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日記

기축년 새 날 첫 산행.

opal* 2009. 1. 1. 00:01

 

"엄마 이번에는 어느 산 가시나요? 우린 오늘 설 쇠러 애들 데리고 시댁으로 가요." 어제 아침 딸한테서 문자가 왔기에

멀리 떠나자니 무리이겠고, 안가자니 섭하고 다음 산행 때 힘들겠기에.

"금오산 (여수 향일암) 가려다가 무박이 무서워 가까운 개화산이나 갈까? 생각 중." 답글 써 보냈다.

 

저녁 늦도록 앉아 있었더니 잠이 달아났다. 이럴 땐 잠 안오는 걱정 대신 최면을 건다,

어쩌다 산행 전날 늦도록 잠이 안와 걱정될 때 마음 편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지금은 무박산행 가는 중, 차에 앉은 자세보다 이렇게 누운 자세는 얼마나 편한가.'해가 바뀌는 시간을 이렇게 밤샘하며 맞는다.

 

한밤중 02시 반. 더 이상 누워있다 잠들면 개화산이고 일출이고 물거품 되겠기에 

그대로 일어나 끓일 물 불 위에 얹어놓고 과일깎아 담고 이것 저것 준비물 챙긴다.

시간도 넉넉하니 산행지를 바꾸자, 참성단으로. 햇살 퍼진 후 떠나도 될 곳이지만 이왕 나서는 것 부지런 떨자.

추운날씨라고 식구들이 말리기엔 유효기간이 지났다. 

 

2009년 己丑年 새해 벽두(劈頭).

대관령 -18℃, 서울 -10 ℃, 게다가 바람까지. 겨울 중무장으로 준비 완료.

새벽 4시, 하루 중 제일 추운 일출 전 찬 바람을 가르며 강화도로 향한다.

어두운 시간이라 지정 속도보다 낮은 저속으로 달려도 길에 차가 없어 빠르다.

마니산 산행은 여러번 했어도 엄동설한 산행은 처음, 이번엔 또 어떤 맛일까?

 

아직 어두운 시간인데도 주차장이 만차라며 안내원들 추위에도 불구하고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안내한다.

이 추운데 어린애기까지 데리고 나온 가족도 보인다. 들머리 입구 들어서니 삼삼오오 짝 이룬 무리들이 어둠 속에 많다.

"계단에 벌써 사람들이 꽉 찼다는데?" 옆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에  계단로를 피해 평소 다니던 단군로로 들어서니

이곳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어둔 숲 속으로 혼자 걸으면 무섭지 않을까? 잠시 스쳐갔던 생각은 기우였다. 

등산로에는 평소 산행 안하던 사람들이 더 많은 듯, 랜턴 준비 안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발자국이 없는 등산로 옆으로는 하얀 눈이 살짝 지표면을 덮고 있다.

 

가파르게 몇 발작 오르니 땀이 뻘뻘, 자켓 벗어 가방에 넣고 여유롭게 천천히 오른다.

산아래 마을 불빛이 아름답게 조망되고, 능선 길 계단엔 불빛으로 이어진 줄이 정상까지 연결되어 있다. 

 

능선에 오르니 찬 바람이 빰을 세차게 때린다, 뺨이 얼얼, 벗었던 자켓 도로 입어도 춥다.

거치른 암릉길에 조심 조심, 누군지도 모르는 앞 사람 발꿈치에 조명 비추며 뒤 따른다.

아뿔사, 아래로 우회로가 있는 걸 바위 위로 따라 왔다, 어쩌지? 뛰어 내리기엔 밝은 낮에도 힘든 곳.

"뒤로 돌아서서 발 내려 보세요, 제가 발 받쳐 드릴께요. 여자분들은 힘든 곳 입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감사 합니다"  올해도 새해 벽두부터 이렇게 또 신세를 진다.

눈에 익은 이정표와 인사 나누고 긴 나무계단을 헐떡대며 오른다. 

 

정상 부근, 돌 계단으로 오른 몇 사람들 이쪽으로 온다, 전에 다닐 때 전망좋아 앉아 쉬던 바위다.

"정상은 이곳이 아닙니다." 앞에 가던 사람이 말 해주니,   "알아요."

"그런데 왜 이곳으로 오세요? 그쪽(정상)에 사람이 많아요?"   "네, 이곳이 오히려 편해요."

바람심한 능선, 무엇이 편하다는 얘기지? 갸우뚱 하며 정상을 향했다.

 

참성단 울타리 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이쪽 저쪽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꽉 찼다. 

마니산의 정상 참성단은 훼손이 심해 오래전부터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새해 첫 날과 개천절, 일년에 두 번만 개방하고 있다. 

 

일찍 와 기다리던 사람들은 추워서 못 서있겠다며 어쩌다 한 두 사람 내려오면  그 자리 메꾸며 한 발자국씩 승진하듯 오른다. 

 "더 올라갑시다." 뒤에 서 있는 사람 소리 지른다.

"재주 있으면 올라와 보세요. 여기는 더 꼼짝하기 힘들어요." 위에 있는 사람이 댓구해 준다.

계단 서너 개만 더 오르면 참성단 성곽(?) 안에 들어갈 수 있는데 도저히 발을 떼어 놓을 수가 없다.

 

참성단에 울타리를 만들며 옆 봉우리가 정상으로 바뀌고 정상목을 세워 놓았다.

어둠속으로 보이는 그곳(헬기장)에도 사람들이 꽉 들어차 미동 않고 서 있다.

