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 집 근처에서 출발하는 지하철 첫 차에 오르니 빈자리 없이 채워진다. 이 새벽에 모두들 어디를 가는 걸까?
올 1월 백두대간 28-2구간(소백산 국망봉~고치령) 중 늦은맥이에서 잘못인줄 알면서도 고치령으로 못가고
처음 나온 3명을 쫓아 다른 방향으로 가며 고생했던 구간을 다시 마무리 하기위해 타 산악회에 참석하러 가는 중이다.
08:30. 치악 휴게소. 행락철이라 그럴까? 사람들이 많이 붐빈다. 초가을의 아침 햇살이 미치도록 눈부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09:35. 풍기 톨게이트를 나와 소수서원 앞을 지나 산 속으로 뻗은 길을 지나는 시골의 전형적인 가을풍경이 풍요롭다.
역광으로 돋보이는 길가의 금계국과 코스모스, 벼 이삭의 황금빛이 아름답다. 까만 차양의 인삼 밭, 비닐로 덮은 포도 밭,
나무에 달린 빨간 사과, 다랑이 논의 누렇게 익어가는 벼 포기가 풍성한 가을을 예고한다.
10:00. 좌석리 도착. 미리 부탁해 둔 이장님 차로 고치령까지 이동 한다. 1톤 트럭이라 인원이 많을 때는 두 번에 나누어
이동하는 이곳은 대간 산행 중 한 군데만 있는 이벤트라서 댓가를 지불하는 만큼의 재미도 있다.
두 번째의 기회인데 여전히 기사님 옆, 앞자리에 앉는다.
10:20. 고치령(760m) 도착. 고치령에서 역 산행으로 국망봉까지 11.1km 중 늦은맥이까지의 9km가 오늘 채워야 할 구간 이다.
먼저 왔을 때 목적지까지 종주를 못해 늘 마음에 담아두던 곳이라 혼자만의 쾌재를 부른다. 44구간(미시령~진부령) 후기글에서
얘기 했듯이, 고치령은 소백산에 있는 부석사가 ‘태백산 부석사’라 일컬어지는 태백산 자락과 소백산 자락이 만나는 곳이다.
또한 고치령에는 '太白山山靈之位', '小白山山靈之位'라는 글이 적혀 있는 위패 두 개가 모셔 있는 산신각이 있는데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온다.
<세조 3년(1457년), 단종임금이 영월로 유배될 무렵 조카를 보호하다 형인 수양대군의 눈 밖에 난 금성대군도
순흥 도호부로 유배지를 옮겨 가는데, 이때 금성대군이나 밀사가 단종을 만나러 고치령을 넘어 영월에 다녔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위 운동에 실패하고 목숨을 잃은 두 사람은 각각 태백과 소백을 지키는 산신령이 되어
고치령에 산신각을 세우고 당시의 순흥, 풍기 사람들은 이 산신각을 찾아와 치성을 드렸다는 이야기다.>
다시 와서 반갑다고 영접해 주는 장승들과 인사 나누며 셔터 누르는 동안 산에서 모두 끌어다녔는지 일행들이 금방 안 보인다.
10분간을 헐떡이며 치고 올라서고 잡목 우거진 오솔길을 내려딛는다. 볕은 따가우나 그늘이라 시원하다. 완만한 경사각을 올라
겨울 눈 속에 오르던 구간의 봉우리를 돌아 본 후 된비알을 헐떡이며 트래버스(Traverse, 비탈을 z字로 오르는 일) 한다.
10:45. 헬기장을 거쳐 다시 시원한 숲 오솔 길. 싱싱하던 산철쭉과 신갈나무 잎이 색을 바꾸며 낙엽을 채비하고 있다.
계속되는 오르막, 구조대 팻말에 예전과 다르게 Taxi 호출번호가 보인다.
10:55. 형제봉 갈림길(1032m). 좌석리에서 나중에 출발한 선두가 어느새 따라와 앞에 치고 나간다.
