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여행

보길도와 땅끝마을

opal* 2010. 10. 13. 21:49

 

2010.10.13~14. 청포도 모임 1박 2일 가을여행, 보길도와 청산도 중 보길도와 땅끝마을 편.

보길도는 두 번째 여행이고, 땅끝마을은 세 번째의 여행이다.

 

전라남도 완도군에 속하는 보길면(甫吉面)은 완도군 서쪽에 위치하여 4년 전(2006.04.12 )에는 완도 화흥포항에서 배를 타고

보길도를 갔었으나 이번에는해남 땅끝마을에서 노화도행 배를 타고 노화도에서 보길대교를 건너 갈 수 있었다.

 

고산의 삶은 유배와 은거 생활의 지속이었다. 고산은 평생 세 차례, 14년을 유배로 보냈고 보길도에서는 12년 동안 은거하였다.

성균관 유생 시절, 광해군을 등에 업고 권력을 남용한 이이첨 등의 죄상을 상소문으로 올리자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된다.

이를 시작으로 소신있게 의견을 펴는 그의 벼슬생활은 견제로 제 뜻을 제대로 펼 수 없게 된다.

 이에 낙담한 고산은 귀향한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왕자가 피신해 있는 강화도로 향했으나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윤선도는 세상과 결별하겠다는 결심으로 제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를 발견하고

그곳의 뛰어난 경치에 반해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짓고 정착한다.

 

 

 

4년 전 보길도에 처음 가던 날(2006.4.12)은 완도 화흥포 항에서 보길도행 배를 타고 직접 갔는데 이번엔 땅끝마을에서 노화도행 배를 탄다. 

 

 

 

 

 

 

노화도 선착장에 하선하여,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새로 놓여진 다리를 차로 건너 보길도에 들어가게 된다.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보길대교를 건너 보길도에 입도.

 

보길도는 윤선도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섬 이다.
세연정을 지나 격자봉 아래로 가다보면 조그마한 세 채의 기와집이 보인다.

이곳은 '낙서재'로 고산이 주자학을 연구하며 기거했던 곳이다.

동천이란 산천이 아름답다는 뜻과 시선이 사는 곳 또는 하늘로 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고산은 이곳을 부용동 제일의 절경으로 꼽았다.

동천석실은 윤선도가 1000여평의 공간에 한 칸 정자와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전을 조성하고 차를 마시며 시를 읊었던 곳이다.

 

윤선도는 1636년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이끌고 강화도로 갔으나 회의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의 절경에 매료돼 머물렀다.

윤선도가 머물렀던 부용동 일대는 현재 명승 제34호 보길도 윤선도 원림으로 조성돼 있다.

 

 

 

 

 

 

고산은 부용동 일대에 자신이 거처한 집인 낙서재(樂書齋)를 비롯, 세연정(洗然亭), 곡수당(曲水堂) 등의 건물을 지었다.

현재는 많은 건물들이 사라졌거나 그 터만 남아 있어 옛 모습을 보기에 어렵다. 세연정은 1992년에 복원되어 그 모습을 후세에 전해주고 있다. 적자봉의 맑은 계곡물을 받아 세연지를 만들고, 세연지의 물을 끌어들여 인공연못 회수담을 만든 후 두 연못 사이에 정자 세연정을 만들었다. 세연정은 우리 전통 정원을 대표하는 정원으로 꼽힌다. 세연정 앞에는 동대와 서대로 불리는 단이 있는데, 이곳은 무희가 춤을 추던 곳이다. 세연정에 앉아 무희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시를 읊는 한 선비의 유유자적한 모습이 저절로 그려진다

 

 

 

 

 

 

 

 

 

 

 

 

 

 

비가 오는 날에 물을 담아두기 위해 설치한 판석보는 세연지에서 넘친 물이 흘러 마치 작은 폭포를 연상케한다.

 

 

어부사시사

 

 

 

65세에 고산은 보길도에서 <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를 완성한다. 속세를 떠나 바다와 더불어 어부와 낚시하며 사는 여유로운 삶의 모습이 엿보인다. 세상과 등지고 경치 좋은 곳에서 은거하며 지낸 윤선도의 삶은 현대인에게 부러움의 대상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며 지낼 수 밖에 없었던 고산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세상을 등진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자신을 버린 것이라는 아픔이 내재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완도 정도리 구계등(莞島程道里九階燈) - 전남 완도군 완도읍 정도리에 있는 해안선.

1972년 7월 24일 명승 제3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114,317㎡이다.

활[]모양의 해안선을 따라 오랜 세월 파도에 깎여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자갈밭이 장관이다.

구계등이란 명칭 유래는 알 수 없으나 파도에 밀려 표면에 나타난 자갈밭이 9개의 계단을 이루어 구계등이라 불린 듯하다.

 

자갈밭 너비는 83m이고 약간 급경사를 이루었다. 수중으로 연장은 약 750m로 자갈밭을 양편에서 감싸는 형세이다.

자갈밭의 갯돌(청환석)은 밤알만한 것부터 다양한 크기가 있으나 겉은 매끈하다. 자갈밭의 모양도 큰 풍파가 있을 때마다 쓸려서

수중으로 들어가 버렸다가 다시 해안으로 올라오기를 되풀이하기 때문에 전개 양상도 그때마다 다르다.

 

해변의 뒤쪽에는 해송을 비롯하여 감탕나무·가시나무 등 남부 특유의 상록수태산목·단풍나무 등이 해안선을 따라 안정감 있게 펼쳐졌다.

신라 흥덕왕 3년 해상왕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였을 때 주민들로부터 구계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궁중에서 이 지대를 녹원지로 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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