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여행

오스트리아 → 독일 하이델베르크

opal* 2010. 6. 24. 05:44

 

  2010-06-24(목)

오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를 떠나  독일 하이델베르크(네카 강변에 위치한 대학도시)로 이동.

 

중세의 보석이라 불리우는 로텐부르크로 이동하여 마르크트 광장과 시청사 등 구시가지 관광

독일의 맥주의 고장 '뮌헨으로 이동하여♣ 마리엔 광장, 시청사, 프라우엔 교회등을 관광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에서.

 

아래 사진들은 독일 도착할 때까지, 휴게소에서 찍은 몇 장을 제외하고는 달리는 차 안에서 찍어 흔들리거나 창에 반사 되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자고 일어나 조식 후 독일로 향하는 길.   

 

 

 

 

얼룩과 반사, 얼비치는 차 유리가 창 밖의 멋진 풍광을 반감 시킨다.   

 

 

달리는 차 안에서 줌인 했더니 흐릿하다.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차에서 내리고 싶게 만든다. 잠시 쉬었다가고 싶은데... 나만의 생각이니...

 

 

 

아름다운 숲길이 차에서 내려 걷고 싶게 만든다.

 

 

 

 

휴게소의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0.5유로를 지불해야 한다. 어린이는 무료로 출입구가 낮게 생겼다.

대신 영수증으로 값어치 만큼 다른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다른이의 영수증과 합산해서 구매 할 수도 있는데 3장까지만 허용된다.

그렇지만 그 액수 갖고 살 수 있는것이 뭐가 그리 많으랴, 껌 값도 안되는 걸, 상술이 대단하다.

 

 

 

휴게소 건너편에서 얼른 찍고 후다닥.

 

 

 

 

 

숲길에서 나와 달리고 달려도 도로 양 옆으론 넓은 벌판이...

 

끝이 어딘지 모르는 지평선.

 

 

 

 

 

 

 

아름다운 오스트리아,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와 보리라... 스위스의 이미지도 좋지만, 오스트리아의 녹색 이미지도 마음에 와 닿는다.

며칠동안 본 거대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며 감탄했는데,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그에 못지않은 감동을 준다. 

인위적으로 꾸민, 인공미가 가미된 아름다움 보다는 순수한 자연을 닮고 싶음은 자연 속에 함께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어 그럴까? 

 

 

 

 

 

국경 부근이 아닌가 싶은데, 가이드가 깜빡 잠이 들어 설명을 못듣고 지나친다.

가이드야 안내하느라 피곤해서 그렇다치고, 아름답게 펼쳐지는 풍광을 버려둔채 차만 타면 잠을 청하는 일행들이 안타깝기도 하다.

 

 

↑이미 진입한 독일의 어느 휴게소 마당에서.

 

우리가 가야할 하이델 베르크와 프랑크트 안내 표시가 나오고, 하이델베르크 도착.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도시.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오덴발트 구릉지대에서 운하화된 네카어 강이 빠져나와 라인 평야로 흘러드는 지점에 있다.

1196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 이 도시는 1720년까지 라인팔츠의 중심지로서 선제후인 팔츠 백작가의 거주지였다.

30년전쟁(1632) 때 폐허가 되었고, 1689, 1693년에는 프랑스인의 침략으로 거의 파괴되어

지금 남아 있는 주요건물들은 대부분 중세의 고딕 양식이 아닌 바로크 건축 양식(18세기 후반까지 유행함)으로 되어 있다.

이 도시는 1802년 바덴에 양도되었고, 20세기에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30년 전쟁(Thirty year's War ; 1618년~1648년)은 신성 로마 제국이 있던 독일을 중심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전쟁이다. 최후의 종교전쟁, 최초의 국제전쟁이라 불리고 있다.

30년 전쟁의 시작은 종교전쟁 이었으나, 점차 영토 및 통상 등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상호 적대관계 및 동맹이 이루어지는 무력 대결로 변질되었고, 스웨덴이 참전한 1630년이후에는합스부르크 왕가,

부르봉 왕가,  바사 왕가 등에 의한 강대국 간의 파워게임으로 변화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개신교 연합으로 참전하면서

사실상 종교전쟁의 성격을 희석시켰다. 30년간 벌어진 전쟁은 유럽의 지도 및 종교, 문화 등을 크게 변화시켰다.

