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성탄절을...”
년 말이 가까워 오면 거의 누구나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말이나 글로 주고받게 되는 구절이다.
그 즐거움이란 어떤 것 일까? 이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생긴 모습과 생각이 다 다르듯
느끼는 즐거움 또한 다 다르리라.
나 나름대로의 내게 맞는 그 즐거움을 이번 성탄절에 찾아 나섰다.
12월 25일 새벽. 새벽엔 어둡기가 마찬가지지만 전국적으로 흐리겠다는 일기예보 대로
날씨는 흐렸고 영하의 기온이라 춥다.
06:50. 첫 비행기로 출발. 인터넷으로 한 자리만, 같은 날로 왕복 예약을 했다.
예전 같으면 생각조차 못 할 일이건만 세월이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있구나.
비행기 안은 빈 좌석 없이 꽉 찼다.
비행기 아래엔 솜사탕 모양의 시커먼 먹구름이 잔뜩 깔린 채 한참을 날다보니 수평선으로 부터
창문까지 찬란한 햇빛이 전해진다. 일출을 맞이하러 동해안에 갔어도 이보다 더 먼저는 못 보겠지?
작은 창을 통해서 보지만 밖의 세상이 넓으니 그 또한 장관이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던 때처럼 설레임이 인다.
한 시간 후 제주 도착하니 검은 먹구름으로 인해 금방 눈이라도 올 것 같다. 제주공항에서
성판악까지 운행하는 Bus 배차시간이 한 시간 간격이란 말을 듣고 장거리 운행하는 줄의 택시를 탔다.
"성판악으로 가 주세요"했더니 올 땐 손님이 없으니 왕복요금을 내란다.
오전 9가 지나면 입산을 제한시킨다는 말을 들은지라 서둘러 가야하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요금내고 성판악 도착하니 여러 대의 관광 Bus에서 내린 사람들로 북적댄다.
육지 산행 때 본 나무들과는 완전히 다른 수피의 교목들이 나목으로 서 있다.
낮은 기온에 축축 늘어져 있는 상록수 넓은 이파리 사이로 빨려 들어가듯 발걸음을 재촉하며
여러 사람들 사이에 끼어 오르기 시작한다.
제주에서의 산행은 처음이다. 숨을 헐떡이며 한참을 걷다보니 옷이 금방 젖는다.
까맣고 홈 파인 제주 특유의 현무암(玄武巖)은 살짝 내린 눈으로 그 홈은 다 메꾸어지고 다져져 미끄러우니
힘은 배로 들고 걸음 속도도 느리다. 한 참 씩 가다 보면 길옆 나무에 매달린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진달래 대피소까지 12시 안에 도착해야 정상에 오를수 있습니다.’
초행길이니 진달래 대피소가 어디인지, 거리는 표시되어 있지만 얼마나 가파른지?
고도를 높이며 올라 갈수록 길옆의 나무들은 종류가 달라지는데 산죽나무가 살랑거리며 반긴다.
녹색잎이 싱싱한 키 큰 삼나무들은 사열하듯 서있고 잎이 하나도 없는 이름모를 가지들은 서로 뒤엉켜 정글 같다.
고도가 높은 산에서 날아다니는 까마귀 한 마리가 까악깍 인사하는걸 보면 어느 정도 올라선 모양이다.
나뭇가지에 피어있는 설화가 보이기 시작하니 입에선 감탄사가 시작되고, 혼자 다녀도 도무지 심심할 겨를이 없다.
가끔씩 볼 수 있는 이정표에 표시된 현 위치를 보니 대피소가 가까워 오는 모양이다.
해발 1400m라고 표시된 돌을 본 후 조금은 안심이 되어 가방을 내려 간단한 간식과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출발.
오를수록 나무들도 활엽에서 상록으로 바뀌고, 바람이 더 거세어 나무도 키가 작다.
설화의 모양도 더 굵고 짙어지니 사람들의 환호성이 이어진다.
드디어 진달래 대피소. 아직 12시 전이다. 휴~ 이곳에선 바람이 막혀 잔잔하다.
