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日記

노인봉과 소황병산

opal* 2009. 8. 25. 05:09

 

몇 번의 산행이 더 있었지만 생애 처음 '산악회'라는 곳에 신청하여 걸었던 산으로 입력된 노인봉. 

 진고개 들머리 도착(09:45)하니 동대산 위로는 먹구름 맴돌고 노인봉 위로는 새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구색 맞춘다.

 

폭염 내리쬐던 炎天이 갑자기 멀리 보이고, 하늘과 땅 사이 사방을 온통 푸르게 변화시키며 '처서'라는 절기를 

민감하게 전하던 함양 백운산 산행 날, 4년 전 기억이 떠올라 생각하니 '처서'가 그저께 지났다.   

 

들머리 언덕 오르니 아직 남아있는 달맞이꽃과 당귀 등 여려가지 초가을 꽃들이 잔치 벌이며 반긴다. 

노인봉을 향해 가파르게 오르는 등로엔 나무계단이 몇 번을 방향 틀어가며 이어져 있어 오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나무계단을 한동안 오르고 나니 흐드러지게 핀 며느리 밥풀꽃이 지표면을 빨갛게 물 들였다. 교목은 교목 대로 그늘을 만들며

뜨거운 여름 막바지 산행을 시원하게 해주지만, 주체 할 수없이 흐르는 땀은 이마에 묶은 수건이 무색하게 눈으로 흘러들어

눈물을 만드니 애꿎은 안경만 썼다 벗었다 반복하다 아예 벗어 가방에 넣었다.  

 

고도 높은 정상 부근 작은나무 사이 붉은 흙이 들어난 곳은 예전처럼 노란 마타리가 군락 이루며

파란 하늘과 마주보고 얘기 나누고 있다.

 

한 시간 반을 걸어 노인봉(1338m) 정상 바위에 올라서니(11:15)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시야를 가리고, 방금 전에 보이던

 동대산이나 반대편 황병산 조망을 모두 감춘다. 머리 속엔 백두대간 종주 추억 떠오르는데 아무 곳도 보이질 않는다. 

 

양면에 한자와 한글로 표시된 표지석과 기념 남기고 삼거리로 내려서니 앞 섰던 일행들 모두 기다리고 있다. 

개념도와 지도를 보며 아침 차 안에서 1차 설명이 있었지만 2진으로 짧게 탈 생각하고 귀담아 듣질 않았다.

노인봉 하면 보통 대피소에서 9km나 되는, 낙영폭포를 지나 만물상과 구룡폭포가 있는 소금강 계곡을 지루하게 걷는

코스를 연상하곤 하는데, 오늘 코스는 그곳 아닌 오지 산행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기에 1진으로 생각을 바꿨다.  

 

노인봉 대피소에서 소금강 계곡쪽으로 가는 좌측이 아니고  황병산 방향인 우측, 대장님이 오지 산행코스를 잡아 새롭게 발표,

백두대간 종주하며 선자령에서 소황병산 거쳐 걸어 왔던 곳, 지금은 유전자원 보호림 구역으로 지난해(2008년) 3월부터

2017년 2월 말일까지, 10년간 출입이 통제 되고 있다.

 

조망이라곤 전혀 없고 교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 발길이 자주 닿지 않은 흐릿한 길따라 걸으니

나무 그늘과 바람이 선선한 가을 날씨를 연출해 준다. 

이야기도 큰 소리로 못하고 모두들 함구한 채 조용히 한동안을 앞만보며 행군 하다 12시 넘어 숲 속 넓은 터 한 곳에 자리잡아 

뷔페같은 푸짐하고 맛있는  점심 식사 나눈다. 이런 오지에선 선두와 후미 그룹으로 나뉠 수가 없다. 한 사람이라도

낙오자가 생기면 길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옆 사람이 준비해온 곤드레 나물밥과 양념장으로 색다른 맛을 즐긴다.

 

식사와 과일 디져트까지 즐긴 후 휴식 시간 없이 일어나 다시 행군, 오르막이라 헉헉대며 숨가쁘게 오르니 한줄기 땀이 또 줄줄

흘러 내린다. 30분 정도 힘들게 오르다 울창한 숲에서 빠져 나오니 와~~~ 모두들 함성과 탄성이 터져 나온다. 

