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이 외수 - 8 월, 그대여, 놀.

opal* 2007. 8. 12. 21:41

 

 

8 월

           

                  이 외수

 

여름이 문을 닫을 때까지

나는 바다에 가지 못했다

흐린 날에는

홀로 목로 주점에 앉아

비를 기다리며 술을 마셨다

막상 바다로 간다 해도

나는 아직 바람의 잠언을 알아 듣지 못한다

 

바다는

허무의 무덤이다

진실은 아름답지만

왜 언제나 해명되지 않은 채로

상처를 남기는지

바다는 말해 주지 않는다

 

빌어먹을 낭만이여

한 잔의 술이 한 잔의 하늘이 되는 줄을

나는 몰랐다

 

젊은 날에는

가끔씩 술잔 속에 파도가 일어서고

나는 어두운 골목

똥물까지 토한 채 잠이 들었다

소문으로만 출렁이는 바다 곁에서

 

이따금 술에 취하면

담벼락에 어른거리던 나무들의 그림자

나무들의 그림자을 부여잡고

나는 울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리석다

 

사랑은

바다에 가도 만날 수 없고

거리를 방황해도 만날 수 없다

단지 고개를 돌리면

아우성치며 달려드는 시간의 발굽소리

 

나는 왜 아직도

세속을 떠나지 못했을까

흐린 날에는

목로주점에 앉아

 

비를 기다리며 술을 마셨다

인생은

비어 있음으로

더욱 아름다워지는 줄도 모르면서

 

 

그 대 여

  

                이 외수

 

그대여

 

한 세상 사는 것도

 

물에 비친 뜬 구름 같도다

 

가슴이 있는자

 

부디 그 가슴에

 

빗장 채우지 말라

 

살아 있을 때는 모름지기

 

연약한 들꽃 하나라도

 

못견디게

 

사랑하고 볼 일이다

 

 

 

                  이 외수

 

이 세상에 저물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누군가 그림자 지는 풍경속에

배 한척을 띄우고

북받치는 울음을 삼키며

뼈 가루를 뿌리고 있다

 

살아 있는 날 들은

무엇을 증오하고 무엇을 사랑하랴

나도 언젠가는 서산머리 불타는 놀 속에서

영혼을 눕히리니

 

가슴에 못다한 말들이 남아 있어

더러는 저녁 강에 잘디잔 물비늘로

되살아 나서

안타까이 그대 이름 불러도

알지 못하리

 

걸음마다 이별이 기다리고

이별 끝에 저 하늘과 놀이 지나니

이 세상에 저물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