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안 도현 - 가을엽서, 간격, 가을의 전설

opal* 2011. 11. 1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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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엽서

 

                                                         안 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간격

 

                                                         안 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鬱鬱蒼蒼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가을의 전설

 

                                                                            안 도현

 

완주군 경천면 대아리 저수지 물가에

빈 배 한 척 한가로이 매여 있기에

그 배 빌려 타고 단풍놀이나 즐겨볼까 싶어서

주인네 집을 물어 물어 찾아갔더니

주인은 낮술에 취해 허리띠 풀어놓고

마루 위에 붉은 고추 멍석으로 누워 잠들었고

주인 아낙께서 고추를 매만지다 하시는 말씀

"대낮에 일도 없이 뭔 배를 탈라고 한다요?"

그 말씀 한마디에 화들짝 놀란 내 아내는

뒷걸음치다가 저만치서 막 불이 붙어서

그만 단풍나무 한 그루로 타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