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46회(44구간.미시령~화암재~신선봉~대간령~병풍바위~마산~진부령)

opal* 2006. 9. 5. 17:46

 

영동지역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를 듣고 집을 나서는데 하늘엔 별이 반짝인다

. 05:30. 한강을 따라 동쪽을 향해 달리니 높은 하늘에 구름이 붉다. 해의 길이가 짧아져 일출시간이 늦다.


07:35. 양평 다대 휴게소.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차다. 덥다고 외치던 날이 불과 며칠 전인데 어느새 춥다고 떠든다.

오랜만에 고속도로가 아닌 지방도로를 달려 아침식사를 마친다. 쾌청한 날씨의 아침 햇살을 맞는 몸과 다르게

마음엔 어제 병원에 입원하신 모친 생각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09:05. 산 아래로 길게 이어진 소양호의 물줄기를 바라보며 38선 휴게소를 지난다.

시원하게 확장된 도로를 달리니 길가의 만생종 코스모스가 바람에 몸을 맡기며 살랑댄다.


내설악 휴게소에 도착하니 한계령 방향의 통제된 표시는 그대로 있고 미시령 방향도 아직 공사 중이다.

여름철 물난리의 후유증이 길다.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오르다 다른 차들은 모두 올 6월에 개통된 미시령 터널로 가고

우리 차만 전에 다니던  56번 도로로 오른다. 이젠 구 도로로 불려지게 되었다. 


09:45. 미시령(彌矢嶺 820m) 휴게소 도착.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세차다. 겨울이면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고갯마루 휴게소.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던 곳이  터널이 생기는 바람에 썰렁한 분위기다.


남한에서 오를 수 있는 마지막 구간인지라 단체로 기념을 남긴다. 마음 같아서는 백두대간 종주 마지막 날에 걷고 싶었지만

積雪期에는 통제되는 등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이 구간을 먼저 걷는다. 종주를 마치는 날은 아니지만, 아득히 먼

지리산에서 시작되어 도상거리만  670km라는 기나긴 백두대간 장정의 마지막 구간인지라 다른 날과 다른 감회가 따른다.


한산해진 휴게소 뒤편으로 가파르고 어두운 숲 속을 한동안 치고 오른다.

능선에 오르니 구불대며 위험을 주던 미시령 고갯길도 옛길로 변하여 한적하게 보인다.


10:30.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어두운 숲 속 길을 오른다. 물이 졸졸 흐르는 샘터를 지나 오르막에 힘이 드니

돌을 밟는 소리가 둔탁해진다. 무언의 대신으로 의식적으로 심호흡을 하며 맑은 공기를 맘껏 들이 마신다.

몇 가지 종류의 가을꽃이 있으나 어두워 그냥 지나친다.

전망 좋은 바위에 올라 안개에 가려진 미시령 길을 내려다본다. 스틱을 접어 가방에 넣고 모가 난 커다란 바위 너덜지대

오르막을  한발 한발 조심조심 오른다. 안개 속의 능선에서 흰색과 분홍색의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피어 발목을 잡는다.


11:05. 상봉(1239m). 종 모양의 둥근 돌탑이 있다. 속초시와 동해바다가 시원스레 조망된다. 굵은 밧줄을 잡고

예닐곱 번의 절벽 같은 젖은 바위를 내려딛는 동안 빗방울이 떨어지다 말다 한다. 눈과 얼음이 있는 겨울철엔

다니기가 무척 위험 하겠다. 이래서 입산을 금지 시키나 보다.


11:55. 화암재. 서서 물 한 모금과 떡 간식. 

<‘미시령의 금강산 화암사’(金剛山 禾岩寺), 미시령을 사이에 두고 울산바위 건너편에 수암 이라는 바위가 솟아 있다.

옛글에는 水岩이고 지금은 秀岩이다. 울산바위 만큼 웅장하진 않지만 금강산 화암사는 그 수암 아래에 터를 잡은 지

천 년이 넘는 신라 혜공왕 5년 율사 진표가 창건한 옛 절이다.

