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다시 찾은 태기산.
산행 초기 2004년 12월, 첫 산행 후 웬지는 모르지만 참 멋없는 산이라고 기억에 남아있는 산이다.
그때는 필카만 있고 디카 준비가 안된 상태라 사진이 없고 기록도 하지않아 기억으로만 흐릿하다.
오죽하면 지난주 산행 후 대장님이 다음 산행지 발표할 때 짝꿍에게 "왜 그렇게 멋없는 산을 잡았지?" 했었다.
태기산은 신라에 패한 진한의 태기왕이 성을 쌓고 항쟁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지금은 산성터가 남아 있다.
정상엔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어 구불구불 오르막을 오르며 차에서 내리는 고개가 바로 정상 역할을 하는 곳이다.
군부대 까지는 기억에 없고 하산 길이만 길게 느껴진 기억이 있다.
산은 웬만하면 어디나 다 나름대로 좋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지만 태기산은 정상의 군부대 때문일까? 그다지 재미 있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볼거리 많고 멋진 산이 역시 좋다. 국립공원이나 명산은 다 그런 명칭을 붙일만한 값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강릉간 국도인 넓은 도로변 고개에서 하차하니 전과 변함없는 안내판이 있고 글 내용도 똑같다.
'이곳이 태기산 정상 입니다."( 해발980m, 일명 양구두미재)
버스 안에서 스패츠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차에서 내려 아이젠을 신었다.
넓은 도로에 쌓인 눈을 대강 치워놓아 아이젠이 오히려 불편하기에 벗어들고 오르막을 한참 걸었다.
바람이 잘 부는 곳엔 어김없이 늘어선 것처럼 여기도 어느새 풍력발전기 여러 대가 즐비하게 서있다.
정상에 군부대를 이고 가파르게 솟아있는 산은 흔적만 길이려니... 눈이 많이 쌓여 길이 안 보인다.
선두대장이 러셀한 곳을 아아젠 착용 후 뒤따라 오르는데 무릎까지 빠지며 뒤로 미끄러지기가 다반사다.
정상 높이 1261m에 고개 높이가980m, 완만한 능선이 아닌 가파른 오르막에 휘몰아 친 눈이 쌓여 힘이 배 이상 든다.
비탈길에 미끄러지며 정상에 있는 군부대 울타리 철조망을 잡고 간신히 돌으니 눈만 쌓여 있고 길이 없다.
할 수 없이 능선 찾아 아래로 내려딛는데 쌓인 눈 높이가 장난이 아니다, 선두대장에게 절로 미안해 진다.
눈이 내린지 한참 뒤인 포슬포슬하게 빠지는 눈이라 많은 일행들이 지나가고 맨 뒤에서 걷는데도 첫 걸음이나 다름없이 빠진다.
부대 둘레를 빙도니 다시 풍력발전기가 늘어선 곳에 닿는다. 군부대 사람들은 이쪽 넓은 길로 다니고 있었다.
부대와 발전기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정상석은 낮은 곳으로 옮겨져 있다. 정상석에서 기념 남기는 중인데
다른 팀(인천 365 산악회)이 몰려 왔다. 잠깐 사진찍고 일행들 뒤를 쫓는데 다른 팀과 섞여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졌다.
넓은 도로를 향해 걸으니 우리 일행들이 안보인다. "아니 사진찍는 동안 이렇게 다 빨리 갔단 말이야?"하니
"그러게 엄청 빨리들 갔네? 바람이 불어 추워 빨라졌나?" ㅊㄱ님 맞장구 치신다.
풍력 발전기 옆으로 난 넓은 임도에서 후미대장님과 ㅊㄱ님 앞에서 열심히 걷고 그 뒤를 따라가다 보니 아무래도 이상하다.
나란히 걷다가 오르막에선 속도가 늦어져 뒤에 쳐졌기에 한참 걷다보니 발자국이 두 사람 것 뿐이다.
