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문화,여행)

오페라) 모짜르트 - '피가로의 결혼' 4막

opal* 2009. 3. 6. 16:25

 

  

 

 

4막 중 '빨리와요, 기쁨의 순간이여'

 

"드디어 힘을 입어 고통도 사라지고 내 가슴 기쁨 찾네

왜 내가 떨까 걱정 근심 떠나라.

그들이 내 사랑 방해 할까  내 모든 것이 내 사랑을 도와주네

땅이여 하늘이여 말해주오  내 모든 것을, 고통스럽고도 즐거운 밤이여!

지체말고 빨리와요 기쁨의 순간이여

사랑이 그대를 기다리는 곳으로

하늘의 달빛 사라지지 않고 세상 잠든 조용한 밤에 오라

시냇물이 종알대고 새벽이 오면 나의 마음은 신선하여 진다.

이 풀과 꽃들이 신선하다 나의 기쁨과 사랑 이리 오너라

오라 내 사랑이여

장미 넝쿨 속으로 그대의 이마에 장미를 씌워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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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희극 오페라.

〈돈 조반니 Don Giovanni〉·〈코지 판 투테 Cosi fan tutte〉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 형식으로 작곡되었다. 보마르셰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로렌초 다 폰테가 대본을 썼다.

 1785년 7월 대본이 완성되었고, 이듬해 4월 서곡을 끝으로 전곡을 완성했다.

원작이 빈에서 상연금지당한데다가 모차르트를 시기하는 사람들의 방해로 계속 공연이 늦어지다가

1786년 5월 다 폰테의 도움으로 빈 궁정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모차르트는 18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관습을 따르면서도 이 작품을 최고의 문학적·음악적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특히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전형화된 인물에 개성을 불어넣었다

 

모짜르트 -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요제프 하이든과 더불어 18세기 빈 고전주의 악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오페라, 실내악, 교향곡,

피아노 협주곡 등 여러 양식에 걸쳐 방대한 작품을 남겨 전시대를 통틀어 음악의 천재 중 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1719-87)의 아들이다.
그와 그의 누나인 마리아 아나(1751-1829)는 음악적 재능이 아주 뛰어났다.
1762년 레오폴트는 그의 어린 아이들과 유럽 음악 여행을 시작하였다.
모차르트는 첫번째 음악 여행(1762-69)에서 프랑스와 잉글랜드에 갔는데, 그곳에서 그는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를 만났고
거기서 그의 첫번째 교향곡을 썼다. 이탈리아 여행(1769-74)에서 그는 처음으로 요제프 하이든의 현악 4중주를 보았고
첫번째 이탈리안 오페라를 썼다. 1775-77년 그는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첫번째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다.
그의 어머니가 1779에 죽자, 그는 궁정 오르간 연주자로서 잘츠부르크로 돌아왔고, 1781년 정가극 〈이도메네오 Idomeneo〉를 썼다.
1781년 그는 대주교와의 갈등으로 쫓겨났다. 모차르트는 그의 친구들과 함께 베버가로 옮기고,
비엔나에서 그의 독립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는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하였고,
〈The Abduction from the Seraglio〉(1782)와 많은 그의 위대한 피아노 협주곡을 썼다.
1780년대 후반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돈 조반니 Don Giovanni〉·〈코지 판 투테 Cosi fan tutte〉등의 작품으로 그
는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다. 모차르트는 35살에 병으로 죽었는데, 이처럼 짧은 생애 동안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작곡가는 없다.

 

 

"달콤하고 즐거웠던 아름다운 그 시절은 어디에 있나? 거짓된 그 입술의 맹세는어디로 갔나?
나를 위한 모든 것들이눈물과 고통으로 변하였다면, 왜 그토록 행복했던 기억은내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은 것일까?
아! 언제나 사랑을 갈망하는 내 변함없는 의지가그이의 무정한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내게 전해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