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줄기인 이 구간은 길이도 길고 너덜지대가 많아 시간이 많이 소요되므로, 42구간(한계령~마등령)에 이어
무박산행으로 나선다. . 전날(8일) 밤 열시에 출발하여 잠을 청하지만 잠이 오질 않아 안대를 착용한 채 달린다.
01:30. 내설악 휴게소에 도착하여 누룽지탕 야식과 잠시 휴식.
02:30. 미시령(767m) 도착. 너덜지대의 위험한 구간을 밝은 시간에 오를까하여 소등하고 휴식을 취해 보지만 잠도 안 오고,
시동을 끈 차 안은 숨쉬는 일조차 소음으로 들릴 것 같은 분위기라 답답함을 느낀다. 차라리 산행이 나겠다는 말이 나온다.
03:30. 차에서 내리니 한 치 앞이 안 보일정도로 안개가 자욱하고 바람이 세니 체감온도가 영하의 날씨 같아 두껍게 입고 출발 한다. 랜턴을 비추며 들머리 들어서니 입산을 금지 시키는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어 조심조심 제치며 내딛는다.
현재 이 구간은 입산통제구간으로 비공식으로 산행을 한다. 잡목 숲에 몸을 숨기듯 나무사이를 빠져 나가려니
작은 나무들이 시야를 가려 길이 안 보인다. 앞서서 먼저 가던 이들이 부르는 소리가 아래에서 들린다. 벌써 길을 잘 못 들었나 보다.
십여 분 후 능선에 오르니 머리 바로 위에서 오리온 좌의 별빛이 유난히 다가오며 별들이 떨어질듯 가깝다.
초승달처럼 가느다란 그믐달이 동쪽 하늘에 걸려 있고 아래엔 시가지의 불빛이 보인다.
04:00. 가파른 오르막에 모두들 두꺼운 옷을 벗어 챙긴다. 방금 전에 비가 내린 듯 물이 맺힌 나뭇잎을 스치며
돌과 진흙을 밟고 잡목 숲을 올라‘천연보호구역’이란 작은 돌기둥 표지 옆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사방이 어두운 나무사이로 완만하게 걷다 다음 돌기둥 표지를 지나 우측으로 돌리니 돌길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산행시간 한 시간쯤 오르면 삼거리가 있고, 좌측으로 울산바위로 이어지는 길이라는데 어두워 잘 보이질 않는다.
노거수가 많고 돌 들이 크다. 바람이 차가워 다시 두꺼운 옷을 걸친다.
04:40. 커다란 바위들로만 이어지는 너덜지대가 시작되고, 먼 곳은 보이질 않아 랜턴 빛에 보이는 가까운 곳만 보며
안전산행을 위해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오른다. 계속되는 너덜지대에 고도가 높아지며 나무가 없어 바람이 세차다.
바위들이 크고 바위 사이 사이 공간도 넓어 네발로 기어오르니 불편하고 힘이 배로 든다.
다행히도 방향을 알리는 희고 굵은 밧줄과 벌집 모양의 무늬로 감싼 야광 막대가 줄을 따라 몇 군데 있어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오른다. 백두대간 구간 중 걷기 힘든 구간 중의 한 곳이다. 그러나 어두운 시간에 걸으니
다른 곳이 보이질 않아 시간은 절약된다. 눈과 얼음에 미끄러지고 빠지는 적설기 때가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안전을 위해 탄력적으로 산행함에 감사하며 오르다 불빛으로 보니 바위 틈에 자라는 작은 구상나무 잎 뒷면이 유난히 희다.
05:10. 아래에 운해가 뿌옇게 깔린 모습이 보이고 동쪽 시가지의 불빛이 환하다.
05:20. 나무들과 삼각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상 같은데 정상 아닌가보다. 다 오르고 보니 산 전체가 바위로만
채워진 봉우리다. 다시 숲길로 내리고 오르는 사이에 동쪽 하늘에 서서히 푸른 기가 돌며 여명으로 이어진다.
캄캄하던 공간에 설악산 특유의 뾰족한 바위 산줄기의 모습이 나타난다. 잎 끝이 말린 채 빨갛게 물든 단풍잎도 보인다.
