오르니 날이 서서히 밝아 온다.
좌측으로 공룡능선, 우측으로 서북능선이 나란히 어둠 속에 실루엣으로 나타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설악산에서 가장 위험하고 멋진 용아장성, 웅장함과 위용 떨치며 모습을 보이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멋진 곳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지난번 다녀온 말레지아 키나바루 산은 높긴 하지만 이런 멋과는 또 다르다.
한 자리에 마냥 앉아 기암괴석 감상만 하다 내려서도 하루 해가 아깝지 않겠다.
검푸르게 시작된 여명은 좌측 공룡능선 위로 걸친 조각구름 윗쪽부터 붉게 물들이며 밝아 오지만,
용아의 늠름한 기암 능선은 앞만 보고 가라며 일출 장면을 가려 놓는다.
어둡고 위험한 곳이기도 하거니와 시간 제한이 있어 사진 찍는 일을 많이 자제하며 걷는다.
드디어 바위와 바위 사이를 뛰어 건너야 하는 뜀바위(일명 홈바위). 특별히 초청된 대장 도움을 받으며 차례로 뛰어 건너야하는데
앞에 섰던 여인 무서워 도저히 못뛰겠다며 머뭇거리고 시간 보낸다. 아무리 무서워도 돌아서 갈 우회로가 없는
덩치 큰 이쪽 저쪽 바위는 긴 절벽을 이루고 있다. 양쪽 바위 사이가 아주 많이 넓진 않지만 아래를 보면 낭떠러지라
고소 공포증을 느끼게 되어 더 무섭다. 앞에서 걷던 남자 한 사람도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무서워 하다 간신히 건넜단다.
도우미 대장이 건너편 바위에서 손 잡아주며 돕긴 하지만 그래도 겁이나 앞에있는 분께 도움을 청했다.
" 죄송하지만 저 좀 도와 주실래요? 건너자 마자 바위 위로 오르지 마시고 옆에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먼저 건넌 키 크신 분, 자신의 다리를 넓게 양쪽 바위에 걸치고 교각 역할을 해 보지만 별 도움이 안된다.
양쪽 바위가 비좁아 두 사람이 서 있기도 힘든 곳, 겁이 나기도 하지만 스릴 또한 넘치는 곳이다.
일년 전에 왔다가 시간이 부족해 못 건너고 하산 했던 옥녀봉과 뜀바위 궁금증이 이젠 다 풀렸다.
한 사람씩 차례 대로 건너다 보니 시간은 지체되고, 바위 위로 올라보니 바위 꼭대기에 죽은이의 넋을 기리는 표지 비석이 있는데
여자 이름 이다. 다른 바위에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던 입석 바위가 소나무와 어우러져 얼마나 멋지던지,
그렇게 멋진 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니, 바위 길이가 길어 셔터를 눌러도 한 컷에 다 담기질 않는다.
점점 더 높은 곳의 바위 오르며 공룡능선 바라보니 햇살 비치는 바위들 뒤로 멀리 오세암이 폭 파묻혀 있다.
다시 좁은 바위틈 비집고 간신히 오르고, 기다란 밧줄 잡고 오르다 옆으로 옮겨 다른 밧줄 잡고 직벽에 가까운 절벽을 오른다.
풍경 감상하며 몇 발작 더 오르니 아까 도와줬던 도우미님 두 분 어느새 먼저 와 또 돕고 있다.
바위에 묶인 짧은 끈과 도우미님의 두겹짜리 둥근 끈을 잡고 한 사람씩 차례로 올라선다.
"작년에도 오셨는데 이번에 또 오셨군요." 아래바위에 서서 도와주던 대장님이 먼저 알고 인사 건넨다.
위에서 끈을 이용해 도와주던 도우미 대장님, 내차례가 되니 두 겹짜리 끈을 한 줄 원으로 크게 만들어
아래에 있는 도우미님께 내려주며 그 끈을 내 엉덩이에 걸치게 하고선
"그네 타듯 두 손으로 줄만 잡고 가만히 계세요." 하며 그대로 들어 올려 준다.