완만한 능선에 가을꽃이 보이나 그냥 지나친다. 늘 함께다니던 일행들이 아니라 조심 스럽다.
11:00. 마당치(910m). 팻말을 보니 역시 반갑다. 겨울에 왔을 때 못 보고가 무척 아쉬워했던 곳이다.
보라색의 투구꽃과 바위사이에 피어있는 구절초가 나무사이로 비치는 역광에 아름답다.
11:35. 해발 1031m의 무명봉. 이정표가 잘 되어 있는 갈림길 나뭇가지 하나에 리본들이 유난히 많다.
12:00. 바위 길을 지나 올라서니 고치령 5.8km, 국망봉 5.3km 이정표. 오늘 목표(늦은맥이)의 반은 왔는데, 날씨가 좋으니
비로봉까지 더 가서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에만 몇 번 왔던 곳이라 욕심이 생긴다.
국망봉에서 3.1km를 더 오르느라 고생스럽고 오후라서 더 피로 할 텐데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바람이 닿으니 촉촉하게 젖은 옷이 서늘하다. 물과 과일로 목을 축이며 칼로리를 보충 한다.
12:10. 헬기장 지나 연화동 갈림길(1015m). 팻말이 오래되어 날개 하나가 떨어져 뒹군다. 능선에 오르니 나뭇가지 사이로
상월봉이 보인다. 양옆이 가파른 능선인 우거진 잡목 숲에 바람이 시원하고 컨디션은 날씨따라 최상이다.
12:25. 우량경보기 팻말을 지나 무명 봉. 잡목 숲 사이를 무난히 지나며 시선을 잠시 바닥으로 향하다 아래로 늘어진
굵은 나뭇가지와 박치기를 한다. 눈길 한번 잘못 주면 무슨 일이건 일어나니 방심을 금물이다.
해발 1030봉을 지나 된 비알, 고사리과 관중 잎이 누렇게 변하니 온 산이 황금산 같다.
13:00. 처음부터 앞서서 가느라 안 보이던 후미대장님이 기다려줘 점심식사를 같이 한다.
오랜만에 손수 도시락을 싸들고 나왔더니 소풍 온 기분이다.
13:15. 국망봉 3km 이정표, 완만한 경사로지만 포만감으로 힘들다. "국망봉에 두시까지 도착해야 비로봉에서
하산 할 수 있다"는 선두에서의 연락이 온다. 아니면 국망봉에서 초암사 방향의 지루한 길로 하산해야 한다.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가 푸른 하늘 배경으로 산뜻하다. 높은 곳에 오르니 나무의 키가 작아 상월봉과 국망봉이 보인다.
13:35. 신선봉 갈림길(1270m). 남쪽으론 국망봉, 북서쪽은 구인사로 가는 삼거리, ‘마당치 6.5km, 비로봉 5.2km,
구인사 출입통제’라는 팻말이 있다. 구인사라는 단어를 보니 전에 있던 팻말(일부 파손 된)이 아니다.
겨울에 왔다가 다른 곳으로 빠졌던 곳인데 ‘늦은맥이재’라는 표지가 없어 그랬을까? 구인사 방향은 출입통제라고
표시되어 있는데도 왜 그리로 갔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필경은 무심결에 앞 사람들만 쫓아간 것이리라.
이곳까지가(9km, 3시간 15분 소요.) 오늘 구간(늦은맥이~고치령)의 보충산행 목적지이다.
그러나 일행과 차를 만나려면 최소한 국망봉까지는 더 가야 한다.
1~2분 거리에 율전으로 가는 갈림길 이정표가 있고 ‘늦은맥이재’라는 표시는 없다.
투구꽃 색을 닮은 용담과 빨간 열매가 많고 암봉인 상월봉을 오르는 길은 울긋불긋 단풍이 요란하다.