화암사가 그 母山을 설악산에 두지 않고 금강산을 따르는 까닭은 '미시령 북쪽은 금강'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영주의 부석사가 비록 소백산에 있으나 '고치령 동쪽은 태백'이라 하여 '태백산 부석사'로 쓰는 것과 같다.

미시령 길에서 5리 남짓한 화암사는 그러나 거의 옛 모습을 잃었다. 일주문에서부터 법당과 요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새 건물 아닌 것이 없고 다만 골물 위에 놓인 돌다리와 법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에 더러 희미한 옛 빛이 남았을 뿐이다.>

 

숨 몇 번 내 쉬는 정도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어두운 숲 속을 가파르게 오른다.

전망 좋은 바위에서 조망 감상 후 키 낮은 나무 아래로 기어가고 덩굴을 헤치며 지나간다.


12:15. 신선봉 갈림길. 신선봉은 대간 길에서 약간 비켜 있어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가야 올라설 수 있다.

어떤 이는 힘들다며 오르기를 거부하고 그대로 지나친다.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아쉬워 하지 않을까?


12:30. 커다란 바위 너덜로 이루어진 神仙峰(1204m)에 오르니 푸른 동해의 펼쳐진 모습과 호수를 간직한 속초시가지,

울산바위를 비롯한 설악의 웅장함을 볼 수 있는 조망이 백미이다. 낮은 먹구름과 안개가 자꾸 날아와 훼방 놓으며

수시로 보여주다 말다 한다. 모두들 기념 남기느라 바쁘다. 오르지 않고 그냥 지나친 일행은 손해본 느낌이다.

돌만 밟으며 오르내려야 하므로 헷갈리기 쉬운 곳. 방향을 잘 보고 내려서야 숲 속의 길을 만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올라갈 때 표시를 해두면 내려딛기에 편하다. 


급경사의 내리막은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우거진 숲과 너덜지대의 날카로운 바위로 되어있어 

젖은 낙엽이라 한 발자국도 방심 할 수가 없다. 너덜지대가 끝나고 돌길 내리막을 지나니 마산봉이 보인다.

완만한 능선을 내려와 점심을 먹는데 땀에 젖은 옷이 춥다. 이젠 얼음물울 준비하지 않아도 되겠다. 춥고 떨려 먹자마자 

일어서서 움직인다. 헬기장까지 한 걸음에 내달리니 남쪽으로 용대리 마을이 보이며 그곳은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다시 키 작은 나무 숲 사이로 내려서니 건너편에 마산이 보이고 내리막은 마사토로 미끄럽다.


14:05. 대간령(일명 새이령, 샛령). 서쪽의 소간령을 지나 인제군 용대리와 동쪽의 고성군 토성면을 이어주던 이 고개는

예전엔 주막이 있었다는데 작고 허술한 표지목과 이끼 낀 돌들만 조금 남아있다. 잡목과 풀이 무성해 산 속의 일부로만

보일 뿐이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이제야 오늘 구간의 반 정도 왔다. 마지막 구간이란 아쉬움 때문일까?

누군가가 두껍고 노란 종이를 달아놓았기에 ‘나도 지나간다’고 한 마디 적었다.


한동안 된 비알을 낑낑대며 암봉에 올라서니 멋진 바위들과 동해바다의 조망이 일품이다. 지나온 신선봉이 구름 속을

드나들며 비경을 연출한다. 커다랗고 날카로운 돌 틈을 비집고 올라서니 거침없는 망망대해 위로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다시 어두운 숲 속으로 들어서니 멧돼지의 작품인지 숲 속을 밭처럼 일구어 놓았다.


15:05. 다시 힘겨운 숲 속 오르막. 때맞춰 밥을 잘 먹은 생각이 들 정도로 쉬지 않고 줄기차게 오르다 초롱꽃을 담는다.

 이곳은 멧돼지의 흔적이 더 심하다.  바람은 차가워도 몸을 움직이니 얼음물이 여전히 좋다. 


15:40. 병풍바위 봉. 서쪽으로 겹겹이 쌓인 산줄기들과 우리가 가야할 북쪽과 동쪽의 바다가 다 보인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므로 좌측의 전망대 바위를 올라서야 보인다. 사방을 둘러 본 후 축축하고 미끄러운

급경사 내리막에 한 분이 엉덩방아를 두 번씩이나 찧는다. 물기를 머금은 진흙과 이끼 낀 돌과 젖은 낙엽이 복병이다.