목 젖혀 위 쳐다보며 '다리는 짧고 바위는 잡을 곳이 마땅치 않으니 어쩌나' 차례 기다리며 고민 했는데
통째로 들어 올려 주는 바람에 혼자 횡재를 했으니 들어주신 대장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버지, 당신 딸은 아직도 이렇게 남들에게 신세를 지고 살고 있으니 어쩜 좋죠?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모두 도와 주시는 분들 뿐이니 언제 신세를 다 갚지요?
힘들게 오르고 또 올라 이번에는 허리에 로프를 매고 바위 모퉁이를 도는 곳, 이곳은 일명 개구멍 바위다
이곳에 오니 작년에 도우미님들이 실력 발휘하며 도와주던 생각이 난다.
도우미님과 다른 팀 대장님 도움까지 받아가면서도 무서워 벌벌 떨며 간신히 내려딛고
밧줄 잡고 바위를 돌고, 잡을 곳은 마땅치 않고, 아래가 안 보여 무서워 벌벌떨며 선뜻 내려가지 못하던 곳이다.
작년 생각으론 아래에서 위를 보며 올라가면 안 무서울 것 같았는데 막상 닥쳐보니 그렇지도 않다.
작년에 처음 산행하며 무서워서 다시는 안온다는 생각하다 '아니야 다시하면 잘 할 수 있을 꺼야',
첫아이 낳을 때 무서워 다신 안 낳을 것 같지만 둘째 아이 낳으며 또 힘들어 하듯... 같은 맘이라고나 할까?
이번엔 양쪽 끝이 바위에 매인 파란 밧줄 중간을 잡고 키보다 높은 직벽을 안간힘 쓰며 낑낑 오른다.
작년엔 줄이 없어 대장님이 준비한 밧줄과 도우미 대장이 아래에서 받쳐주던 곳,
올라서서 뒤 돌아 내려다보니 죽은이의 넋을 기리는 동판이 붙어 있어 더 무서워 하던 곳이다.
위험하다 싶은 곳은 저렇게 동판이 붙어 있어 더 겁나게 만들기도 하지만 조심하라는 주의를 주기도 한다.
지난해에 와 걷던 생각하면 위험 구간은 모두 지난 것 같지만 바위봉을 오르내려야 하는 힘든 곳이 아직 많다,
갈길 바쁘지만 커다란 바위 옆 비비꼬인 문인목 같은 소나무 한 그루 있어 함께 기념 남기는 여유도 가져 본다.
바위에 뿌리내리고 끈질기게 살아가는 소나무한테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 많다.
공룡능선을 넘어온 햇살이 서북능선까지 비치니 명암이 뚜렷해지며 입체감 나고 더 날카롭게 보인다.
날씨가 이대로 종일 맑았으면 좋겠다. 옥녀봉을 제외한 봉우리가 봉정암 앞까지 아홉 봉우리라 했는데
갈수록 힘드니 몇 번째 봉우리를 오르내리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용아릉의 바위를 전경삼아 우측으로 날카로운 바위 뒤 멀리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귀떼기청봉 같은데
아직 구별을 제대로 못하니 한 번만 더 오면 확실하게 알 수 있겠다. 앞 뒤 양 옆으로 보이는 멋진 바위 봉우리 감상하며
걷다보니 앞으로 멀리 중청이 보인다. 중청은 봉우리 위 인공 구조물 때문에 얼른 알 수 있다.
소청 아래 골짜기 봉정암도 보일듯 하지만 역광이라 보이질 않는다. 앞으로 보이는 봉우리들이 멋지긴 한데
봉우리 숫자가 많은 걸 보면 아직도 가야할 거리가 멀다는 얘기, 배가 고파오며 벌써 기운이 떨어진다.
바위 틈을 비집고 내려서고 또 올라보면 앞 봉우리에 가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가야동 계곡 건너 있는 오세암은 여전히 달 쫓아오듯 보인다.