14:00. 상월봉(1394m). 꼭대기에 오르니 날씨가 좋아 사방으로의 가시거리가 넓다. 돌아서서 구인사 방향으로 넘어가던
신선봉 줄기와 고치령에서부터 걸어온 산줄기 능선을 바라보니 겹겹으로 겹쳐진 모습과 많은 잠자리 떼가 보인다.
상월봉에서 국망봉으로 오르는 능선은 진분홍 철쭉 물결을 출렁이던 봄과 달리 단풍으로 갈색을 이루고 있다.
둥근이질, 용담, 산 부추, 구절초 등... 많은 가을 야생화가 천상화원을 이루고 있으나 후미대장님의 재촉으로 마음이 급하다.
14:25. 국망봉(1420.8m). 신라의 마지막 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패망을 안타까워하며 경주 쪽을 보고 통곡했다는
전설 많은 봉우리다. 남서쪽으로 비로봉, 북동쪽으로 상월봉, 북쪽으로 신선봉(1389m)의 거대한 암봉이 시야에 들어오지만
지체 할 시간이 없다.
14:30. 영주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초암사(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짓기 전에 있었다는 절) 갈림길 이정표.
후미대장님이 기다리며 하산을 묻기에 "비로봉까지 더 가겠다"고 하니 "사진 찍지 말고 빨리" 달리란다.
이곳 초암사 하산로는 길이가 길어 지루한 곳이다.
반대에서 오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기록 갱신이라도 하려는 듯 속도를 낸다.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과 꽃 사진을 담으며
밧줄 잡고 바윗길을 오르고, 발이 안 떨어지는 철계단을 부지런히 오르며 나무계단에선 달리다시피 잠시 오버페이스 한다.
15:20. 비로봉(1439.5m). 소백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국망봉과 3.1km의 구간은 겨울철이면 칼바람으로 유명한 곳이다.
죽령에서 올라서면 차례대로 만나는 중계소, 천문대, 연화봉, 죽령 건너편의 도솔봉 줄기가 한 눈에 보인다.
계절과 날씨좋은 날 국망봉부터 이곳까지 덤으로 걸었으니 기념으로 사진 찍고 풍기시와 죽계호를 바라보며 하산한다.
역광에 비치는 빨갛고 예쁜 단풍을 담으며 가파른 돌길을 내려딛고, 샘터 이정표를 지나 나무계단을 내려선 후
넓은 길을 내려간다. 전망 좋은 바위에서 도솔봉과 비로봉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해발 1150m의 양반바위 앞을 지난다.
하늘색이 새삼스레 예쁘고 역광에 비치는 나뭇잎이 아름답고, 땅에 떨어져 발에 밟히며 부서지는 갈잎의 냄새가 좋다.
16:00. 해발 1000m의 비로사 갈림길을 지나니 6일 전(17일)에 제13호 태풍 ‘산산’에 의해 굵은 노송 하나가 넘어져 있다.
노송사이의 내리막에 잠시 세상사 시름 잊고 두 팔 벌려 심호흡을 한다.
재생타이어 계단을 내려서고 돌길을 지나 빽빽한 송림 사이를 걷는 호젓함이 좋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무에 달린 밤송이가 제법 큰걸 보니 민가가 가까운가 보다. 아직은 해가 산위에 걸려있는데 풀 섶의 풀벌레 소리가 시끄럽다.
길가의 벌개미취와 참취 꽃이 예쁘고. 콘크리트 포장도로 옆의 물소리가 제법 크다.
16:30. 비로봉 3.7km, 주차장 1.8km 이정표를 지나 작은 보도 블럭이 깔린 곳을 내려서니 과수원에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눈길을 끈다. 삼가 야영장 앞을 지나니, 넘어가는 햇살을 배경으로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17:20. 주차장 도착.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7시간.
2006. 9. 23.(土). 백두대간 종주 28-2구간을 고치령에서 비로봉까지 다시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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