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여행

강화 마니산(468m), 2015년 시산제.

opal* 2015. 3. 17. 22:02

 

 

 

산행 날 아침 모닝콜 소리를 못들은게 이번이 두 번째,

2년 전(2013.10.29) 치악산 가는 날 처음 못들어 산엘 못갔는데 이번엔 참석할 수 있었다.   

다른 산 같으면 못 갔을텐데 서쪽에 있는 마니산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당산역에서 마지막 산님들을 태운 후 방향을 뒤로 돌려 서쪽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산행 후 시산제가 있는 날,

1진은 선수리에서 산행 시작하여  5시간 예정이라, 2진으로 메인 코스인 계단 코스로 올랐다. 

 

마니산은 혼자서도 꽤 여러번 갔던 곳, 산행 들머리는 메인인 화도, 선수리, 함허동천, 정수사 등 어러군데가 있다.

화도에서 진입해도 계단길과 단군로가 있다. 선수리 코스와 단군로 코스는 참성단 근처에서 만나게 된다.

근래 몇 년 동안은 단군로를 이용했었는데 오늘은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좌측 능선 코스를 처음으로 이용해 보았다.

도중에 가파른 계단 코스를 만나기는 하지만 초입의 뒷동산 맛이 나는 오솔길은 포장도로 보다 휠씬 좋다. 

 

기(氣)가 세기로 많이 알려진 마니산,  

일행 거의 다 1진으로 가고 2진은 네 명뿐,  이런 저런 얘기 주고 받으며 오르니 지루한 줄도 모르고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 가보니 참성단 문이 열려 있다. 오전 시간은 개방을 하는 모양이다.

마니산을 처음 찾았을 땐 참성단 둘레에 철조망이 없어 아무때나 참성단 꼭대기까지 올라 갈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참성단 둘레에 철조망이 생기고 출입통제를 하며

1월 1일 새해, 10월 30일 개천절, 전국 체전 시 성화 채화,  기타 행사 등에만 개방하며 출입을 통제 했었다.

 

3년만에 다시 와보니 참성단 울타리 문이 열려 있고, 여름엔 10:00~17:00, 겨울엔 10:시~16:00로 되어 있다.

그러나 참성단이나 담에는 올라 갈 수가 없게 글귀를 써 놓았다.

 

 

 

참성단

 

 

塹星壇 사적 제136호

강화도 마니산의 산정에 있는 제천단(祭天壇)의 이름.
본래 단군(檀君)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지은 제단이라고 전해지는데,
그 모양은 돌로 쌓아 위는 모가 나고 아래는 둥글게 하여 각각 하늘과 땅을 나타내었음.
고려 시대에는 여기에 재궁(齋宮)을 두고 대언(代言)을 보내어 초제(醮祭)를 올렸고

조선에 이르러서는 세종 12년(1430)에 2품 이상의 관원을 보내어 초제를 올린 것으로 기록에 나타남.

 

제단은 다듬은 돌로 하부는 둥글게, 그 위에 네모난 단을 쌓아 올렸다. 둥근 단의 지름은 4.5m이며, 네모난 단은 1.98m의 정방형이다.
고려 원종 11년(1270)에 보수하였으며 조선 인조 17년(1639)에 수축하였고, 숙종 26년(1700)에도 보수하였다.
지금은 해마다 개천절에 이곳에서 단군의 제사를 지내며, 한편 전국 체육대회 때마다 대회장에 타오르는 성화는

이 참성단에서 7선녀에 의해 채화되어 대회장으로 운반 점화되고 있다

 

 단군성조가 366가지에 이르는 나라 다스린 공을 세우면서 아울러 제천의 대례를 행하고

보본(報本:생겨나거나 자라난 근본을 잊지 아니하고 그 은혜를 갚음)의 뜻을 드높였던 곳이다.

 

그러한 뜻이 오늘날에도 전해지고 있어 전국체전 때에는 이 제천단에서 봉화를 채화하는 의식이 열리고,

특히 개천절에는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제천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이 분이 단군이다. ……제천단을 쌓고(강화도 마니산에 있음.)

 삼랑성(三郎城)을 쌓으시다(성이 강화 전등산에 있고 세 아들을 보내어 쌓았기 때문에 삼랑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수산집 修山集≫의 <동사 東史>에는 “제천단은 강화도 마니산에 있으니,

단군이 혈구(穴口:강화의 옛이름)의 바다와 마니산 언덕에 성을 돌리어 쌓고 단을 만들어서 제천단이라 이름하였다.

 

단은 높이가 17척인데 돌로 쌓아 위는 네모나고 아래는 둥글다. 위의 네모는 각 변이 6자 6치요 아래는 둘레가 60자이다.

혹자에 의하면 마니는 강과 바다의 모퉁이라, 땅이 따로 동떨어지고 깨끗하며 고요하여 신명(神明)의 집이 된다.

그러므로 제터를 닦아 한얼님께 제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은 음(陰)을 좋아하고 땅은 양(陽)을 귀하게 여기므로 제단은 반드시 수중산(水中山)에 만드는 것이요,

 위가 네모나고 아래가 둥근 것은 하늘과 땅의 뜻을 세운 것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1639년(인조 17)에 개수축(改修築)하였으며, 1700년(숙종 26)에 또 개수축하여 비를 세웠는데,그 비문에 “동녘땅 수천리 전체를 둘러서

강도(江都)가 보장지중지(保障之重地)가 되고,
강도 수백리 전체를 둘러서 마니가 으뜸가는 명산이라. 산 서쪽 제일 높은 곳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드니 이른바 참성단이라.

정상목을 세원호은 옆 봉우리로 이동하여 잠시 간식 타임. 1진은 아직 정상엘 못오고 있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능선을 밧줄 잡고 바위를 오르내리며 함허동천 쪽으로 향한다.

전에는 바위 모양이 신기하여 사진도 많이 찍었건만 여러번 오다 보니 셔터 누르기도 귀찮어 진다.

 

90년대 초반인가? 마니산엘 처음 왔을땐 암릉에 밧줄이나 다리가 없어 바위를 어렵게 오르 내리며 걸었었다. 

전통문화 답사차원에서 참성단과 정수사를 찾은 것인데 능선에 바람도 심해 어떤이들은 고소증에 벌벌떨던 이도 있었다.

  두 번째 왔을 때가 첫 산행(2004년)으로 이른 봄, 참성단 정상에 올랐다 선수리 쪽으로 하산하며

조망되는 푸른 바닷물을 바라보며 동행인이 우리 가곡 '고향'(정지용작 채동선곡)을 목청높여 불러 제끼던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필카만 있었고, 디카 구입전이라 기록을 안했다.   

 

세 번째 산행(2006.6.23) 때는 단군로에 계단,  암릉에 칠선교. 참성단 울타리 등 설치 공사가 있었고.

네 번째(2007.7.27)는 안개속 나홀로 산행 후 함허동천에서 화도로 다시 차 가지러... 다섯 번째 2007.12.26 ㅊ산악회 종산제.

여섯 번째(2009.1.1)는 나홀로 일출맞이, 일곱 번째 2010.3.27.

여덟 번째 2012.12.11. 종산제, 그러고 보니 이번이 아홉 번째.

매년 산행한 것은 아니지만, 산행 십여년에 아홉 번째면 평균 1년에 한 번꼴로 찾은 셈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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