줌으로 당겨보니 건물 주변 단풍은 이미 다 떨어지고 소나무만 푸르러 바위와 어우러져 있다.
오세암에서 바라볼 땐 관음처럼 생긴 바위가 이쪽으로 보였는데 이곳에선 어느 바위인지 알수가 없다.
지나는 길 옆으로 진달래 몇 송이 보인다, 날씨도 추운데 뭐하다 이제 피는고?
그러지않아도 오늘은 바람이 심해 추위를 많이 느끼며 바위에 착 달라붙어 네 발로 기다시피 오르 내리고 있다.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봉우리들이 이젠 제법 많이 보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갈 수록 역광에 비치는 소나무와 바위가 멋지고,
걸어야 할 봉우리들 또한 멋지다. 비공식 산행이라 봉정암까지는 갈 수 없고 도중에서 내려서야 하는데
도우미 대장들을 비롯한 많은 일행은 멀리 가 안보이고 걸음 늦은 후미팀 몇 명만 남겨져 걷는다.
뜀바위에서 도와주던 일행 분 리더쉽 발휘하며, 높은 바위 오를 때나 내려설 때 밟고 오르 내리라며 몸소 어깨를 제공해 주니
나머지 사람들은 얼마나 죄송하고 미안하던지... 안전 산행을 위해 서로 서로 돕는다.
"산에서 밥 먹다보면 시간이 지체되어 늦어질테니 빨리 타고 내려와 식사하라"며 도시락을 나눠주질않아
배고픔을 더 느낀다. 바람막힌 곳에서 잠시 간식 시간 갖는다. 아침 9시면 모두 산행 마칠 수 있다고 했었다.
우측 아래 멀리 계곡 위로 아주 작게 다리가 보이는데 나중에 건너야 할 다리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가야할 봉우리들은 뾰족뾰족 한데, 날카롭던 공룡능선은 이쪽에서 보니 펑퍼짐하게 보인다.
뒤로 물러난 바위봉에 햇살 비치니 암릉이 하얗게 변하며 지나온 봉우리 숫자는 늘어나는데도
앞에 있는 봉우리 숫자는 줄어들질 않는것 같아 멀게만 느껴진다. 기력이 떨어져 그런가 보다.
밧줄잡고 오르니 앞 봉우리 뒤로 나무 한 그루 없는 넓은 직벽 바위봉,
앞 봉우리 바위 능선에 달라붙어 오르는 사람들이 자꾸 부러워진다. 난 언제 저길 걷게 되려나.
시장기 느끼니 더 힘들다. 봉우리 내려 딛는데 앞 봉우리에서 오르던 도우미님 손짓을 한다.
큰 소리로 뭐라 하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 말 소리는 안들리고 손짓만 갖고는 알 수가 없어 답답하다.
바위를 오르려다 아래로 우회로가 보여 다시 내려 서서 한참을 걷다보니 앞에 가던 일행들 어디로 다 갔는지
한 사람도 안 보이고 맞은 편에서 오는 몇 사람을 만났다.
"이렇게 위험한 곳을 장비도 없이 어떻게 가시려고 이리 가십니까? 뒤로 가세요."
"우린 수렴동 대피소에서 새벽에 떠나 여기까지 온 건데 도로 뒤로 가라구요?"
"지금 봉정암 앞에서 관리인들이 지키고 있어요. 떠들지 말고 다니세요."
"수럼동도 마찬가지지요, 뒤론 못가요, 이젠 시간도 늦었고, 봉정암 앞 봉우리 전에 하산 할 꺼에요.
그런데 앞에 가는 사람들 보셨나요?"
"한참 전에 갔는데 일행이세요? 너무 멀리 떨어졌어요."
시간은 점점 흐르고, 많지 않은 인원인데도 뒤로 가자커니, 앞으로 가자커니... 옥신각신, 의견이 분분하기에,
"벌금 50만원 내더라도 이젠 지치고 힘들어 뒤론 못가요. 난 앞으로 조금 더 가다 내려갈래요." 나도 한마디 보탰다.
