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인도여행 닷새 째, 시칸드라와 타지마할

opal* 2016. 1. 27. 21:00

오늘의 일정

▶ 악바르 대제의 무덤 시칸드라
▶ 최고의 건축미를 자랑하는 타지마할 (세계문화유산)
▶ 샤 자한이 말년에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된 곳, 아그라 성 (세계문화유산

▶ 샤 자한과 뭄따즈 마할의 사랑을 묘사한 인도 뮤지컬 깔라끄리티에서 < 모하밧 더 타지쇼 > 관람

오전 스케줄

▶ 악바르 대제의 무덤 시칸드와  ▶최고의 건축미를 자랑하는 타지마할 (세계문화유산)

 

 

 

 

묘를 안치한 건물 외관이 엄청 화려하다.

 

악바르 황제 묘 건물

아그라 서북쪽 9㎞ 되는 곳인 시칸드라(Sikandra)에 위치하였다.
넓은 정원 주위에는 높은 담장이 둘러서 있고 사면에 높은 대문이 설치되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상당한 거리를 두고 정원 중앙부분에 묘 건물이 있다.

제1층은 1변이 약 97m의 사각형이며 4면 중앙에는 높은 아치형 대문이 있고 그 좌우에는 5개의 아치가 줄지어 서 있다.
모서리 상부에는 8각형 정자가 설치되었다.
중앙에 있는 아치형 대문은 백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며 이 문을 들어서면 경사로가 지하층의 묘실로 연결되어 있다.

제2층은 1변이 56m의 사각형이며 1층 중앙에 있는 아치형 대문을 제외하고 모든 부분에는 적색사암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제3층은 백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악바르 황제가 사망한 후 그의 후계자인 자항기르 황제가 이 부분을 만든 까닭이라 생각된다.
 최상층은 회랑식으로 만들고 중앙에 특이한 묘석을 설치하였다.
이 건물의 건설공사는 기공한 후에 20년이 걸렸으며 완성된 것은 1613년이다.
이 묘 건물은 유례가 없이 웅대하며 특이한 건축물이나 남성적인 웅장함과 화려하고 섬약한 표현을 함께 나타내고 있는 건축물이다.

악바르 황제 시대의 건축양식은 서방의 이슬람교적인 요소보다 오히려 힌두교적인 인도의 전통적 건축양식 요소가 많이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악바르 황제의 정치적인 이념이 종교적 및 문화적 면에서 동서의 융합과 조화를 중요시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 시대의 건축에는 적색사암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백대리석은 특히 강조할 부분에만 사용되었다.

색돌을 상감하여 장식하는 수법은 아직 많이 발전되지 않았다. 중앙의 높은 돔은 발보스(balbous, 마늘꽃봉오리) 형태로 만들었다.

 

 

 

 

 

 

 

 

 

 

 

 

 

 

 

지하에 안치된 묘.

 

 

대리석 바닥에 안치된 묘.

 

 

 

 

 

 

 

 

 

시칸드라를 떠나 타지마할로.

 

타지마할 도착.

 

 

타지마할에서는 남 녀 따로 들어가는 문이 구분되어 있어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입장한다. 입장료 750루피.

 

 

묽은 사암으로 된, .타지마할 정원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붉은 사암으로 된 아치형 정문을 통과하면 넓은 뜰에 수로가 있는 무굴양식의 정원이 펼쳐진다.
길이가 약 300미터에 이르는 일직선의 수로 중앙에는 연꽃 모양의 수조가 있고,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수로에 비친 타지마할의 모습 또한 환상적이다.

 

타지마할(Tai Mahal)

델리에서 아그라로 옮겨 아그라성 동쪽으로 2km 정도 가다보면 자무나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궁전형식으로 만들어진 묘이다.

이슬람 건축물의 걸작으로 "마할의 왕관"이라는 뜻으로, 무굴제국 황제가 뭄타즈마할을 위하여 세운것이다.

18년동안 걸쳐 재정이 기울일 만큼 막대한 예산으로 건축하였고, 미술품과 공예품을 한군데 모아놓았다.

대문을 들어서면 길중앙에 일직선의 풀이 양옆의 나무를 비추어, 마치 녹색물 같고,

우유 빛깔의 대리석과 돔양식의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며, 돔내부 중앙에는 황제부터의 묘관을 안치하였다.

 

 

사진 찍히기 싫어 늘 외면 했던 손자, 타지마할에 와서야 겨우 모델을 허락해 주려니 어색할 수 밖에 없다. 

