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조 병화 - 구 름, 작은 들꽃, 추억.

opal* 2007. 8. 3. 12:45

 

 

구  름

 

                              趙 炳華

 

내가 네게 가까이 하지않는 까닭은

내겐 네게 줄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네게서 멀리 멀어져 가는 까닭는

내가 감내할 수 없는 것을

너무나 많이 너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영 너를 잊고자 돌아서는 까닭은

말려들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곳에서

어지러운 나를 건져내기 위해서다

 

이렇게 혼자 내가 떨어져 있는 까닭은

가진 것도 없고, 머물 곳도 없지만

한 없이 둥 둥

편안하게 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터무니 없이 오만한 너의 인간의 자리

허영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너의 거드름 피하여

이만큼 떨어져 있는 자리

 

아, 이 무구한 하늘

내가 너를 멀리 하고자 하는 까닭은

가진 것도, 머물곳도 없어도

홀로 마냥 떠 있을 수 있는

넓은 그 하늘이 있기 때문이다.

 

그지없이 외롭다 해도

한없이 적막하다 해도

맥없이 넓은 이 자유

 

내가 영 너를 잊고자 하는 까닭은

네게 줄 아무것도 내겐 없기 때문이다.

 

 

작은 들꽃

 

                     조 병화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나 나나 이 세상에선

소유할 것이 하나도 없단다

 

소유한다는 것은 이미 구속이며

욕심의 시작일 뿐

부자유스러운 부질없는 인간들의 일이란다

 

넓은 하늘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소유라는 게 있느냐

훌훌 지나가는 바람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애착이라는 게 있느냐

훨훨 떠가는 구름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미련이라는 게 있느냐

 

다만 서로의 고마운 상봉을 감사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존재를 축복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인연을 오래오래

끊어지지 않게 기원하며

이 고운 해후를 따뜻이 해 갈 뿐

 

실로 고마운 것은 이 인간의 타향에서

내가 이렇게 네 곁에 머물며

존재의 신비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짧은 세상에서

이만하면 행복이잖니

사랑스러운 작은 꽃들아

 

너는 인간들이 울며 불며 갖는

고민스러운 소유를 갖지 말아라

번민스러운 애착을 갖지 말아라

고통스러운 고민을 갖지 말아라

 

하늘이 늘 너와 같이 하고 있지 않니

대지가 늘 너와 같이 하고 있지 않니

구름이 늘 너와 같이 하고 있지 않니

 

 

추억

 

                    조 병화

 

잊어 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 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닥에

 

잊어 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잊어버리자고

앞 산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나흘 닷새 엿새

 

여름가고 가을 가고

나물캐는 처녀무리 사라진 겨울 이산에

 

앞산 기슭 걸어보던 날이

나흘 닷새 엿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