숲 속으로만 걸으니 하늘이 안 보여 산 위에서 일출을 보고자 부지런히 걷는다. 봉우리인가 하고 오르면 능선으로 연결되고
또 올라 봐도 정상 같지가 않다. 이곳은 나무만 무성할 뿐 천연보호구역으로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 아무런 표지가 없다.
능선에서 나무 사이로 빨갛게 물드는 구름이 보여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여유를 갖는다.
06:10. 멀리 동쪽 바다 위 검은 가스층 속에서 시뻘건 불덩이가 조금씩 보인다. 불덩이가 점점 둥근 모습으로
변하니 앞에 보이는 나무들이 실루엣으로 변한다. 완전히 동그란 모양으로 변하며 빛을 발하니 구름은 더 붉고
장엄한 순간을 만든다. 같은 산행을 하면서도 조금 앞선 사람이나 뒤에 오는 사람은 나무나 바위에 가려 볼 수가 없는
사람도 있으니 옆에서 같이 바라보는 일행과 서로 소원을 말하라며 축하의 말을 주고받는다. 산행하다 말고
십 여분을 기다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날이 밝으니 걷기가 훨씬 편해졌다.
고도가 낮은 아침 햇살에 나무 끝에 매달린 아침 이슬이 영롱하고 좌측 발 아래로 보이는 설악동 입구 계곡물이
구불대는 뱀처럼 보인다. 멀리 대청봉과 시설물까지 보이는 중청과 산줄기들의 음양이 뚜렷하다.
우리가 걸어야 할 능선의 바위모양이 날카롭게 보이고 오른쪽 봉우리들 사이엔 운해가 가득 차 있다.
06:30. 암봉으로 되어 있는 봉우리에 오르니 더 오를 곳이 없다. '천연보호구역'이란 작은 돌기둥만 있을 뿐 아무런 표시가 없다.
이곳이 바로 황철봉 정상(1381m) 이다. 찬란한 아침 햇살이 고사목 끝에서 빛난다. 사방으로 조망되는 설악의 아름다운
산상 아침 풍경에 반해 내려가기가 싫다. 어두워서 안 보일 땐 속도가 빨랐으나 사방이 잘 보이니 둘러보기 바쁘다.
가야할 방향을 자세히 몰라 나무에 달린 리본을 확인하며 바위들이 너무 크고 가파라서 앞으로 걷지를 못하고 뒤로 돌아서서
네 발로 너덜지대를 내려딛는다. 다른 일행들은 다 어디까지 갔는지, 건너편 봉우리의 너덜지대 바위 사이로 몇 사람만 보인다.
07:20. 육산으로 되어있는 저항령. 좌측으론 저항령 계곡을 지나 신흥사로 내려갈 수 있고, 우측으론 길골을 지나 백담사로
갈 수 있는 고개 이다. 다시 1249.5봉의 너덜지대를 오른다. 단풍으로 물든 낮은 나뭇잎들과 풀잎이 역광에 아름답다.
설악동 좌측으로 달마봉과 속초시의 두 호수가 아스라이 보인다. 둘이서 산행하는 팀이 웃옷을 벗고 일광욕을 하며
불을 피워 먹음직스럽게 아침을 해결하는데 국립공원인 아름다운 산과 동화되지 않는 모습이라 눈에 거슬린다.
08:00. 1249.5봉 바위에 올라 일망무제로 거침없이 트인 공간을 둘러본다. 하늘도 산도 보이는 것 모두 푸르다.
바위 틈에 피어있는 구절초와 산부추 등 가을꽃들이 우측 산줄기 아래로 보이는 운해와 잘 어울린다.
뒤에 오는 마지막 일행 두 분을 만나 암봉의 절벽 같은 바위 틈을 비집고 반대로 내려서니 대청봉과 중청, 서북능선의
귀떼기청봉이 시원스레 한눈에 보인다. 진록색의 앞 봉우리부터 초록색으로 그리고 하늘을 닮은 푸른색까지 변하는
겹쳐진 산줄기들의 색을 감상하며 전망 좋은 곳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무엇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시간.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 한일인지... 보름전에 입원하여 병상에 계신 모친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다.
