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日記

설악산

opal* 2009. 6. 2. 22:31

 

 

빈 좌석 하나 없이 한 차 가득 출발, 오색에 도착하여  역 산행 할 열 세명은 2진으로 차에 남아 설악동으로 직행하고, 

나머지는 하차하여 들머리로 진입, 오랫만의 장거리 산행에 단단한 각오로 임하며 1진에 합류 했다.   

 

 작년에 두 번 같은 코스의 산행이 있었으나 너무 힘들 것 같아 2진으로 남아 금강굴과 천불동으로 역산행을 했었다. 

대청봉을 오르는 길은 오색 코스가 길이 5km로 가장 짧다, 짧은 만큼 가파르고 오르막만 있어 지루하고 힘들다.

 

오색에서는 주로 무박산행으로 캄캄한 시간에 오르거나  아니면 한계령에서 올라 오색으로 하산 했었다.

밝은 낮 시간에 오색에서 오르는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시간에 바위 길 오르느라 전에는 무척 힘들었었는데 가파르고 험한 곳에 철계단을 설치하여 

길이 많이 좋아져 오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 긴 산행이기에 체력 안배를 위해 서두르지 않고 페이스 대로 걷다보니 점점 뒤로 쳐진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단풍철 성수기가 아닌 평일이다 보니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뿐인 숲 속의 교향악이 조용하고 호젓해 좋다.

 

옆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나 놀자한다,  도망은 커녕 먹이 좀 달라는 눈치다, 주면 안되는데 어쩌지?

녀석들도 전과 많이 달라졌다. 아예 따라다닌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먹이를 많이 얻어 먹었었나 보다.

먹거리 꺼내 잘게 잘라 바닥에 놓으니 얼른 와 물고 몇 발작 옆으로 잽싸게 달려가 오물오물 맛있게 잘도 먹는다.

다 먹더니 또 옆으로 와 눈치 살핀다. 다람쥐야 이젠 그만이다. 미안하지만  먹이는 네 스스로 찾아야지?  

 

오를 수록 바람이 시원하다. 계곡의 물소리도 시원함을 더해준다. 설악폭포 가까이선 수량은 적으나 물소리가 제법 우렁차다.

 

제 2쉼터, 얼음물로 목 축이며 안내판 이정표 보니 나를 기준으로 그려진 듯, 커다란 노송이 있는 제 1쉼터까지 한 시간,

폭포까지 두 시간, 지금 서 있는 제 2쉼터까지 3시간 걸린 내 걸음속도와 안내판에 그려진 시간 표시와  어쩜 이리 똑 같은지...

혼자 뒤처져 걱정하는 마음을 안내판이 위로와 격려를 준다. 

 함께 온 일행은 모두 뺑소니 치듯 달아나고 어쩌다 낯선 사람 두 서넛 앞서거니 뒤서거니 간간히 만났다 헤어진다.  

 

 정상 가까이 오를 수록 고도가 높아 바람이 세차 큰 나무 없으니 시원함을 지나 추워져 흐르던 땀 자취를 감춘다.

대청봉 정상석 올려다 뵈고 그 아래 바위 틈 후미대장 보인다. 꼴지 기다리다 나타나니 추위로 일그러진 얼굴 미소로 바뀐다.

 비람세찬 바위 틈에서 30분도 더 기다렸다니 얼마나 추웠을까, 미안한 마음 말할 수 없이 크다. 

"추운데 중청 대피소에 내려가 기다리지 그랬어요. 다 아는 길인데." 책임 완수하시는 후미 대장님 감사 합니다.

그래도 기념 사진은 남겨야 될 것같아 셔터 눌러주고 나도 한 장 부탁,

 바람에 흔들린 것 같아 다시 한 번 눌러달라 부탁하고 싶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너무 추워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 

 

세찬 바람따라 몰려온 구름으로 조망은 별로다. 설악의 정상 대청봉이 사람 없이 이렇게 한산한 모습은 처음 본다,

무박으로 와 어두운 새벽이나 엄동설한 추위에도 정상석 차지하기 위해 아우성 치는 곳인데, 이렇게 한산한 날도 있다니. 

춥지만 않으면 시원한 바람 쐬며 일행들 아직 몇 명은 남아 있었을 텐데 너무 추워서 다 내려갔단다.

천불동 계곡을 거쳐 소공원까지 가려면 오르던 길보다 두 배 거리가 넘고 가파르고 험한 내리막이라 서둘러야만 한다.  

 

바람이 없는 중청 대피소 취사실에 들어서니 아직 식사 중인 일행이 있어 반가우나 먼저 먹고 일어서니 또 혼자 남는다. 

수입과 지출 균형을 마치고 끝청 갈림길에 서니 감회가 새롭다. 한 밤중 한계령에서 올라 새벽녁이면 도착하던 갈림 길,

대청봉을 올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갈등을 일으키던 백두대간 길이다.  

 

 소청으로 향하는 가파르던 길에 지금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무박 산행 때에도 편하게 다닐 수 있겠다. 

봉정암과 희운각의 갈림길인 소청엔 돌을 깔아 평평하고, 희운각 방향의 급경사 가파른 길도 계단이 설치되어 많이 편해졌다. 

사람들이 많아도 이젠 붐비거나 정체 현상은 없겠다. 사진 찍고 있는 일행 서너 명을 만났다.

희운각 가까이 계단을 내려서는 중인데  멀리서 천둥소리 들리고 하늘이 어두워지며 빗방울이 떨어진다. 

멋진 모습으로 우뚝우뚝 서있는 공룡능선과 천화대 바위를 시커먼 구름과 무성한 나뭇잎이 가려 놓았다.

