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강수 확율 80%라는 예보에, ‘안전을 위해 한번쯤 잘 생각해 보라’는 친구의 권유를 무척 고맙게 여기며...
새벽에 일어나니 비는 소강상태. 산에서의 기후는 언제나 변화무쌍한 것,
요즘의 비는 장마 때와 달라 국지성 호우라서 계속 내리지는 않겠지... 다만 계곡산행이라 물이 불어날까 걱정도 되지만
여러 사람의 중지를 모으면 나름 대로 대처 방법이 있겠지. 아님 백두대간 길에 있는 산이니
그 길을 계속 쫓다보면 물을 안 만날 수도 있을 테니까... 혼자 이 생각 저 생각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며 집을 나선다.
05:30. 차에 오르니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예보로 빈자리가 제법 많다.
08:05. 박달령 휴게소. 이곳도 날씨만 흐렸을 뿐 비는 아직 내리지 않는다.
09:00. 단양 땅에 들어서니 햇살이 눈부시다. 자외선 차단제를 바를까 말까?
09:15. 한적한 지방도로를 달리는 차 앞 유리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엔 구름이 잔뜩 머물러 있다.
09:40. 산행 들머리 안생달 마을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비가 제법 쏟아진다.
낙엽송 빽빽한 어두운 수림 속에 우산을 들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우산을 받쳐 들고 산행하기는 처음.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지고 번개와 천둥소리, 우산 위로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 소리로 온 산이 어수선하고 시끄럽다.
10:10. 송전탑이 있는 능선 길에 도착. 몇 발작 더 가니 대간길 임을 알려주는 표지석과 장승이 서 있다.
10분쯤 더 치고 올라섰다 다시 내리막. 비가 오면 비 맞고 눈이 오면 눈 맞고,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다 그 나름대로 모두 즐 겁다 하니 산이 자꾸 부른다.
10:30. 작은 차갓재. 5분쯤 걸으니 헬기장. 힘든 오르막을 다시 한 번 치고 오르니 천둥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멀리 도망치듯 구름과 함께 사라진다.
10:40. 사방이 나무로 꽉 들어찬 어둠속에서 빗소리만 듣고 올랐는데 하늘이 보이는 바위에 올라서니 모두들 탄성,
조금 전에 지나온 마을은 발아래 펼쳐지고,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열리며 멀리 보이는 시퍼렇고 푸른 봉우리 사이마다
채워졌던 흰 구름이 봉우리 중간에 걸쳐지며 비경을 이루니 아무 때나 볼 수 없는 모습이요, 언제 비가 왔더냐? 다.
비오는 날 아니면 볼 수 없는 이 깨끗한 모습들. '오길 잘 했구나. 집에 있으면 이런 모습은 평생 못 볼 모습인데...'
전망 좋은 곳에 올랐을 때 때맞춰 구름을 벗겨주신 조물주께 감사드린다.
비경 담느라 시간 지체되니 후미 팀 만나 달콤한 초콜렛과 따뜻하고 향 좋은 Coffee.
아래 마을과 건너편 산엔 햇살이 잠시 비추이고 바람이 시원하니 정상 기분을 여기서 다 만끽한다.
11:00. 잠시 함성이 들린다.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데 선두는 벌써 정상에 올라섰나? 이제부터는
암릉 바윗길이 계속되는데 나온 곳은 나온 대로 패인 곳은 패인 대로 밟으며 올라 선다.
다시 숲 속으로 들어서니 검은 구름이 또 몰려온다. 비탈진 젖은 바위에서 발 하나가 미끄러져 정신을 바짝 차린다.
11:10. 큰 줄기의 높은 능선에 올라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니 바람이 엄청세다. 올라오던 오른쪽은
구름이 벗겨지는데 왼쪽 계곡은 구름바다가 되어 아래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먹구름 아래엔 비가 내리는가 보다.
조금 있으면 금방 춥단 소리 나오겠다. 겨울에 이 대간 길을 걷게 된다면 엄청 춥겠다.
능선이 칼날같이 날카롭다.
11:20. 굵은 밧줄 세 개가 나란히 매달려있는 묏등바위. 한사람씩 오르느라 시간이 지체된다.
