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사촌 여동생

opal* 2021. 5. 29. 18:32

지난 가을(2020.11) 적령기 맞은 큰아들 결혼식 후 6개월 만에 차남 결혼 시키는 사촌 여동생. 

 

노인층부터 시작한 백신 접종은 그아래 74세~60대가 맞는 시기, 

요즘도 결혼식장 하객은 100명 미만, 99명까지 이용 가능 하다.

예식을 거행하는 룸에선 10명이 앉는 테이블엔 4명씩 앉으니 양가 가족이 차지하고,

많은 하객들은 다른 장소에서 칸막이가 있는 한 테이블에 6명 씩 앉아 식사 할 수 있었다.

 

 

 

6개월 전이나 지금(2021.5.29)이나 다른이들은 코로나로 결혼식을 연기하기도 하는데   

장남 결혼식 올렸던 같은 장소(N Hotel) 이용해 오늘 또 차남 혼인을 치뤘으니 마음 편안 하리라.

어려서부터 사랑받고 자란 오늘의 시어머니 인생 그대로 모든 일이 매듭없이 풀려가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다.

사람은 태어날 때 모든이들에게 축복 받으며 태어나야 한다는 걸 그녀에게도 느끼며 살아왔다.  

 

장남이신 아버지 5남매 중 고모님은 셋째로 한 분, 숙부님들이 세 분이시다.

그 중 둘째 숙부님댁엔 해방후 그해 11월에 태어난 첫 아들이 첫돐도 되기 전

마마(돌림병, 天然痘천연두)를 앓다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 후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자 둘째 숙모님은 시모(할머니)의 동의를 얻어  

여러 남매를 둔 나의 모친인 큰동서에게 삼 받아 낳기를 원했다. 

 

삼을 받는다 함은 

아기를 점지하는 일(잉태)과 출산 및 육아(양육)를 관장하는 신(神)인 ‘삼신(三神) 할미’께

"아기를 점지(잉태)해 주십사" 하며 비는 것인데

'아이를 출산한 자리에서 산모의 피묻은 서답을 차고,

산모의 첫 미역국을 산모보다 먼저 먹는' 의식을 행하는 일이다.

 

삼신 할미를 숭배함은 그 시대까진 우리 고유의 신앙이었고,

해산방 머리 맡에 짚을 깔고, 상 앞쪽에 밥, 뒷쪽에 미역국과 물을 차리고

아기가 아무 탈 없이 자라도록 입을 복, 먹을 복, 무병장수 등을

축원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경우엔 행위가 조금 달랐을 뿐이다. 

그 때는 출산 후 바깥 마당 한쪽에 깨끗한 왕겨를 수북히 쌓으며 태반을 태우곤 했었다. 

 

전쟁을 치룬지 얼마 안된 그 시절의 모친은 감히 시모님(할머니)께 거역 할 수 없는 큰며느리 입장, 

아래 동서의 애 없는 아픔을 이해하는데는 자식 못낳은 친정 올케(내겐 큰 외숙모)가 계셨다.  

 

큰 동서(모친)는 다섯 번째 아이(54년 생)를 낳던 날 두 사람은 의식을 거행 하였다.

아이가 없는 둘째 숙모는 산모인 큰동서 출산 자리(예전엔 집에서 출산)에서

산모의 피묻은 서답(산모용 기저귀)을 차고, 해산 미역국을 산모보다 먼저 먹는 것이다. 

 

삼신할미의 도움인지 필연인지 공교롭게도 바로 아이가 생긴 둘째 숙모는 그 다음해 아들을 출산, 

첫아들 낳은지 10년만의 일이다.

아기를 낳은 둘째 며느리(숙모) 집 출산 도우미를 자처하신 할머니께서는 '귀하게 얻은 손주라

명이 길어야 한다'며 부정을 막기 위해 대문 위에 걸어 놓는 금줄(새끼줄)에는

고추(아들) 대신 숯(딸)과 솔가지를 끼워 마을 사람들에게 딸을 낳은 줄로 알게 했고,    

새로 태어난 애기의 이름도 '개똥'이라 하여 오래도록 불리며 자랐다.  

귀하고 의미있는 이름이라 나는 결혼 후에도 '개똥'으로 정감있게 불러 주곤 했었다. 

 

아들 낳은 후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둘째 숙모는, 아래로 남매를 더 낳은 큰동서(모친)에게 또 부탁.

 

어린 나이에 장남에게 시집 와 온갖 고생을 하며 많은 가솔(家率, 食率식솔)을 거느린  모친은

그당시 40대의 노산인데다 몸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파 원치않던 잉태라 축복은 커녕 막내가 될

아이와 본인도 차라리 죽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아래 동서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그리하여 둘째 숙모는 이번에는 딸을 낳았으니 그 딸이 오늘 결혼식장의 시어머니 이다.

 

  큰집인 우리는 칠남매와 할머니 막내 숙부 내외 등 일꾼들까지 한 때는 14식구가

바글거리며 사는 대가족인데 비해 둘째 숙부님 댁은 남매 뿐이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했다.

어렵게 딸까지 얻은 둘째 숙모님은 그 후 아이가 또 생기기를 원했으나 여전히 잉태가 되지 않았다.

큰 동서는 이미 단산을 했기에 이번에는 아랫동서인 첫아들을 낳은 셋째 숙모에게 부탁을 했다.

 

그동안 시대는 달라졌다. 시어머니였던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져 삼 받아 태어나는 아이는 좋지만

터를 내준 아이에게는 좋지 않다는 설이 있어 20대 중반 젊은 셋째 숙모는 거절을 했다.

그 이후 둘째 숙모는 더이상 아이가 잉태되지 않았고, 

부탁 들어주지 않은 아랫동서인 셋째 숙모를 예뻐 할 리가 없다.

마을 맨 아랫쪽에 사는 셋재 숙모님은 마을 한가운데 사는 둘째 숙모님댁 마당을 거쳐야

맨 꼭대기 사는 큰댁엘 다닐 수 있는데 둘째 숙모님 눈치에 한동안 맘대로 드나들질 못했다. 

그래서 둘째 숙모님은 결국 남매 뿐이고, 셋째 숙모님은 아들들을 더 낳아 네 형제를 두셨다.

 

우리집 막내에게 터를 얻어 잉태된 둘째 숙모님의 딸이 오늘 작은 아들 결혼시키는 시어머니 이다.  

 

태어날 때 차라리 죽기를 바랬던 큰집의 막내 딸은 후일 모친의 한 풀어드린다며 극진히 모셨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마지막 생을 도맡아 보살피며 주위에서 감명 받을 정도로 효도를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삼신 할미' 라는 단어 조차 모른다.

50년대까지의 농업사회에서 60년대 산업사회로 변하며 핵가족이 늘어나고, 

출산도 병원에서 쉽게 하고, 지금은 출산을 안하거나 비혼족도 늘어나는 시대가 되었지만,

 농사 지을 노동력이 필요했던 대가족 시대엔 자손 번성이 가장 큰 축복이었다.

 

오늘 결혼하는 주인공 대신 윗 대인 사촌 동생들 誕生秘話(Behind story)가 생각나 끄적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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