 

 집 출발 전 일기예보에 중부지방은 밤부터 내일 아침까지 내린다기에 준비한 우비와 우산을 차에 놓고 내렸는데,

희운각 지나니 빗줄기가 굵어지며 세차게 때린다. 콩알만한 얼음덩이 우박이 손등으로 떨어지니 몹씨 아프다.

가방은 커버로 씌우고  저체온증 예방 위해 방수 점퍼 입었으나 아래로 흐르는 빗물은 바지와 신발까지 적신다. 

걸음은 빨라지나 양폭산장도 멀었는데 빗줄기는 폭우로 변하고, 천불동 계곡에 먹구름 가득차니 숲은 어두워 밤길이나 다름없다. 

 

소청에서부터 희운각까지 함께 걷던 일행 몇 사람, 쏟아지는 빗물 양 따라 걸음 속도도 빨라져 이미 사라진지 오래, 

또 다시 혼자 뒤로 쳐진다. 덩달아 가속 붙여 보지만 급경사 내리막 물기 먹은 젖은 바위라 조심 조심, 

멀리서 들리던 뇌성 벽력은 머리 위에서 통곡을 한다. 

멀리서 '우르릉 꽈광'하던 소리가 머리 위에서 '짜르륵 짜르륵' 소리로 변하고 번개는 번쩍번쩍 거린다. 

2년 전인가? 강원도 향로봉 옆 매봉산 산행 날 북한산 용출봉에 벼락치며 인명사고 났던 생각이 스친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그럴까?  산행 몇 년 동안 이렇게 심한 돌풍과 장대비 만난 일은 처음 같다. 

비 맞은 기억이 황장산과 매봉산 등 두 번 정도다. 뙤약볕 한 여름 폭우도 아닌데 어찌 이렇게 계곡을 뒤흔드는 걸까.

설악산 산신령님이 노하셨나? 청룡과 백호가 어느 골짜기에서 싸우고 있나?

 

신발은 뒤꿈치부터 물이 새어 들어와 발을 내 딛을 때마다 찔거덕쩔거덕 거리고  갈 길은 먼데 숲은 어둡다.

젖은 바위가 미끄럽고 철다리도 비에 젖어 반지르르하다. 길에 깔린 돌틈에 쌓인 낙엽과 젖은 나무뿌리는 더 큰 복병이다.

하늘 어디가 찢어졌는지 비는 쉽게 그칠줄 모른다. 대청봉 오르기 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올라 중청대피소에서

밥 먹던 부부 초행길 이라며 이 길로 온다 했는데 어찌 되었는지, 무사해야 할텐데...

어쩌다 한 번씩 카메라 꺼내 셔터 누르니 빛이 부족해 흔들린다. 카메라에 빗물이 스며 화면이 흐리다.

습기가 금물인 것 알면서도 자꾸 거내는 걸 보면 습관 참 고약하다.  

 

양폭 산장을 곁눈질 하듯 쳐다보고 부지런히 걸어 귀면암 가파른 계단 단숨에 오르니 골짜기는

먹구름으로 꽉 메꾸어지고 무섭게 쏟아지던 비가 서서히 멎어주며 온순해 지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깊은 계곡에 먹구름 차 있으니 어둠이 빨리 온다. 어두워진 저녁시간, 

우의 없이 비에 홀딱 젖은 맨 몸으로 오르는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크기가 어마어마한  배낭을 메고 오르는 외국인도 마주친다. 

 

비선대 도착하니 금강굴 있는 장군봉 선녀봉 꼭대기는 구름으로 안 보이고 맑던 계류는 탁해졌다.

대청봉부터 8km를 단숨에 달려온듯 하나 소공원까지 앞으로도 3km 남았다.

계류 옆길 내려서니 등산로 옆 상점 여인들, "잠깐 쉬어 막걸리라도 마시며 쉬고 가라"며 한 마디 덪붙인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무섭지도 않나요? 아까는 캄캄해서 앞도 잘 안보이던데."

"겁이야 나지요, 그런데 어쪄죠? 술을 못해서. 오늘은 맨 꼴지라 바쁘고 다음에 여유 있을 때 다시 올께요."

 

신흥사 가까운 큰 나무 우거진 넓은 길 걷는데 전화 벨 울린다. "지금 어디쯤 오세요? 비선대 다 와 가나요?"

"아니요 아직 멀었어요," 후미 대장님 놀리려고 거짓으로 대꾸하니 

"지금 비선대 상가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뭐라구요? 그럼 비선대에서 기다린다고 빨리 얘기 해줘야죠, 

비선대는 벌써 지나고 지금 신흥사 앞에 다 왔어요. 빨리 내려오세요." 꼴찌 챙겨주는 후미 대장님 땡쿠야요~.

 

주차장 도착하니 2진 탔던 여인 꼴찌가 멀리 보이니 마중 나오며 반긴다. "언니 비 많이 맞았지?"

"비는 맞았지만 그래도 괜찮았어, 오랫만에 길게 타니 너무 좋았어. 고마워"

좋은 산과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 오늘도 행복한 하루, 감사 드린다. 

 

오색 들머리 09:40, 대청봉 13:10 , 오색에서 대청봉까지 5km 오르는데 3시간 반이 걸렸다. 4시간 예상 했는데. 

"안녕히 가세요"라고 쓰인 소공원 날머리 17:40 , 더도 덜도 없이 내 걸음으로 맞춤인듯 딱 8시간 걸렸다.

하산 길 날씨가 좋았으면 사진 찍느라 시간이 더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차 안, 불필요한 사진 지울까하여 카메라 조작해보니 빗물이 들어갔는지 접사터치 부분 작동이 안되며 삭제도 안된다.  

습기는 금물 인 것 알면서도 우중에 찍었으니 당연지사.  카메라가 주인을 잘못만나 2년동안 혹사 당했으니 반기를 들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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