10여 m가 넘는 높이를 밧줄을 바꿔 잡으며 낑낑거리고 올라서니 또 다른 비경이 펼쳐진다.
다시 밧줄을 잡고 조심 조심 바위에서 바위로 옮겨 간다. 바람에 구름이 쫓겨 달아나고 있다. 시원하다 못해 춥다.
11:45. 황장산 정상(1077.3m) 도착. 헬기장 같은 곳에 작은 표지석이 있고 나무들로 둘러 쌓여 조망은 없고
야생화 몇 포기가 빗물에 젖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표지석 옆면엔 鵲城山이라 쓰여 있다.
'작성산'이란 산 이름에 산행일기를 처음 썼던 날이 생각 난다. 그 때는 제천에 있는 작성산 이었다.
12:00. 이런 곳도 길일까 싶게 입석 바위들의 연속인 암릉을 밟고 지나간다.
이 대간길 바위에 겨울눈이라도 내릴 때 지나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감투봉. 아래 우회도로로 갈까하다 바위에 올라보니 구름에 가려 아무 것도 안 보이던 곳이 불과 몇 초 사이로 모습이 바뀐다.
골짜기 잔뜩 채워졌던 구름이 날아가며 거짓말 같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뀌는 멋진 조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몇 발자국만 먼저 왔어도 못 보는 비경을 조물주는 잠시 보여주시더니 이내 또 다시 감추신다.
변화무쌍한 구름바다의 연출,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못 보고 하산 했더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12:30. 해발 985m의 황장재 도착. 그대로 직진하면 벌재가 되는 대간길은 여기서 작별하고 좌측의 문안골로 내려서는데
무성한 잡목들의 나뭇잎은 비를 맞아 그런지 5월의 신록처럼 맑고 산뜻하다. 너덜지대를 닮은 하산 길은 배꼽높이의 산죽 길로
이어지며 금방 계곡을 이루니 제법 서늘하다.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계곡 따라 이리 건넜다 저리 건너기를 수십 번.
내려서며 합수지점을 만나니 훨씬 다른 더운 공기가 느껴진다
.
다른 산악회의 안내표시가 다 내려서도록 돌 위에 한 장 씩 가지런히 잘 놓여 있어 길 찾기가 훨씬 수월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몇 발자국 가다말고 계곡물을 건너기를 반복하며 내려섰으니 비가 많이 내려 물이 많이 불었으면 큰 일 날 뻔 했다.
넓은 계곡물을 만나니 햇살이 뜨겁다. 흐르는 옥수에 몇 사람이 입수하고 몇 사람 담금질을 한다. 내려갈 길은 아직 먼데.
13:45. 작성 성문 도착. 고려시대에 축조했다고 하는데 바위의 이끼로 보아 세월의 흐름을 느끼겠다. 그
옛날에 무슨 기술로 이렇게 큰 바위를 이런 산 속에? 배꼽시계가 배고픔을 알린다. 계곡물도 옆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날씨가 서늘하기도 했지만 제목이 여름산행인데.. 준비한 물이 그대로 있다.
14:10. 후미대장과 셋이서 앞서서 내려오는데 반대쪽에서 제법 넓게 흐르는 싯뻘건 황토 흙물을 만난다.
어디서 공사를 하나? 아님 비가 많이 내려 그럴까? 물살이 세고 깊이를 몰라 선뜻 나서지지 않아 먼저 건너는 사람만 쳐다본다.
바닥은 안보이고 허벅지까지 차는 깊은 물살에 휘청거리며 걷는걸 보니 만만치가 않다.
두 사람이 업혀 건너는 신세를 졌으니 고맙기 그지없다.
물을 건너 방골 매표소까지 500m 정도 걷는 아스팔트길은 한 낮의 햇살이 너무 뜨겁다.
회원들을 위한 몸보신용으로 특별히 끓여준 ‘한방 야채 닭죽’. 더운 여름에 이열치열로 땀을 뻘뻘 흘리며 먹은 후
계곡물에 들어가 온 몸의 땀을 씻고 뽀송뽀송하게 갈아입으니 한결 상쾌하다.
오늘의 산행시간 4시간 40분
2005. 8. 9.(火). 경북 문경. 월악산 국립공원 내에 있는 황장산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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