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서 정주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오게
저 속에 항거하기에 여울지는 자네
그 소슬한 시름의 주름살들 그대로 데리고
기러기 앞서서 떠나가야 할
섧게도 빛나는 외로운 안행 - 이마와 가슴으로 걸어가야 하는
가을 안행이 비롯해야 할 때는 지금일세
작년에 피었던 우리 마지막 - 국화꽃이 있던 자리
올해 또 새것이 자넬 달래 일어나려고
백로는 상강으로 우릴 내리 모네
오게
지금은 가다듬어진 구름
헤메고 뒹굴다가 가다듬어진 구름은
이제는 양귀비의 피비린내나는 사연으로는 우릴 가로막지 않고
휘영청한 개벽은 또 한 번 뒷문으로 부터
우릴 다지려
아침마다 그 서리 묻은 얼굴들을 추켜들 때일세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침향(沈香)
서 정주
沈香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 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 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거 넣어 둡니다.
沈香은 물론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
이 잠근 참나무 토막들은 다시 건져 말려서 빠개어 쓰는 겁니다만,
아무리 짧아도 2~3百年은 水低에 가라앉아 있는 것이라야
솔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다. 千年 쯤씩 잠긴 것은 냄새가 더 좋굽시요.
그러니 질마재 사람들이 沈香을 만들려고 참나무 토막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가
陸水와 潮水가 合水치는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自己들이나 自己들 아들딸이나 손자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게 아니고,
훨씬 더 먼 未來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後代들을 위해섭니다.
그래서 이것을 넣는 이와 꺼내쓰는 사람 사이의 數百 數千年은
이 沈香 내음새 꼬옥 그대로 바짝 가까이 그리운 것일 뿐,
따분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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