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이 정하 - 바람 속을 걷는 법 1,2,3,4

opal* 2011. 7. 29.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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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속을 걷는 법 1

 

                                            이 정하

 

바람이 불었다.
나는 비틀거렸고,
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리웠다.

 

 

바람 속을 걷는 법 2

 

                                                     이 정하

 

바람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그래,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
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은 높이 나는지

 

 

바람 속을 걷는 법 3

 

                                                 이 정하

 

이른 아침, 냇가에 나가
흔들리는 풀꽃들을 보라.
왜 흔들리는지, 하고많은 꽃들 중에
하필이면 왜 풀꽃으로 피어났는지
누구도 묻지 않고
다들 제자리에 서 있다.
이름조차 없지만 꽃 필 땐
흐드러지게 핀다. 눈길 한 번 안 주기에
내 멋대로, 내가 바로 세상의 중심
당당하게 핀다

 

 

바람 속을 걷는 법 4

 

                                        이 정하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집 밖을 나섰습니다

마땅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걷기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함께 걷던 것을 혼자 걷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싫었던 일이지만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잊었다 생각하다가도 밤이면 속절없이 돋아나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천 근의 무게로 압박해오는

그대여, 하루에도 수 십번씩 당신을

가두고 풀어주는 내 마음 감옥을 아시는지요

 

잠시 스쳐간 그대로 인해 나는 얼마나 더

흔들려야 하는지

추억이라 이름 붙인 것들은

그것이 다시는 올 수 없는 까닭이겠지만

밤길을 걸으며 나는 일부러 그것들을

차례차례 재현해 봅니다

 

그렇듯 삶이란 것은

내가 그리워한 사랑이란 것은

하나 하나 맞이했다가 떠나보내는 세월 같은 것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아

떠난 사람의 마지막 눈빛을 언제까지나 떠올리다

쓸쓸히 돌아서는 발자국 같은 것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