30년 전쟁이란 표현을 처음 쓴 이는 17세기의 사무엘 폰 푸펜도르프(Samuel von Pufendorf)라고 한다.>

 

1693년에 파괴되지 않고 남은 건물은 성령교회(1400~36)· 마르슈탈(1590, 옛날의 왕실 마구간)· 기사회관(1592) 뿐이었다.

그밖에 중요한 건축물로는 알테 다리(1786~88, 재건 1945 이후)와 시청(1701~03), 예수회 교회(1712)가 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흥미롭고 인상 깊은 건물은 하이델베르크 성이다.

이 성은 1689, 1693년에 프랑스인들에게 파괴되었고 1764년에는 벼락을 맞았지만, 강에서 100m 높이에 웅장하게 서 있는 붉은 사암 건물은

아직도 시가지를 압도하고 있다. 또한 이 성은 13세기에 짓기 시작했지만 가장 유명한 부분은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졌고,

성의 익면(중심 건물에서 옆으로 날개처럼 뻗은 부분)에는 오토-하인리히 관과 프리드리히 관이 있다.

프리드리히 관의 지하실에는 용량이 18만 5,500ℓ나 되는 거대한 포도주 통인 하이델베르크 술통(1751)이 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루프레히트카를대학교)는 루페르트 1세가 세웠고,

1386년에 교황 우르바누스 6세의 인가를 받았다. 이 대학교의 지질-고생물학 연구소에는 턱뼈 화석인

'하이델베르크인의 하악골'이 전시되어 있는데, 학자들은 이 화석을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로 분류하고 있다.

 

네카 강변의 아름다운 주택가, 저 산기슭에 철학자의 길이 있다.

하이델베르크는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도시로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오덴벨트 구릉지대에서

운하화된 네카강이 빠져나와 라인평야로 흘러드는 지점에 있다.

 

하이델베르크의 옛다리.

라인강의 지류인 네카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철학자의 길'에서 슈랑겐 골목으로 내려오는 길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는 목재 다리 알테 브리케(오래된 다리라는 뜻) 였는데 칼 데오로드가 1786~1788년에 개축하였다.

그래서 다리의 이름은 '카를 테오도어 다리' 이지만 사람들은 그냥 '옛다리'로 부른다.

이 다리 위에는 다리를 만든 '칼 테오도어'상과 지헤의 여신 '아테네(로마신화의 미네르바)'상이 있다.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Prinz Cart)' 배경 붉은 황소 선술집. 맥주 거리 이다.

 

유서갚은 대학과 예전의 영화로움을 나타내는 하이델베르크의 고성(Schloss).

 

 

비스마르크 광장.

 

점심식사를 위해 음식점(下,左)으로 가니 먼저온 팀이 식사중이라 다시 면세점 가게(下,右)로. 

 

 30년 전쟁에도 파괴되지않고 남아있는 성령교회(1400~36)와 헤라클레스. 교회 뒷부분이 시청사를 향하고 있다.

시청앞 광장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셩령교회는 구시가지 한가운데 마크트플라츠를 사이에 두고 시청사를 등지고 있다.

1344년 부터 1441년에 걸쳐 후기 고딕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1544년에 완성 되었다.

 선제후 55명의 묘소가 있었으나 1693년 루푸레히트 2세(1352//`1410)의 비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파괴되었다. 

30년전쟁 이후 카콜릭교회와 프로테스탄 교회로 소유권이 바뀌다가 1706년에는 교회 내에 장벽을 설치해 신 구교가 예배 드리기도 했다.

230년 후인 1936년에 장벽을 헐어 현재에 이른다. 지금은 신교로 되어 있다.

 

도로엔 돌이 깔려 있다.

 

시청앞 광장의 그리스 신화의 반신 반인 헤라클레스 상.

1703~1708년에 세워진 이 조각상은 파괴되었던 하이델베르크를 재건한 이곳 주민들의 영웅적인 노력을 상징하기 위해

세웠다고 하는데 진품은 선제후 박물관에 보관 중 이란다.

 

프리드리히 5세의 가족묘로 사용된 성령 교회.

 

성령교회와 길거리표 상점. 

 

 

한식 집에서 점심식사, 노천카페,  下,右-보행 전용도로.

 

 

점심식사 후 성령교회가 보이는 한인 식당 앞에서.

 

노천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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