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글

9월(의 詩)- 오 세영, 목 필균, 함 형수, 이 외수, 문 인수, 나 태주,

opal* 2007. 9. 1. 17:53

 

 

9월   /오세영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모스 들길에서는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모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

9월   /목필균
                      
9월이 오면
앓는 계절병

혈압이 떨어지고
신열은 오르고
고단하지 않은 피로에
눈이 무겁고

미완성 된 너의 초상화에
덧칠되는 그리움
부화하지 못한
애벌레로 꿈틀대다가
환청으로 귀뚜리 소리 품고 있다


9월의 시(詩)   /함 형수                 

하늘 끝없이 멀어지고
물 한없이 차지고
그 여인 고개 숙이고 수심(愁心)지는 9월.
기러기떼 하늘가에 사라지고
가을잎 빛 없고
그 여인(女人)의 새하얀 얼굴 더욱 창백하다.
눈물 어리는 9월.
구월(九月)의 풍경은 애처러운 한 편의 시(詩).
그 여인은 나의 가슴에 파묻혀 우다

9월  /이외수

가을이 오면
그대 기다리는 일상을 접어야겠네
간이역 투명한 햇살 속에서
잘디잔 이파리마다 황금빛 몸살을 앓는
탱자나무 울타리
기다림은 사랑보다 더 깊은 아픔으로 밀려드나니
그대 이름 지우고
종일토록 내 마음 눈시린
하늘 저 멀리
가벼운 새털구름 한 자락으로나 걸어 두겠네

9월   /문 인 수
                    
무슨 일인가, 대낮 한 차례
폭염의 잔류부대가 마당에 집결하고 있다.
며칠째, 어디론가 계속 철수하고 있다.
그것이 차츰 소규모다.
버려진 군용 텐트나 여자들같이
호박넝쿨의 저 찢어져 망한 이파리들
먼지 뒤집어쓴 채 너풀거리다
밤에 떠나는 기러기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몇몇 집들이 더 돌아와서
또, 한 세상 창문이 여닫힌다.

9월이   /나태주
                
9월이
지구의 북반구 위에
머물러 있는 동안
사과는 사과나무 가지 위에서 익고
대추는 대추나무 가지 위에서 익고
너는
내 가슴 속에 들어와 익는다.

9월이
지구의 북반구 위에서
서서히 물러가는 동안
사과는
사과나무 가지를 떠나야 하고
너는
내 가슴 속을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