갖가지 나무들의 모양을 그대로 닮은 새 하얀 상고대와, 파란 하늘과, 발아래의 구름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백록담이 나를 부르기라도 하는지? 힘은 드는데 오를 수록 신기하고 재미나서 오래 쉴 수 가 없다.
1700m면 설악산 대청봉 높이, 주변엔 나무가 없어 뒤돌아보면 시야가 탁 트인다.
솜사탕 모양의 시커먼 먹구름은 산 아래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데 산꼭대기 날씨는 청명하고 상큼하다.
오를 수록 경사는 더 가파라지고 아름다운 비경을 보느라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쉬지 않고 올라 그런지 생각보다 빠른 세 시간 반만에 정상 도착.
뺨에 와닿는 바람은 날아 갈 듯 세차고 차갑지만 이미 올라와 있는 사람들은 쉽게 하산할 눈치가 아니다.
많은 함성 속에 나도 함께 파묻혀 와~ 감탄 또 감탄 !
이 나이에, 이렇게 늦게라도 산행을 시작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희열과 자신감으로 잔뜩 부풀어 있는데 관리소 직원의 방송멘트가 들린다.
“오늘 오신 여러분, 여러분은 복이 참 많으신 분들 이십니다.
어제 까지만 해도 안개가 잔뜩 끼어 백록담을 볼 수 가 없었습니다.“
올라오는 사람들과 내려가는 사람들, 기념사진 찍기위해 정상 기둥 앞에서 순서 기다리는 사람들,
일행을 찾는 사람들, 바람 불고 추운 곳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는데, 또 방송을 한다.
“원래는 정상에서 밥을 못 먹게 하는데 올라오신 분들이 식사를 하시니 얼른 드시고
오후 1시반 까지는 모두 하산을 하셔야 합니다.“
바람이 덜 닿는 바위 아래 남들 옆에 앉아 갖고 온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고 기념 사진 찍고 나니 오후 1시.
마음은 아직도 어린애 마냥 붕붕 떠 있는데 내려가는 길은 또 얼마나 되는 건지...
올라왔던 길을 뒤로 하고 관음사 쪽으로 방향을 잡아 아이젠을 착용.
내려오며 보니 같은 산이라도 그늘이라 그런가 적설량이 더 많고 경사도 급하다.
눈 속에 얼음이 있어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양지바른 곳에선 눈 녹은 곳도 있고,
아이젠을 신었다 벗었다 반복. 이쪽엔 상록수가 많아 설경도 다르다.
안개까지 낀, 나무들이 빽빽한 오솔길 숲 속은 마치 동화 나라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오를 땐 숨이 차고 속도가 달라 남들과 얘기하기 힘들지만 하산 땐 처음 보는 사람과 얘기하며 내려오니
덜 지루하다. 혼자 일 땐 혼자라서 좋고, 옆에 누구라도 있으면 있어서 좋은게 산행이다.
눈 쌓인 산의 절경과 헤어지기 아쉬워 가끔씩 뒤돌아보며 관음사 입구 까지 내려오니 오후 4시.
총 산행시간이 7시간 걸렸다. 옆에서 누군가가 그래도 빠른 편이라 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몰라 아예 마지막 비행기를 예약 했는데
일찍 하산 하는 바람에 시간을 바꿔 집에도 일찍 도착 할 수 있었다.
인생은 60부터 라고 했던가? 산행 경력도 없는 사람이 인생 60 되어 한라산 첫 등반을 했다.
생애 처음으로, 혼자서!!! 서울에서 하루에 다녀 왔으니 그야말로 아주아주 즐거운 성탄절이 되었다.
2004. 12. 25. 한라산을 하루에 다녀오다.
'섬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의도 산행 세 번 후 다시 찾은 실미도. (0) | 2005.05.26 |
---|---|
강화도 고려산 번개산행. (진달래 축제) (0) | 2005.04.23 |
사량도 섬 산행. (0) | 2005.03.08 |
蛇梁島 지리망산 산행기. (0) | 2005.03.08 |
한라산 정상에서. (0) | 2004.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