그 많은 발전기 중 맨끝에 있는 곳까지 걸었다. 앞에서 걷고있는 후미대장님 부르니 못 듣는다.
가뜩이나 작은 목소리에 바람을 안고 가는 중에 발전기 날개 돌아가는 소리가 워낙 크니 얼른 듣질 못한다.
속도를 높여 부지런히 걸으며 계속 불러댔더니 후미대장님 뒤돌아 본다.
"거기 잠깐만 서 보세요, 우리 지금 잘못 가고 있어요, 발자국을 보세요 두분 것 밖에 없잖아요."
선두대장에게 무전기로 교신을 하니 들리다 말다 한다. 전화기를 꺼내어 자세하게 얘기하니
"찦차를 못보았느냐, 발전소도 못보았느냐?" 여러가지를 묻는데 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방향 틀린 것이 확실하여 뒤로 돌아 내려딛는데 정상 표지석에서 만났던 다른 팀 일행 여러명이 줄줄이 뒤따라 올라온다.
"어디로 가세요? 우린 지금 방향이 틀려서 뒤돌아 가고 있는 중인데요."
"그래요? 앞에 가시는 것이 보여서 길이 맞는 줄 알고 뒤따라 왔는데요?"
우리 뒤를 따라 그들도 내려선다. 한참 가다보니 무전기를 든 그 팀 후미 대장인듯한 이와 몇 명이 오고 있다.
자세한 얘기를 하니 그분은 오히려 우리 팀을 쫓아가다 이쪽으로 오는 중이라 하여 서로 쳐다보며 한참을 웃었다.
같이 술도 나눠 마시고 오는 길 이란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우리팀만 보고 쫓아다닌 꼴이 되었다.
정상 가까이까지 가니 철조망 대문 앞에 선두대장이 와 기다린다. 바로 삼거리로 된 곳.
정상에서 내려온 임도는 그곳에서 좌회전 턴 하듯 구부러지고 우린 직진을 했던 것이다.
내려딛는 길은 넓으나 그늘이라 눈은 녹지 않고 다져지가만 했다. 발전소 건물을 지나자 마자 우측 산 속으로 들어서니
울창한 소나무 아래 조릿대와 싸리가지가 얼굴을 할퀴는 숲, 눈이 쌓여 길은 안보이고 먼저 간 사람들
폭 좁은 발자국따라 내려 딛는데 고도가 뚝뚝 떨어진다.
눈 속에 난 발자국 따라 걸으니 조릿대를 밟아 미끄러지기도 하고 좁은 발자국 폭에 몸 균형을 잃어 헛 짚다보면
허리에 충격이 와 엄청 아프다. 배는 고파오는데 앉아 눈이 많이 쌓여 쉴만한 곳이 없어 계속 걸을 수 밖에 없다.
한참을 내려 딛으니 태기산성 비가 있는 쉼터, 긴 의자가 몇 개 있고 먼저 내려온 몇 몇이 기다려 주고 있다.
가스와 버너를 갖고오신 ㅊㄱ님 얼른꺼내 얼큰한 만두국 끓이시고 뜨거운 물과 밥 꺼내 함께 오찬을 즐긴다.
가파른 능선을 한동안 내려 딛으니 예전에 와서 지루하게 걷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눈은 없었으니
걷기가 수월했음에도 지루하게 느껴졌으니 눈 속에 무릎까지 빠지며 걷는 지금이야 오죽하랴.
이건 산행이 아니라 무슨 극기훈련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알바를 했기때문에 더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봉복산이 보이는 산내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세 시. 짧게 탄다던 산행이 알바로 길어졌다.
군부대가 있는 정상에서 조망되는 풍광은 그나마 겨울철이라 눈쌓인 산들과 스키장이 보이는 정도 이지만,
봉복산 옆에 있는 덕고산에서 바라보면 산세가 장쾌하기 그지없이 아름다운 산이다.
풍력발전기는 선자령을 지나 동해가 보이는 곳에 즐비하게 나열된 발전기 숫자 보다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