고목에 파란 이끼와 버섯이 습도를 증명하듯 예쁘게 피어있다.  완만한 능선을 잠시 걷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돌길에 물굽이란 팻말이 있다. 가야 할 곳은 좌측이나 마산이 우측에 있어 정상으로 향한다.


16:10. 마산(1052m)정상. 삼각점이 있고 암봉으로 되어 있다. 바위에 올라, 군부대의 허락을 받아야 갈 수 있는 북쪽 방향

향로봉을 바라보니 그동안 못 느꼈던 감회가 새롭다.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곳을 바라보니 분단의 아픔이 느껴진다.

남들 따라 무작정 걷던 날과 달리 백두산까지 가고픈 마음이 절로 생긴다. 탄피로 종을 만들어 걸어 놓았던 종은 없어지고

커다란 쇠파이프만 쌓여있어 해머를 높이 들어 세 번을 내려친다. 이대로 백두산까지 가고픈 마음을 이 산은 알려나?

지나온 신선봉과 병풍바위 봉을 다시 돌아본 후 너덜의 가파른 내리막과 완만한 길을 내려딛는다. 

싱싱한 산죽사이로 난 길을 지나 낮을 봉을 올라선 후 무성한 신갈 숲 내리막을 내려딛는다.


백두대간이라 쓰여진 간판 앞에서 길은 좌로 휘어지고, 다시 올라 간판 앞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알프스 리조트 건물이 보이면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딛느다. . 절개지 울타리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서서 리프트 아래에서

우측 시계탑 방향으로, 우거진 억새 사이를 지나 우측 낙엽송 길로 들어서서 커다란 닭장 같은 곳 앞으로 내려선다.

알프스 스키장에서 대간 길을 훼손시키며 개발한 관계로 길이 많아 헷갈리는 곳이다.


나무계단을 내려서고, 커다란 숙소건물 뒤쪽 마당(주차장)을 통과하여 자작나무 사이로 올라서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건너

임도를 따라 간다. 앞에 가는 사람들의 반영이 비치는 작은 웅덩이를 돌아 군부대 건물 앞에서 콘크리트길을 따라

좌측으로 향한다. 군부대 문을 나서서 잠시 걷다 다시 우측 철망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숲으로 올라선다.


어두운 송림 사이를 거쳐 전국 피망조합 건물 앞에서 우측, 피망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옆 콘크리트 도로를 계속 걷는다.

앞으로 멀리 올려다 보이는 산줄기 봉우리 꼭대기마다 군 시설물들이 보인다. 우측 끝의 높은 봉우리가 향로봉 같다.


우측에 있는 폐가를 지나 앞에 민가를 보며 우측으로 돌아 삼거리에서 좌측 임도로 들어선다. 갈림길에서 방향이

바로 바뀌므로 주의해야 할 곳이다. 진부령 관광농원이라 써 있는 붉은 건물 옆을 지나 콘크리트길로 내려가다 좌측

임도로 들어선다. 갈림길에서 좌측 낙엽송과 앞이 안 보이는 덩굴을 빠져 나와 다시 낙엽송 오솔길. 해가 앞산에 걸려

갈 길을 재촉한다. 산 위에서 내려다 볼 땐 금방 도착할 것 같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 지루하다.


17:55. 발 아래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먼저 도착한 짝꿍과 몇 분이 길 건너에서 박수를 치며

조심조심 내려오라며 환영해 준다. 평소와 다른 감회가 있어 더 뜻이 있는 날. 앞에 보이는 향로봉을 지나 백두산까지

계속 걷고 싶은 충동이 인다. 먼저 달려온 선답자들의 갖가지 기념비가 세워진 진부령에서의 기념 촬영과

축배의 잔을 들며 하루를 마감한다. 미시령에서 진부령까지의 도상거리 14.25km,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8시간.

 

 2006. 9.5(火). 백두대간 마지막 구간인 44구간을 종주하다.

(미시령~상봉~화암재~신선봉~대간령~병풍바위~마산~진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