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서 정주 - 가을에, 침향(沈香)

opal* 2010. 11. 24. 22:31

 

 

가을에

 

                                                    서 정주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오게

저 속에 항거하기에 여울지는 자네

그 소슬한 시름의 주름살들 그대로 데리고

기러기 앞서서 떠나가야 할

섧게도 빛나는 외로운 안행 - 이마와 가슴으로 걸어가야 하는

가을 안행이 비롯해야 할 때는 지금일세

 

작년에 피었던 우리 마지막 - 국화꽃이 있던 자리

올해 또 새것이 자넬 달래 일어나려고

백로는 상강으로 우릴 내리 모네

 

오게

지금은 가다듬어진 구름

헤메고 뒹굴다가 가다듬어진 구름은

이제는 양귀비의 피비린내나는 사연으로는 우릴 가로막지 않고

휘영청한 개벽은 또 한 번 뒷문으로 부터

우릴 다지려

아침마다 그 서리 묻은 얼굴들을 추켜들 때일세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침향(沈香)

 

                                        서 정주

 

沈香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 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 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거 넣어 둡니다.

沈香은 물론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

이 잠근 참나무 토막들은 다시 건져 말려서 빠개어 쓰는 겁니다만,

아무리 짧아도 2~3百年은 水低에 가라앉아 있는 것이라야

솔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다. 千年 쯤씩 잠긴 것은 냄새가 더 좋굽시요.

 

그러니 질마재 사람들이 沈香을 만들려고 참나무 토막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가

陸水와 潮水가 合水치는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自己들이나 自己들 아들딸이나 손자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게 아니고,

훨씬 더 먼 未來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後代들을 위해섭니다.

그래서 이것을 넣는 이와 꺼내쓰는 사람 사이의 數百 數千年은

이 沈香 내음새 꼬옥 그대로 바짝 가까이 그리운 것일 뿐,

따분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