 

할미와 손자가 함께한 인도 여행 기념 인증샷.

 

 

인도 아그라에 위치한 이 능은 1643년 샤 자한 황제가 그의 아내 뭄타즈 마할을 위해 만든 것이다.

타지마할은 유네스코 세계 유적지로 지정되어 있으며

인도의 페르시안 건축 양식과 이슬람 건축 양식을 혼합한  무굴 시대 건축 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햇빛을 받아 상아색으로 모습을 바꾼 타지마할은 하루에 몇 번 그 색깔을 달리한다고 한다.

 

타지마할(Taj Mahal)   1983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지정.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 인도 아그라(Agra)의 남쪽, 야무나(Jamuna) 강가에 자리잡은 궁전 형식의 묘지로 
무굴 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Shah Jahan, 재위 1592~1666)이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추모하여 만든 것이다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22년 동안이나 그 무덤을 지었다는 한 남자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 깃들었기 때문일까?
인도 이슬람 예술의 걸작 타지마할은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순백의 대리석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빛깔을 달리하며 보는 사람의 넋을 빼놓고,
웅장한 건물은 중압감은 커녕 오히려 공중에 떠있는 듯 신비롭고,
건물과 입구의 수로 및 정원의 완벽한 좌우대칭은 균형미와 정갈함을 느끼게 한다.

 
무굴 제국은 물론 이탈리아, 이란,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의 건축가와 전문기술자들이 불려오고,
기능공 2만 명이 동원되어 22년간 대공사를 한 결과물이다.
최고급 대리석과 붉은 사암은 인도 현지에서 조달되었지만, 궁전 내외부를 장식한 보석과 준보석들은 터키, 티베트, 미얀마,

이집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수입되어 국가 재정에 영향을 줄 정도(국가 예산의 5분의 1)의 거액이 투입 되었다.

 

 

왕의 사랑과 쏟은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찬란한 무덤’이라 불리는 타지마할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사랑의 금자탑이라 부르기에 손색 없는 모습이다

 

수면에 반영되는 타지마할.

 

네 기둥 중 두 기둥은 요즘 수리중.

 

첫 번째 부인도 아닌 뭄타즈 마할로 알려진 왕비 아르주망 바누 베굼은 얼마나 사랑을 받았기에 이토록 아름다운 무덤까지 받았을까?

뭄타즈 마할(1593.4.27 ~ 1631.6.17)은 무굴제국의 타지마할의 주인공으로 무굴제국 5대 황제 샤 자한의 부인이다.
14세에 결혼하여 19년 동안 14명의 자녀를 두었고 6대 황제 아우랑제브는 그의 셋째 아들이다.
38세에 전쟁터에서 14번째 아이를 낳다 죽자, 샤 자한은 부인을 위해 세계의 불가사의 중 하나인 타지마할을 만들었다

 

 

 

가로, 세로 57m, 높이 76m로 중앙 돔 직경이 17.7m로 되어 있다
건물을 바라보는 손자는 무슨 생각 중일까?

 

 

내부 출입구.   환상적인 꽃무늬 조각으로 장식된 타지마할.

 

관이 안치된 내부 둘레 울타리까지도 각종 보석으로 치장 하였다.

 

 

건물 내부 1층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왕과 왕비의 관이 있지만 유골이 없는 빈 관이다.
샤자 한과 뭄타즈 마할의 육신은 지하 묘에 안장되어 있다.

 

내부 대리석 벽면.

 

천정.

 

기하학적인 공간인 내부 모습.

 이곳 내부는 바깥 날씨가 영하이든 영상이든 상관없이 항상 영상 22∼24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타지마할 벽과 바닥의 아름다운 문양, 기하학적인 공간들

 

아름다운 대리석 감상 중.

 

 

내부와 외부의 벽면은 보석과 준보석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여기에는 대리석에 무늬를 박아 넣는 피에트라 듀라(Pietra-dura) 모자이크 기법이 활용되었다.

 

네 모퉁이에 배치한 첨탑을 비롯해 좌우가 정확한 대칭을 이룬 건물은 육중한 몸체에도 불구하고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두 기둥은 요즘 수리 중이다.

 

타지마할 궁전 뒤로 흐르는 야무나 강. 위 사진 왼쪽으로 보이는 곳에 아그라(Agra)성 이 있다.

