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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공주 공산성(公州 公山城)

opal* 2011. 5. 3. 22:30

 

공주 공산성 (公州  公山城, 사적 제12호, 둘레 2,450m)과 금서루.

백제시대 도읍지인 공주를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산성(山城)으로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위치한다

 

백제시대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문주왕 1) 한산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하였다가, 538년(성왕 16)에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5대 64년간의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축조한 것으로, 당시의 중심 산성이었다.

해발 110m인 공산()의 정상에서 서쪽의 봉우리까지 에워싼 포곡식() 산성이며 성의 둘레는 2450m이다. 

평면으로는 동서 약 800m, 남북이 약 400m이며 사방에 석벽이 남아 있다. 원래 토성이었는데 조선 중기에 석성으로 개축된 것이다.

 

동쪽과 남쪽 성벽은 돌로 쌓아 높이 약 2.5m인데, 전면만을 석축하였으며 내면은 토사·잡석으로 다져 붙였고, 너비는 3m이다.

동쪽 성벽 밖에 토성이 있는데, 높이는 무너져서 알 수 없으나 너비는 약 3m이다.

서쪽 성벽은 본래 토축()된 위에 돌로 쌓아 외면만을 축조하여 높이는 4m 정도이다.

지금은 원형을 알 수 없는 서문터(현재는 통로) 남쪽은 석재로 쌓았는데, 너비 4.5m, 높이 3m이다.

 

성벽 안에는 7∼8m의 호()가 남아 있다. 북쪽에는 조잡한 석축성벽()이 높이 2m, 너비 1.5m 정도로 남아 있으며,

수구()도 있다. 남쪽에 남문터(현재 )가 있고, 그 서쪽은 높이 3m, 너비 3.7m로 석축하였고, 성내에는 너비 11m의 호가 있다.

진남루 앞의 넓은 터는 백제의 궁터이고, 공북루()의 윗부분은 건물터로 추정된다. 또, 이 부근에는 우물터 3개가 있다.

성내에는 후대에 세워진 영은사, 광복루(), 쌍수정()·연못터 등이 남아 있다. 

 

 

  

 

 

 

1993년 서문터에 복원한  금서루.

 

 

 

 성곽과 공산정.

 

 금강교.

 

 공산정(公山亭)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樓, 충남유형문화재 37)

 

금강과 공북루,  발굴이 한창인 현장을 배경으로.

 

 공산정 루에서 조망되는 진남루, 금감, 성곽 등의 모습

 

공산정과 성곽.

 

 발굴 중인 모습을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에서.

공북루, 충남유형문화재 제37호. 공산성의 북문이며, 금강가의 나루터에 위치한다.

1603년 관찰사 유근이 공산성을 축성하면서 이 자리에 있던 망북루를 중건하여 공북루라고 고쳐 불렀다.

 

 거목

 

 잠종 냉장고

 

금강.

 

금강변에 위치한 공산성 만하루(公山城 挽河樓)와 연지.  연지 안의 수위는 금강의 수위와 같다고 하는데...  정말일까?

 

만하루, 1754년(조선 영조 30) 충청감사 김시찬()이 공산성 동쪽 연못가에 6칸으로 건립하였다.

박윤원()이 지은〈만하루기〉에 의하면, 만하루 명칭은 중국 시인 두보()의 시 세병마()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1859년(철종 10)에 편찬된 《공산지()》와 1871년(고종 8)에 편찬된 《호서읍지(西)》에도 만하루가 언급된 것으로 미루어

그때까지는 존재하였으며,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그 이후에 홍수로 붕괴되어 매몰되었다.

공주시 산성동. 공주기념물 제42호.

1980년 공산성 내의 유적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만하루의 건물터가 확인되었고, 1984년 지금의 누각으로 복원되었으며,

2006년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다. 지금의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건물이며, 옆에 연못도 복원되어 있다.