 

하늘조차 안 보이는 숲 속으로만 달려오던 밀림이 마술처럼 온데 간데 없어지고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방으로 너른 초원이 

눈 앞에 쫘악~ 펼쳐진다. 봉우리 하나가 완전히 초지인 해발 1430m의 소황병산이다. 우측으론 더 높은 황병산 꼭대기

군사 시설이 거까이 보이고 좌측으론 능선 넘어 선자령의 하얀 풍력기들이 반갑다고 손짓한다. 

 

추운 겨울 백두대간 종주할 때 많은 적설량으로 눈에 빠져 발 걸음 떼어 놓기도 힘들던 곳,

옆에서 같이 걷던 분이 갑자기 늪지에 빠져 허덕이고, 다리에 쥐가나 고생하고, 대관령부터 걸어 선자령을 지나

소황병산과 노인봉을 거쳐 진고개까지 도상거리 23Km를 해 길이도 짧은 겨울에 걷느라 하루 해를 꼴딱 넘기고

캄캄한 밤에 진고개 도착한, 평소보다 더 일찍 출발하여 하루 종일 10시간 동안 걸으며 고생했던 많은 추억이 어린 곳이다. 

 

넓은 초지에서 잠시 뒹굴어가며 기념 남긴 후 다시 황병산 쪽으로 가다 출입통제 구역 들어서서 하산을 서두른다(13:20). 

원시림 같이 어두운 숲 속은 길이 분명치 않아 가다가 되돌아 서기도 하며 작은 골짜기를 건너 길을 찾았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사람 발길 닿지않은 곳이라 가장 맛있다는 곰취가 맘껏자라  지천으로 깔렸다.

 

작게 소곤대던 물소리는 점점 커지며 흐르고 내려서다 보면 이쪽저쪽 물이 합수되어 더 크고 깊은 계곡을 만든다. 

커다란 바위 사이로 물소리 우렁차게 들리는 넓은 계곡을 이리 건너고 저리 건너며 내려 딛고 또 내려 딛는다.

 

오지 숲 속과 깊고 긴 계곡을 드나드니 지루함 없이 즐겁다. 사람 발길 닿지않은 새로운 명 코스라 더 기분 좋다. 

울창한 숲과 멋진 계곡이 한낮의 뜨거움을 서늘하게 바꿔주어 지루함 모르고 걷는 발걸음이 가벼운 하루,

자연과 산우님들에게 감사 드리며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땀 닦은 후 큰 도로로 나오니 차가 반긴다. 

도착(16:05)하고 보니 아침 들머리 진고개에서 멀지 않은 곳, 원점회귀 산행이 되었다.  산행 소요시간 6시간.

 

꼴찌까지 기다려 모두 차에 오르니 한 사람이 안 보인단다, '나도 노인봉 오를 때 마주 쳤는데',  

노인봉 삼거리에서 기다려 선두 후미 함께 가자 했는데 먼저 간다며 소금강 계곡 방향으로 혼자 갔다고 한다.

마침 통화가 되어 주문진에서 만나기로 약속, 이곳까지 와서 그냥 돌아설 수 없다며 다 같이 주문진 항으로 달린다. 

 

산행 후 주문진으로 향하는 길, 차 안에서 나로호 발사. 성공하는 장면을 보며 박수와 환호를 보낸 후 차에서 내려

횟집으로 들어섰다. "나로호 발사도 성공 했으니 이래 저래 한 잔 해야겠군,"  소금강 계곡으로 혼자 하산하신 분도 만났다.

백두대간 종주를 두 번이나 하고, 산행 경험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아침 머리 속엔 이미 소금강 계곡 코스가 자리잡고 있었단다.

아침의 내 생각과 똑 같았던 것이다.

 

싱싱한 회맛 즐긴 후 좋은 산행 코스 잡아주신 분께 모두들 즐거운 마음과 뜨거운 박수로 답하고 일어섰다.  

 

한껏 들뜬 분위기로  차에 오르니 발사에 성공했던 나로호는 궤도 진입에 실패 했다는 뉴스를 전한다.

들떴던 기분은 안타까운 마음들로 바뀌어 잠잠해지며 조용히 귀하행 차에 몸을 맡긴다. 

집이 먼 관계로 차가 일찍 끊어지는 회원을 위해 기사님이 아량을 베풀어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오늘 하루 즐겁고도 긴 산행 할 수 있었음에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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