 

샤 자한 왕은 애초 타지마할과 마주보는 야무나 강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자신의 묘를 짓고, 구름다리로 연결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자무나 강 건너편에서 건물의 기단을 조성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공된 후 10년 뒤인 1658년 막내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아그라 요새(Agra Fort)의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 탑에 갇혀 말년을 보냈다.
다행히도 아그라 요새에서는 2km 떨어진 타지마할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1666년 죽은 뒤에는 그토록 사랑하던 부인 옆에 묻혔으니 마냥 불행하기만 한 말년은 아니었던 듯싶다.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신발 위에 덧신을 신거나 양말을 신은 채 다녀야 한다.  

 

 

네 귀퉁이의 높이 40미터의 미나레트는 수직으로 보이나 붕괴가 발생했을 때 건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미세하게 바깥쪽을 향하고 있다.

 

 

타지마할에서 바라본 정문.

 

 

 

 

 

 

 

 

 

 

구경하는 길손에게 같이 찍혀 달라는 여인들이 있어 쾌히 응해 주었더니 기분 좋은 모양이다. 코리안이 반가웠을까?

 

타지마할 서쪽별관은 이슬람교 사원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타지마할 둘러보기 끝.

 

 

타지마할 
무굴 제국의 제5대 황제 샤 자한은 보다 넓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원정길에 올랐다.
샤 자한과 함께 원정길에 오른 사람들 중에는 왕비인 뭄타즈 마할도 있었다.
뭄타즈 마할은 ‘궁정의 선택받은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샤 자한 황제의 아버지이자 선왕인 자한기르가 직접 내려 준 이름이라고 한다.

 

황제들은 전쟁터로 떠나거나 장거리 원정에 오르면서 훗날 왕위를 물려받을 왕자를 데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왕비를 전쟁터까지 데려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샤 자한이 왕비를 전쟁터까지 데려간 것은 뭄타즈 마할이 아내인 동시에 정치적인 조언자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데칸고원 지역에서 샤 자한이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뭄타즈 마할로 알려진 왕비 아르주망 바누 베굼은 근처의 야외 천막에서 14번째 아이를 낳은 뒤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몹시 사랑했던 왕비가 죽자 전쟁터에서 돌아온 샤 자한은 백성들에게 2년 동안 왕비를 추모하는 기간을 갖도록 했다.
죽은 왕비를 그리워하며 슬픔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던 왕은 왕비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묘를 만드는데 몰두하기 시작,
1년에 걸친 고민 끝에 샤 자한은 아그라 성에서 가까운 야무나 강변에 사랑을 상징하는 건축물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시작된 타지마할 건설은 22년이 걸렸고, 마침내 그 어떤 건축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물이 되었다.

 

타지마할 공사에는 22년 동안 매일 2만여 명의 사람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공사가 길어지자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타지간지라는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묘지 하나를 짓는 데 일꾼들이 살 도시가 새롭게 생겨난 셈이다.

 

타지마할 건설에는 이슬람 건축의 대가인 이스탄불 출신의 이스마일 에펜디,
이탈리아의 피에트로 베로네오와 페르시아 출신의 장인들 등 외국의 이름난 건축가와 기술자들이 참여했다.

공사에 참여한 것은 장인과 노동자뿐만이 아니었다.
라자스탄 지역의 마크라나 광산에서 캔 흰 대리석을 운반하기 위하여 1000마리나 되는 코끼리가 동원되었다.
타지마할의 바닥을 다지고 부속 건물을 짓기 위해 파테푸르 시크리에서 가져온 사암과 벽돌은 흰 대리석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또한 샤 자한 황제는 여러 상인들에게 값비싼 보석과 건축에 필요한 각종 재료를 공급하게 하고, 
자이푸르 상인들에게는 다이아몬드를, 바그다드 상인들에게는 홍옥수라는 보석을 가져오게 했다. 
또 아프가니스탄의 청금석, 중국의 수정, 티베트의 터키석, 예멘의 마노, 아라비아의 산호 등
왕비의 묘지를 건설하기 위하여 그때까지 건설된 어떤 건축물에서도 볼 수 없었던 보석과 재료를 사들였다.

 

타지마할은 수많은 장인과 노동자들이 22년간의 공사 끝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환상적인 건축물 태어났다. 
건물 전체가 흰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타지마할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완벽한 대칭을 이룬 건축물 이다.

타지마할은 인공으로 만든 7m 높이의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기단 위에 세워진 건물은 한 면의 길이가 58m 정도이고, 중앙 돔이 세워진 가장 높은 곳의 높이는 65m에 달한다.
그리고 동서남북의 모퉁이에 세워진 미나레트의 높이도 50m나 된다.