8각으로 다듬어진 초석()과 주위의 기단석() 디딤돌 등은 원형대로 이용하고, 건물은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보통의 누정()들이 풍류를 즐기거나 강학()을 목적으로 건립된 데 비하여

만학루는 공산성을 방비하는 군사적 기능을 중심으로 하고 경승 관람을 겸하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영은사(靈隱寺),  충남 공주시 금성동 쌍수산(雙樹山) 공산성(公山城) 내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19세기에 편찬된 《공산지()》에 따르면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절 주변에 흩어져 있는 석탑 재료가 고려 초기의 유물이므로 그때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일설에는 1458년(조선 세조 4) 세조의 명으로 창건되었다고도 한다. 세조 때에는 묘은사()라고 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들이 모여 훈련을 받고 승병장 영규()의 지휘 아래 금산전투에 참여하였다.

1616년(광해군 8) 이 절에 승병장을 두고 도내 사찰을 관리하게 하였다.

특히 1624년(인조 2) 이괄()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인조가 이 절로 피난을 오기도 하였다.  이때 절 이름을 영은사로 고쳤으며,

인조가 이 절이 국방의 요지임을 깨닫고 승병을 계속 주둔하게 함으로써 호서의 대표적 호국사찰이 되었다.

건물로
원통보전과 관일루() 등이 있다. 이중 원통보전은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51호로 지정된 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관세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 뒤에는 후불탱화와 칠성탱화·신중탱화·산신탱화·독성탱화가 걸려 있다. 이중 후불탱화는 1888년(고종 25) 약효()가 그린 것이고,

나머지는 최근 제작된 것이다. 관일루는 ㄷ자형 맞배지붕 건물로,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합숙소로 쓰이던 건물이다.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옛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유물로 1715년(숙종 41) 서산의 문수사()에서 제작된 동종이 전해진다.

경내에는 석탑 부재와 초석·장대석 등이 남아 있다. 이중 석탑 부재는 옥개석으로 가로 80cm, 세로 80cm, 높이 21cm 규모이며,

우물의 뚜껑으로 사용되고 있다. 장대석은 요사 기단부와 관일루 기단부, 원통보전 계단 등에 끼어 있다.

초석은 관일루 초석의 일부로 쓰인 것으로 미루어 고려 초기의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절 부근에서 불상 6구가 발굴되었으나 이 절과 관계 있는 유물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아있었는데, 1993년에 동문터에는 영동루 서문터에는 금서루를 복원하였다

 

공산성 광복루(公山城光復樓)

 공주시 금산동 공산성에 있는 누각,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50호로 지정되었다

공산성은 동서로 마주하고 있는 두 개의 산봉우리를 에워싼 형태로 축조되어 있다.

동쪽 산봉우리는 해발 110m,  서쪽 산봉우리는 해발 85m인데, 광복루는 동쪽에 있는 해발 110m의 산봉우리 정상부에 있다.
2층 누각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초익공 양식으로 장식적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8각의 높은 주초 위에 기둥을 올렸으며, 처마는 홑처마이고, 네 귀퉁이를 반전시켜 경쾌한 느낌을 준다

1984년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로 지정된 이후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져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2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층계도 있는데, 층계도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공주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조선시대 건축물 중의 하나다. 또한 중군영의 문루였다는 점에서 공주의 역사적 위치를 엿볼 수 있다.

원래는 공산성 안에 군사가 주둔했던 중군영()의 문루()로서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樓)의 서쪽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이곳으로 옮겨세우고 웅심각()이라 불렀다. 8·15광복 이후 다시 광복루라 고쳐 불러 지금에 이른다.
1946년 4월 백범 김구()와
성재 이시영()이 이곳에 와 이 누각을 보고, 나라를 되찾았다는 뜻을 기리고자 광복루라 고쳐불렀다.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쳤다

쌓은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며,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공산성으로,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공산성 내에는 쌍수정 사적비(충남유형문화재 35), 명국삼장비(충남유형문화재 36), 쌍수정(충남문화재자료 48),

영은사 대웅전(충남문화재자료 51), 공주 공산성 연지(충남기념물 42), 공주 공산성 진남루(충남문화재자료 48),

목사 김효성의 비(충남문화재자료 71) 등 많은 문화유적이 있다.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

 

진남루.

 

 

공산성길.

 

 

공산성에서 바라본 백제 무령왕릉 연문.

 

공주시 백제 무령왕릉 연문(羨門, 돌방무덤의 밖에서 널길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돌문. 널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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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에 대한 사진은 우측 메뉴 'Story' 목록 공주 송산리 고분(公州 宋山里 古墳), 무령왕릉(武寧王陵, 2011.2.19)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