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지방에 많은 양의 소나기가 내린다는 예보를 듣고 집을 나서니 구름 한 점 없는 中天에 새벽달이 밝다.
푸르스름한 동쪽 하늘을 쳐다보며 해 길이가 짧아진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05:30.출발. 달리는 차 안에서 ‘남쪽(경남 함양)에 비가 많이 온다니 조심산행하라’는 친구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
걱정해주는 맘씨가 고마워‘비가 오던 안 오던 조심 하겠다’고 답해주고 잠을 청해본다.
08:10. 인삼랜드 휴게소 도착하니 날씨는 맑아 아침 햇살에 하얀 구름이 무늬를 만든 창공이 다른 날보다 훨씬 더 높아 뵌다.
09:30. 함양 땅으로 들어서니 잘 익어 나무에 매달린 사과, 밤, 호도.. 각종의 열매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결실의 계절을 알린다.
09:45.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들머리 백운교 앞 도착. 오늘의 산행은 원점 회귀다.
콘크리트 길이 끝나며 이어지는 오솔길 옆으로 소를 이루며 흐르는 계곡물이너무 맑고 깨끗하니 마냥 뛰어들고 싶다.
유속 빠른 계류를 건너기 위해 징검다리 바위를 성큼성큼, 건너야 할 바위 사이가 넓어 스틱을 물 속에 짚고 건너다
바위 틈에 낀 스틱이 안 빠져 놓치고 마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하산 시간이면 그대로 쫓아 들어가 보련만...
회원 몇 분이 기사도를 발휘하여 물 따라 쫓아 내려가 보지만, 바위와 물이 합세하여 꼭꼭 감춰놓고 보여주질 않아
찾는 걸 포기했다. 가볍고 더 좋은 것으로 준비하라는 신의 계시라 생각하니 맘이 가볍고
손에 들었던 짐 하나를 덜어내고 걸으니 조금은 홀가분하다.
10:30. 계곡 옆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산죽 길에 솔솔 불어와 상큼하게 와닿는 바람은 완연한 가을인데 쏟아지는 땀은 여전하다.
11:00. 한 시간 이상을 들으니 소음으로 까지 들리는 계곡물 소리와 헤어져 힘든 바윗길을 오른다.
어딘가 폭포가 있다 했는데 못보고 지나친다. 지난주 까지도 우렁차게 들리던 매미소리가 속도도 느리고 힘없이 들린다.
11:30. 너덜지대 같은 바위들은 이끼가 끼어 미끄럽고, 원시림처럼 나무들이 얽히고 설켜 등산로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되는 길도 지나 급경사 오르막을 치고 오르다 잠시 쉬며 과일과 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오른다.
12:00. 능선에 다다르니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빠끔히 보이는데 마음이 설레도록 파랗다. 날씨는 왜 이리 좋아
사람 맘을 변화시키는지. 능선에 올라서니 황홀감에 아연실색. 앞에 가던 사람들이 왜 소리를 질러 댔는지를
나도 그대로 느끼며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한동안을 꼼짝 못한다. 어느 문인은 쥐어짜면 파란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했지만,
내 보기엔 푸르고 파란 종류의 물감을 모조리 칠 해 논 것 같다. 눈물이 나도록 눈이 부시며 시리다.
제암산의 철쭉꽃 속에선 꽃과 함께 동화되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더니...
자연의 오묘함에 다시 한 번 빠져든다.
나흘 뒤에 올라서서 걸어갈 지리산 능선이 하늘 위에 떠있다. 하늘보다도 더파란색으로...
바로 앞 봉우리에 올라서면 손에 닿을 거리에서... 하반신은 구름 속에 감추고 윗부분만 보여주며 빨리 오라 유혹하며 손짓한다.
지금의 내 모습은 마치 집에 앉아 지리산의 고도표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걸었던 천왕봉, 제석봉, 장터목, 촛대봉, 세석, 그리고 내가 가야할 곳을 모두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사방 팔방을 둘러보니 맑고 푸른 ‘淸明’ 그 자체이다.우주 공간이 온통 파랗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도록 질리도록 파랗다.
12:15. 백운산(1278.6m) 정상에서 겹겹의 산들을 빙빙 돌며 바라본다.
북쪽엔 덕유산, 서쪽 바로 옆엔 장안산이 있다고 들었지만 나로썬 구별을 못한다. 모두들 떠나고 혼자 서있어
기념사진 한 장 찍어 달랠 사람도 없다.백두대간 길에 있는 산이니 그때 다시 와도 이런 모습일까?
오늘 같은 감흥이 또 일어날까? 지리산 조망 안내판을 보며 대조 해 본다.
중봉, 끝봉을 내려설수록 점점 구름에 가려지며 높아지는 지리산의 모습을 담고 또 담으며
걱정해주던 친구에게 전화하여 오늘의 모습을 얘기해주었다.
다음부터는 일기예보 듣지 말고 나서라고... 예보로는 내일과 모레도 비가 온다고 했으니
지리산에 가는 토요일도 오늘같이 깨끗한 날씨였음 좋겠다. 가시거리가 끝없이보이도록...
도대체 오늘 어느 산엘 온 건지 자신도 구별이안가는 모양이다.
숲속에서 나와 정상부터 계속 지리산 방향으로 걸으니 지리산 타령만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13:00. 긴급구조 함양군 7-1(1230고지). 앞서가던 몇 분이 식사를 하는데 밥 생각이 없어 그냥 내려선다.
너무 좋아 그런가? 아님 꼴지를 면하려고? 다른 날 보다 시장기를 덜 느낀다.
다른 날보다 반쯤 준비한 얼음물도 두 병이 손도 안댄 채 남아 있다.
13:30. 숲 속 가파른 내리막을 한동안 내려선 후 빨간 물봉선, 노란 달맞이 등 야생화로 둘러쌓인 상연대를 거치고,
콘크리트길로 한동안 뙤약볕을 쬐며 내려선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길가의 칡꽃과 밤 열매가 탐스럽다.
14:15. 산행 시작점인 매표소 앞 도착.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4시간 30분.
다른 분들 하산 주 시간에 따뜻한 미역국에 밥 한술 먹고 ,파란 하늘이 비쳐 물이 파래보이는 냇물로 들어가니 어느새 춥다.
식사 메뉴도 시원한 냉국에서 따뜻한 미역국으로 바뀐 오늘이 ‘모기입도 삐둘어진다’는 처서.
일주일전과 어쩜 이리도 현저하게 차이가날까?
15:20. 귀가 행 bus출발.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남은 오후햇살에 두고 가는 파란 하늘이 아쉬워
차창을 통해 셔터를 눌러대도 그런대로 예쁜 모습이 나온다.
2005. 8. 23.(火) 경남 함양에 있는 백운산을 오르다. 비는커녕 아주 맑은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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