양해를 구하고 나오긴 했으나 간호하는 동생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1250봉에서 이어지는 능선은 바위로만 연결된 곳이라 신이 빚어놓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우회로를 이용해
능선까지 올랐다 내려서기를 반복하며 전진한다. 바위 틈에 빨갛게 물든 단풍이 투명하리만치 파란 하늘과 짝을 이루니
가을 여행은 따로 떠나지 않아도 되겠다.
10:00. 너무 뒤 쳐질까봐 빠른 걸음으로 쉬지 않고 우회로와 능선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부지런히 걸으니 좌측 멀리 황철봉 줄기
뒤로 울산바위가 얼굴을 내민다. 휘어진 산줄기 따라 걸으니 울산바위가 가까워지고 속초 앞 바다 해변의 파도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돌아서서 지나온 바위 봉우리들을 다시 한 번 감상하고 숲 속으로 내려서니 앞서가던 일행들이 도토리를 줍고 있다.
10:30. 다시 이어지는 1327봉을 오르는 너덜길. 이곳의 돌은 크기가 작아 밟을 때 나는 소리가 악기 소리처럼 청아하고
맑게 들린다. 오를수록 울산바위가 제 모습을 다 들어내고 황철봉과 우회로를 이용했던 바위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10:50. 날카로운 바위들을 밟으며 1327m의 정상에 오르니 오래된 삼각점 작은 기둥이 서있다. 대청에서 설악동으로 뻗은
화채능선, 서북능선, 기암괴석이 일품인 공룡능선 등 설악의 모습을 사방으로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쾌청한 날씨에 입체감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설악의 웅장함, 이럴 때의 희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날개달린 개미들이 행사가 있는지 떼거지로 날며, 달라들어 물기도 해 오래 서있지 못하고 마등령을 향해
숲 속으로 내려딛는다. 좋은일이 있으면 축하해주려 했더니 자기네 구역 침범했다고 달려드는 듯 하다.
11:00. 마등령 정상(1320m). 석 달 전에 공룡능선을 걸어와 비선대쪽으로 내려섰던 곳이다. 미시령부터 걸어온 구간이
'출입금지'라는 안내판이 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많은 사람들을 모두 범법자로 만드는 안내판이다.
이런 안내판이 백두대간 종주 중 입장료가 비싼 국립공원 몇 군데에 있다. 높은 바위에 올라 다시 한 번
좌측의 멋진 바위들과 대청과 중청, 공룡능선과 인사하고 마등령을 향해 꽃 사진을 담으며 내려딛는다.
11:15. 마등령(1240m). 오늘 이곳에 발자국을 찍으니 설악산 구간은 진부령에서 한계령까지 끝나고 남설악인
점봉산 구간이 남았다. 지금 현재 점봉산도 출입이 금지되는 구간이다. 미시령에서 이곳까지의 소요시간이 8시간.
오늘의 대간 종주는 여기서 끝을 맺고 오세암 방향으로 내려선다. 백담사까지 가려면 아직도 7.4km 남았다.
여름 물난리에 많이 훼손된 계곡을 따라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딛는다.
12:05. 오세암(五歲庵). 원래 백담사의 부속 암자로서 관음암이라 하였다.
다섯 살 난 아이의 성불을 기리기 위해 암자를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다.
신도들이 갖고 온 과일을 마당 평상 바구니에 담아 놓고 마음껏 먹으라기에 고마운 마음으로 일행과 나누어 먹는다.
봉정암 가는 갈림길을 지나고 물소리 요란한 수렴동계곡과 숲 속 넓은 길을 따라 영시암(13:25)을 지나 백담사 앞에 도착하니 14:30. 6.5km 떨어진 용대리 주차장까지는 셔틀버스로 이동, 하산주 시간 동안 뒤에 오는 일행 기다려 18:00. 귀가 행 출발.
무슨 징크스라도 있듯 설악산 산행 때마다 늘 돌에 부딪쳐 상처가 났었는데, 많은 시간 동안 바위 길만 걸었어도
다친 곳 없이 지낸 하루,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신 산우님들께 감사드린다.
미시령에서 백담사까지의 오늘 산행 소요시간 11시간.
2006.9.19(火). 백두대간 종주 43구간을 종주하다.
(미시령~너덜지대~황철봉~저항령~1250봉~마등령정상~마등령-오세암-백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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