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이 해인- 눈 내리는 날, 12월의 엽서, 후회

opal* 2010. 12. 8. 14:00

 

 

 

눈 내리는 날

 

                                         이 해인

 

눈 내리는 겨울 아침
가슴에도 희게 피는
설레임의 눈꽃

오래 머물지 못해도
아름다운 눈처럼
오늘을 살고 싶네

차갑게 부드럽게
스러지는 아픔 또한
노래하려네

이제껏 내가 받은
은총의 분량만큼
소리없이 소리없이 쏟아지는 눈
눈처럼 사랑하려네

신(神)의 눈부신 설원에서
나는 하얀 기쁨 뒤집어쓴
하얀 눈사람이네

 

12월의 엽서

 

                             이 해인

 

또 한해가 가 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해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남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합니다.

같은 잘못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엔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로 행복할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후회

 

                                       이 해인

 

내일은
나에게 없다고 생각하며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모든 것을 정리해야지

사람들에겐
해지기 전에
한 톨 미움도
남겨두지 말아야지

찾아오는 이들에겐
항상 처음인 듯
지극한 사랑으로 대해야지

잠은 줄이고
기도 시간을
늘려야지

늘 결심만 하다
끝나는 게
벌써 몇 년째인지


하루가 가고
한숨 쉬는 어리석음

후회하고도
거듭나지 못하는
나의 미련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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