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日記

나홀로 도봉산 번개 산행

opal* 2009. 4. 25. 20:32

 

지난 화요일 큰댁에 제사가 있어 미리 일요산행, 다음 화요일까지 기다리기엔 좀 길다 싶어 아침먹고 나섰다.

어제 전국적으로 종일 내려 가뭄 해소시켜 준 비는 오늘도 저녁에 조금 더 내리겠다는 예보를 전한다.

단비 금비 다 내리고 나뭇잎도 푸르르니 이젠 가뭄과 산불 걱정 없이 아무 산이나 다닐 수 있겠다.

 

서쪽으로 문수산을 갈까 동쪽 북한산을 갈까 하다  차 갖고 가기 싫어 북한산으로 결정. 

'일찍 일어나니 졸립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왜 나서야 하지?' 혼자 궁시렁 궁시렁.

전철을 타고나니  '이왕 가는 것 멀리 가서 내려야겠다'  도봉산 역을 지나 망월사역까지 갔다.

혼자하는 산행은 북한산을 많이 찾는 편인데, 올 초에 도봉산 가더니 오늘도 갑자기 바뀐다.

이게 바로 혼자 다니는 특권의 맛이다, 이런 맛은 재미가 배가되어 즐기는 편이다. 

 

전철에서 내리니 "어머나, 오늘 모임에 오는거죠?"

"모임? ㅇㅇㄴ씨잖아? 나 * * 인데~" 

"맞어 그래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했지."

"그런데 무슨 모임?"

"오늘 정기산행모임이라 지금 저기에 회원들 많이 와 있어."

"그래? 갑장들도 많이 오고?"

"아니 갑장은 ㄱㅇㄷㅇ밖에 없어. 요즘 활동이 대단해"

"그래? 난 혼자 산행 온 건데 안 보고 가면 서운하다 하겠지?"

"그럼, 가서 보구 가. 그리고 ㅅ님이 궁금하시다며 내게 소식 물어 보시던데 내가 뭘 알아야 말이지."

"그러셨어? 그럼 내가 나중에 연락이라도 한 번 해 봐야겠군."

 

엄 홍길기념관 대문 안 들어서니 낯익은 얼굴들 뵌다. 반갑다며 얼싸안는 사람, 오랫만이라며 악수 청하는 사람...

이 분 저분 뵙고 이야기 나누고 있으니, 늦게 도착한 지기님 쳐다보더니 "눈물이 다 나올라고 한다"며 포옹 한다.

 

"언니, 그런데 도데체 어떻게 된거야 아무 연락도 없이? 궁금해 하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지 알아?"

"미안해 어쩌다 그렇게 되었어. 내가 못나 그렇지 뭐."

"그러지 않아도 ㅅㅅ님이 궁금하시다며 언니 소식 아느냐고 물어 봤었어요."

'이 사람 저 사람 여러 사람에게 많이도 물어 봤군, 원인 제공은 본인이 해 놓고...' 혼자 생각하니 웃음만 나온다.

"이왕 만났으니 오늘 하루 같이 지내자, 계단에서 단체사진도 같이 찍고,"  끌어 당기기에

못 이기는 척 뒤에 섰다가  탈퇴한 사람이 얼굴 내미는게 불편해 건물 안으로 살짝 들어섰다.

 

"다들 오셨으니 이젠 출발 합시다. 11시 출발 입니다." 선두대장 한 마디에 삼삼오오 짝지어 걸어 나간다.

부지런히 앞으로 가 옛 지기님 옆에서서 나란히 걸으며 몇마디 주고 받다 갈림길에서 인사 나누고 헤어졌다.

정기모임은 산행이 목적이기 보다는 만남의 비중이 커 정상엔 안 가고 가벼운 산행 후 식사 나눈단다.   

고마운 분들께 일일이 인사 나누지 못하고 헤어져 죄송한 마음이다.

 

4년 전인가 4월 정모로 왔었던 망월사 방향으로 땀 뻘뻘 흘리며 혼자 올라섰다.

연두색 새 잎으로 단장 중인 숲은 물소리 새소리 어우러져 화음을 이루는데 봉우리 위엔 구름이 맴돌고 있다. 

망월사에서 전망 감상한 후 포대 능선으로 올랐다. 세찬 바람에 안개구름 몰려 다닌다.

구름이 머물고 있어 위로 오를수록 조망은 별로이고  소나무 사이 드문드문 채색된 분홍색 진달래만 아직 화려하다.

다른 산엔 다 진 진달래가 여긴 아직 볼만하다.

 

이정표 사진을 찍고 있으니 뒤 따라오던 낯선 산님들 중 한 분

"사진찍어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한 장 찍어 드릴께요."

부탁도 안 했는데 자진해서 찍어 주겠다며 과잉친절 표시하기에 사진기 건넸다.

큰 카메라 뷰화인더 들여다보듯 눈에 바짝대는 폼이 이상하다. '디카를 다뤄보지 않은 분이군.'

"그렇게 가까이 대지 마시고 손을 좀 떼고 화면을 보시며 셔터를 누르세요."

"아아 예~   찍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확인해 보니 찍히질 않았다, 남의 카메라 만지다 보면 서툴러 그럴 수도 있겠지...

간혹 나이많은 사람은 디카만지는 솜씨가 어색해 사진 찍히고 싶을 땐 가능하면 젊은사람에게 부탁할 때가 있다.