중앙 돔을 중심으로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 타지마할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다.
건물을 보다 환상적으로 보여 주기 위하여 바깥쪽으로 조금 휘어지게 건축 했다.

 
당시에는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이렇게 건축했지만 결과적으로 지진이 발생해도 무너지지 않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타지마할을 둘러보면 우아한 꽃과 코란(이슬람교 경전), 독특한 문양의 조각, 반복적인 문양으로 장식된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대리석 위에 새겨진 꽃과 코란, 조각, 문양은 아름다우면서도 하나같이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장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건물 안에는 가지각색의 돌로 아름답게 꾸며진 묘가 있다.
건물이 완성될 당시에는 뭄타즈 마할의 묘만 있었지만 현재는 샤 자한 황제와 뭄타즈 마할이 함께 잠들어 있다.
화려하고 우아한 꽃으로 장식된 관은 모형이고, 실제 시신은 타지마할의 지하에 있다.
황제와 왕비가 잠들어 있는 묘지 주변은 나지막한 칸막이가 둘려 있어 묘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타지마할 동쪽과 서쪽에는 타지마할을 향해 같은 모양의 건축물이 세워져 있다. 동쪽 건물은

나라에 중요한 손님이 방문했을 때 머무는 영빈관으로 사용하였으며, 서쪽 건물은 이슬람교의 예배당인 모스크로 활용했다.
하지만 두 건물을 지은 진짜 목적은 타지마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타지마할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붉은 사암과 대리석으로 지어진 영빈관과 모스크도 매력적인 건축물이다.
두 건물의 정면과 중앙 부분의 대리석에 새겨진 아름다운 꽃과, 벽과 천장을 장식한 조각들은 섬세함과 세련미를 자랑하고 있다.

 

정사각형 모양의 타지마할 정원은 기하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거대한 정사각형 정원은 수로와 길을 따라 크게 넷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공간들은 다시 4등분되어 있다.
커다란 정사각형 안에 16개의 정사각형 정원이 자리한 모습 이다,
전체로 보건 작게 쪼개 보건 정사각형의 형태를 드러나게 만든 것은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기하학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

 

타지마할에 들어가려면 2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 한다. 먼저 동쪽, 서쪽, 남쪽의 출입문을 통과한 뒤
안쪽의 커다란 문을 통과해야 정원에 이르게 된다. 안쪽에 위치한 출입문은

타지마할 동쪽과 서쪽에 세워진 영빈관, 모스크와 비슷한 건축물이다.  영빈관과 모스크는 건물 위쪽이 돔 모양이지만,
이 출입문은 인도의 이슬람 건축에서만 볼 수 있는 차토리(돔 모양의 작은 탑)로 장식되어 있다.
차토리는 산스크리트어로 우산을 의미하는데 모양은 둥근 원에 가깝고 크기는 돔보다 작다.

 

타지마할 건설에 열정을 쏟아 부었던 샤 자한 황제는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듯 신하들에게 자상하게 대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말년에는 신하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막내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아그라 성에 갇혀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낙으로 살았다. 샤 자한 황제가 죽자 아우랑제브 왕은

아버지의 시신을 타지마할 지하 묘소에 안장했고, 황제는 왕비와 함께 타지마할에 잠들게 되었다.
타지마할이 처음 완성되었을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호화로운 자태 였었다.
그러나 그 화려함 때문에 끊임없이 약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타지마할에 장식된 값비싼 보석들은 도굴꾼과 침략자들에 의하여 사라졌다. 제국주의에 의해 훼손된 타지마할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나라로 영국을 들 수 있다.


인도를 식민지로 만든 영국은 거대한 돔을 장식하고 있던 황금을 모두 떼어내고 그 자리를 구리로 덮었으며,

은으로 된 출입문을 녹여 가져가고 대신 청동 문을 달았다. .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타지마할은 옛 모습을 되찾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보석이 영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의 박물관과 개인 저택, 문화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

 

자동차들이 내뿜는 엄청난 매연과  공장에서 뿜어내는 공해와 이산화탄소는 타지마할의 숨통을 조이며 위기가 오고 있다.

자한기르 궁과 카슈마할 궁, 샤 자한이 감금되었던 무삼만 부르지, 나기나 모스크와 모티 모스크 등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섬세한 조각과 아름다운 정원을 갖추고 있는 멋진 건축물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