참성단 주변 어디나 높낮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전망 좋은 곳은 모두 들어차 인산 인해를 이룬다.

정상 도착 전 능선에서 들었던 "이곳이 오히려 편하다"는 말을 이제야 알아 차린다.

동해안이나 일출 전망 좋은 넓은 곳은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을까?

모두들 기원해야 할 크고 작은 소망들을 한 보따리씩 안고 온 모양이다.

 

"내려가게 길 좀 터 주세요, 좀 내려 갑시다, 춥고 허리아파 더 이상 못 기다리겠네."

"그럼 바꿔 섭시다." 웅성거리며 서 있다가도 누가 내려간다면 반가운듯 댓구한다.

해가 떠 올라도 앞 사람들에 가려 안 보일것 같아 일부러 가장자리 난간에 기대어 섰다.

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 있으니 북풍한설 피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고마운 사람들.

 

해가 보이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하는데...

흘리던 땀 식으니 손과 발이 얼어오며 몸이 굳는다. 온 몸이 달달 떨리나 움직일 공간이 없다.

어두운 대로 가끔씩 셔터 눌러보니 손이 시려워 말을 잘 안 듣는다. 두 개 낀 장갑이 무색하다.

주머니 속 작은 난로도 기온이 너무 낮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불이 꺼진 것 같다.

금방 밥 달라는 배터리 빼내고 교환 하는 동안 손가락에 동상이 오는 듯 저리다. 

손가락도, 카메라도 난로도 모두 제각기 힘들어 하며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이대로 얼어 붙으면 춘삼월 봄눈 녹을 때나 되어 녹는 건 아닐까?

 

"내려 갑시다." 참성단 울안에 있는 한 사람이 또 소리 지른다. 추워서 더 이상 못기다리겠단다.

날씨가 맑아 제주를 제외한 어느 곳에서나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예보를 들었는데, 

수평선 위로 두텁게 형성된 가스층은 맑은 하늘과 바다 사이에 1/3 이나 차지하며 화면에 나타난다. 

 "해 뜰 시간이 벌써 지났어요, 구름이 많아 해 보긴 다 틀렸어요."

어떤이의 소리에 댓구하듯 바로 참성단 넓은 성곽 위에서 외마디 소리 들린다.

" 해 뜬다~!"

 

얼른 옆으로 고개 내밀며 쳐다보니 앞 봉우리 위로 부끄러운 듯 홍조띤 햇님 살며시 올라오고 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상 그대로의 해 이건만... gas 속에 있어 오히려 맑고 예쁘다.   

영하의 날씨에 발 동동 구르고 손바닥 비비며 일출 기다리던 이들,  모두 환호성을 지른다.

"와~ 해다, 야~" 희망찬 즐거움의 환호성과 함성이 동시에 울려 퍼진다.

 

戊子年을 뒤로 하고 기축년 새 해가 밝아오고 있다.

커다란 희망은 오히려 짐스러우니 욕심 버리고, 올 한 해도 지금 처럼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주십사 기원해 볼 뿐이다.

 

얼어 붙은 발이 잘 움직여지지 않아 바로 내려 설 수 없어 사람들 내려가기 기다리니 오히려 올라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참성단 성곽 안으로 들어가니 눈부신 햇살 퍼지며 온기가 전해진다.

뜨거운 물 한 모금 마시고 싶은데 손이 얼어 보온병 뚜겅을 열 수가 없다.

참성단 위엔 올라 설 수 없고, 좁은 성 안에서만 이리 저리 움직여 언 몸 녹이며 시간 보낸다.

 

봄이면 진달래 화려한 고려산, 바다건너 해명, 낙가산... 참성단 계단위에서 사방 둘러보며 정기 들이 마신다. 

몸이 너무 얼어 걷기에 힘들기도 하지만 차와 함께 왔으니 다른곳으로 하산 하기엔 역부족.

날씨가 조금만 덜 추워도 선수리 쪽으로 하산하겠는데 북풍을 안고 능선 걸을 생각하니... 

오랫만에 계단길을 이용한다. 몇 년 만이던가, 살아 보겠다고 이길을 허우적 거리며 올라오던 날이.

 

학교 운동장, 차안에서 몸 녹일 겸, 간식과 뜨거운 물 마시며 잠시 휴식.

왔던 길 되 달려 집으로 향하는 길, 얼었던 몸 녹으니 노곤해지며 졸음 온다.

깜박 졸다 어이쿠, 바깥 차선으로 달리며 쉴 곳 엿보나 마땅치 않다.

정신 차리고 달리다 또 한 번 깜박, 이러면 안 되는데, 창을 모두 열어 찬 공기로 바꾼다.

길 가에 차 세우고 쉬기보다는 빨리 가서 쉬자, 조금만 더 가면 될테니.

 

창문 열어 놓은채 음악 볼륨 높이고 달리다 또 옆 차선으로 침입할 뻔, 정신이 바짝.

그래 이 긴장감이야,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며 달려보자.

 

집에 도착하여 떡국 한 그릇 맛나게 챙겨 먹고 휴식 취한다. 

 

115

 

'山行 日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멀고도 먼 광양 백운산  (0) 2009.03.17
새해 첫 단체 산행  (0) 2009.01.06
백암산, 내장산 무박 종주  (0) 2008.11.09
두 번째 용아장성 능선을 걷고.  (0) 2008.10.25
봉화 청량산  (0) 2008.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