 

망월사에 올라 조망 사진 담고 있으니 등산로에서 부르는 소리 들린다.

"한 장 찍어 드릴까요? 여기서 찍는게 좋아요." 주문도 안했는데 여전히 솔선수범이다.

"괜찮습니다, 감사 합니다."  하산하는 젊은이 있어 잠시 부탁하여 한 장 찍혔다. 

 

예닐곱 명이 함께 걷는 산님들, 사진 찍다보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만나게 된다. 

찬바람 불어 추운 능선에 민소매만 입은이가 있는가 하면

산엘 처음 왔는지 종아리에 쥐가 나 주무르며 좁은 등산로를 막고 앉아 파스를 바르는 이도 있다.

곳곳에서 이것 저것 셔터 누르는 모습을 보기만 하면 어김 없이 "한장 찍어 드릴까요?" 묻는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후 1시가 지났다. 바람막힌 곳에 앉아 밥을 먹으니 춥다. 벗었던 점퍼 다시 꺼내입고 문자 보낸다. 

"도봉산 포대 능선에서 혼자 밥먹고 나니 많이 춥네. 여기 오니 갑자기 생각이~ 말 않고 그냥 가면 나중에 혼나겠지?"

"헉~, 일행 없이? 날씨 꾸물꾸물 조심 조심. 언제 쯤 하산?"

"앞으로 세 시간 정도?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고, 하산 끝날 무렵 다시 연락 하겠음."

"추운데 내려오면 따끈한 국물이라도... 마중 갈께요."

여기서도 이렇게 추우니 더 높은 산정에선 얼마나 더 추울까?

 

신선대 정상에 오르니 신선 된 기분, 봉우리 아래는 구름으로 꽉차고, 지척 앞 바위봉 금방 보이다 말다 한다.

자운봉 정상에 선 사람까지 보이던 그림은 갑자기 다 지워진 하얀 도화지가 된다. 아예 봉우리조차 없어졌다.

오래 머물고 싶지만 추워서 오래 머물 수가 없다. 비에 젖은 바위는 미끄럽게 변해 조심성을 요구한다.  

 

"사진 찍어 드릴까요?" 사방 둘러보며 셔터 누르고 있으니 한 사람이 묻는다.

"아~예에, 한 장 찍어 주실래요?"

"그 쪽에 서 보세요, 바위 미끄러우니 조심하시고요."

 

이왕 찍는거 이쪽 배경으로도 한 장 더 찍어 주실래요?"

 

"감사합니다, 카메라 주시죠 저도 한 장 찍어 드릴께요."

 

능선으로 더 돌까 하다 하산을 서두른다, 바위도 미끄럽고 날씨도 어둡고, 기다리겠다는 사람 생기고.

무엇보다 오늘은 워밍업으로 나섰으니 긴 산행으로 무리할 필요가 없다.

오전 11시 산행시작 신선대 정상 오후 2시, 그럭저럭 20 여분 경과. 1시간 반 정도 하산이면 워밍업으론 최상.

아래로 내려 딛을수록 빗줄기가 굵어지니 얼마나 다행인지... 자연에게 감사 드린다.  

 

하산로. 화사하게 피었다 지고있는 진달래 뒤로 흐릿하지만 멋진 바위가 있어 찍고 있으니

뒤에 내려오던 한 분 "찍어 드릴까요?"  '오늘은 왜 이렇게 찍어 주겠단 사람이 많은 거야?'

도봉산엔 인심좋은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안찍어도 됩니다. 꽃이 예뻐 찍고 있는 거에요."

"그 꽃 넣고 한 장 찍어 드릴께요."

"감사 합니다." 할 수 없이 또 한 장 찍혔다. 그런데 흔들렸다. ㅎㅎㅎ

 

마당바위. 복사꽃과 산벚꽃이 먼 봉우리와 어울려 멋지기에 담고 있으니,

"올라갈 때 만나더니 여기서 또 만났네요, 한 장 찍어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감사 합니다."

 

마당바위에서 쉬던 낯선 젊은이, 낭떠러지 바위로 내려가니 지나가는 이들 한마디씩 한다.

"조심하세요, 위험해요 그리 내려가지 말고 옆에 길로 내려 서세요."

 한마디씩 하고 다 지나가니 자기 동료에게 "도봉산 다람쥐를 뭘로 보고 그러는거야?" 

옆에서 들으니 교만하기 짝이 없다.

 

혼자 다녀도 심심할 겨를이 없는 순간 순간의 시간이 흐른다.

도봉산 역에서 전철 타고 세 정거장 후 내리니 우산 들고 마중 와 기다리고 있다.

이야기 나누며 함께 음식점으로, 점심 먹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오후 5시.

따끈한 해산물 칼국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피 얇은 찐만두,  맛있게 나눠먹고 Coffee까지 마신후 Bye bye~

 

시간 오래 걸리는 먼 거리, 종일 찍은 사진 골라 삭제시키다 집 가까이 와 졸다 차량 기지까지 갈 뻔. ㅋㅋ

"종착역 다 왔으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내리라"는 안내 방송 멘트에 화들짝 놀라 전철 문 밖으로 깡총.

집 나설 때 힘듦의 궁시렁 궁시렁은 돌아올 땐 행복감으로 충만해져 몸도 마음도 상쾌함의 최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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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고 일어나 뉴스 들으니 강원지역 1000m이상 고봉엔 눈이 내렸단다. 어제 산에서 그리도 춥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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