진퇴양난에 갈피 못잡으니 임시 리더 목소리 커진다, 공포감 나타내지 않으려고 큰소리 내나보다.
큰 봉우리 두 개만 넘으면 될 것 같은데 짧아진 해 길이와 체력의 한계가 느껴진다, 갈길은 아직 멀고 먹거리도 바닥 나게 생겼다.
뒤로 돌아서서 다른 팀 따라가던 몇 명, 안되겠는지 되돌아 와 합세한다.
계곡으로 내려서기로 하면서도 이리 가자커니 저리 가자커니 또 의견 분분.
도우미 대장들은 위험구간에서 할일 다 했다는 듯 달아나고, 산악회 대장들도 모두 앞질러 가고 안보인다.
산악회 따라 처음 왔다는 일본여자 다리를 다쳐 힘들어하나 같이 온 카나다인이 짐만 들어 줄 뿐 속수 무책이다.
부상자가 있어 앞으로 가는 것은 포기하고 계곡으로 내려서기로 결정 하는데 길은 없고 가파르고 나무만 무성하다.
나무에 얽히고 긁혀가며 내려서다 잠시 휴식, 가방에 남은 먹거리 모두 뒤져 서로 나누며 간식시간 갖는다.
아래로 내려설 수록 경사는 가파르고 암반이 나타나며 낭떠러지 폭포를 이룬다.
계곡 좌측은 졀벽 바위로 되어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위험지대,
우측은 그나마 나무를 잡고 걸을 수 있으나 낙엽에 빠지며 자꾸 미끄러져 내린다.
내려서도 내려서도 끝날줄 모르는 깊은 계곡, 얼마나 더 걸어야 되는 건지...
"잠깐, 소리내지말고 여기들 있어봐요, 저 아래 사람이 보이는데 관리인들 인지도 모르니 여기 서 있어요."
맨 앞장서서 내려가던 남자분 한마디 하곤 내려가다 올라온다.
"내려들 오세요, 괜찮아요, 불빛이 보여요, 불을 피우면 관리인이 아니에요, 여긴 국립공원이니 안심해도 되요."
한참을 내려서서 다가가 보니 아까 우리보고 앞으로 가지말고 뒤로 가라던 4명 팀이다.
"뒤로 가시더니 어떻게 된 겁니까? 여기 계시게?"
"어떻게 이리로 오셨지요?" 서로들 물어가며 웃는 여유 보인다. 배가 고파 라면 끓이는 중이란다.
작은 계곡을 건너 넓은 계곡 백운동 길을 만났다. 새벽에 수렴동산장 길과 헤어진 후 길다운 길을 밟는다.
대청봉은 6.0km, 백담사까진7.5km 표지석이 있다. 봉정암에서 내려오는 이, 올라가는이들도 만난다.
내려오며 관리인을 만나 119 구조대에 연락해 달라 부탁하여 일본인 여자 인계하고 부지런히 내려섰다.
지친 몸으로 백담사 도착하니 비가 내린다. 시간은 16:40. 새벽 02:30에 출발하여 14시간이 넘게 걸렸다.
셔틀버스 기다리는 사람들, 주차창부터 줄지어 다리 위를 다 채우고 백담사 경내까지 줄지어 섰다,
걸어갈까 말까 망설이니 일행 한 사람 더 이상은 못 걸으니 비 맞고라도 기다리자며 줄 뒤에 선다.
비 맞으며 한 시간 반을 기다려 셔틀버스로 백담사 주차장 도착하니 날은 이미 어두워 깜깜하고 비는 주룩주룩,
타고 왔던 차는 오래 전에 주차장을 떠나 길 옆에서 시동을 켠채 기다리고 있다.
새벽 어둠 속에서 헤어졌던 일행들을 열 다섯 시간이 지난 저녁 어둠 속에서 다시 만났다.
용아장성은 바위 봉우리가 마치 용의 이빨처럼 날카롭게 생겼다고 하여 '龍牙'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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