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日記

평창 절구봉.

opal* 2005. 12. 13. 10:17

 

서울의 아침기온 -10℃. 갈 곳은 전남 화순의 백아산. 호남지역엔 어제 저녁부터 대설주의보가 있었고

아침에도 내리고 있다는 예보를 듣고 나선다.


05:30. 출발. 폭설 속에 갇혀 몇 시간을 길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던 일요산행이 불과 열흘 전.

마지막 회원까지 다 차에 오른 후 눈 없는 강원도 평창의 절구봉, 거문산, 금당산으로  행선지가 바뀐다.

 

08:00. 문막 휴게소.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데 밖이라 손이 시렵다.

09:00. 장평IC. 도착지에 다 오도록 유리창의 하얀 성애가 그대로 있다. 들머리를 묻고 싶어도 날씨가 추워 사람이 전혀 안 보인다.


09:30. 서둔이 골 들머리. 콘크리트 포장의 마을길로 들어서니 축사 건물이 골짜기 입구를 막고 있어 건물 옆으로 올라

낙엽송 숲길로 들어선다. 군데군데 풀잎에 눈 모양으로 맺혀있는 서리발이 아름답다. 오늘은 또 얼마나 추울까? 은근히 걱정된다.


10:05. 가파른 오르막을 조금 오르니 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따라 평행선처럼 구불대는 평창강의 얼음이

반은 눈에 덮힌 채 오전 햇살에 반짝인다.


10:20. 상수리나무 숲에 밟히는 낙엽소리가 꽤 바삭 거린다. 어느 지역에선 눈이 너무 많이 와 걱정이고 이곳은 너무 메말라 있다.

길도 아닌 가파른 오르막에 금방 땀이 흐른다. 바위라면 네 발로 기어오르기라도 할 텐데...

경사도가 급한 풀과 낙엽뿐인 오르막에 한 발자국을 올려 놓으면 두 발자국이 뒤로 미끄러질 정도다.


10:55. 전망 좋은 탑 바위. 경사가 급하니 오르면서 보던 모습이나 절구봉 정상 가까운 이곳에서 보는 것과 별 차이 없다.

반듯반듯하게 잘 정리된 탁 트인 벌판과 반대편 산기슭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밭을 덮고 있는 흰 눈의 모습이

차디찬 겨울날씨에 상큼하기 그지없다. 미쳐 잎을 떨구지 못한 채 말라붙은 상수리 잎 사이로 보이는 쪽빛의 하늘을 보니

기분이 한결 상승 된다. 이렇게 기분이 좋은걸 보면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늘 잊지 않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11:05. 1045m의 절구봉. 반경 몇 m정도만 온통하얀 세상이다. 바위틈에서 올라오 일정한 온도의 바람이

주변과의 기온차이로 나무와 풀에 아름다운 상고대를 연출하고 있다. 바위틈에서 나오는 바람이 여름에는 무척시원 하겠는데

정상엔 팻말도 이정표도 아무것도 없고 단지 삼각점 하나만 있다. 경북 의성 빙계 계곡의 바위 틈 풍혈과 빙혈에서 나오던

시원한 바람이 생각 난다. 그곳에도 지금 이렇게 하얀 세상의 모습일까?

절구봉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하산 길은 경사도가 급한 내리막에 눈과 낙엽으로 더 미끄럽다.


11:45. 1000m급의 봉우리를 몇 개 오르내린 후 힘들게 다시 오르니 1025m의 암봉.

세찬 바람을 피해 바위에 가려진 곳에서 뜨거운 물과 떡 간식 후 암릉으로 이어지는능선으로 가는데 고도가 높으니

쌓인 눈이 안 녹아 바위 길에 위험을 더 한다. 날카로운 능선만을 따라 오르내리니 길은 오로지 한 길이라 잃진 않겠다.


12:40.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서 임도를 건너 다시 오르막 능선.  모진 바람이 뺨을 에인다. 이렇게 바람 불고 추운 날

맛있는 것 먹으며 집에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자고 일부러 이 고생을 사서하고 있담?


13:05. 이정표도 산 이름조차 없는 능선에서 한숨 돌리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 우측 아래로 보이던 마을이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다. 바람 소리가 태풍만큼 크다. 숯을 만들기 위해 베었을까?

많은 참나무들이 잘려 나뒹굴고 있다. 마사 토 위에 깔린 낙엽마저 없어지면 산사태로 홍수의 위험이 크겠다. 


13:20. 1028.4m의 봉우리 정상. 이곳에도 삼각점 하나만 달랑 있다. 저 멀리 앞에 더 높은 봉우리의 거문산이 보이고

좌측 멀리 금당산이 보인다. 돌아보니 걸어온 봉우리들이 엄청 뾰족하다. 그래서 내려설 때 그렇게 가파랐나보다. 

화아분화 된 뽀얀 수피의 진달래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돋보인다. 일행이 적어 그런지 아님 재미없는 산이라 그런지

옆에서 누군가가 방목된 기분 이란다. 1진의 계획은 금당산까지 갔다가 하산 하는 것으로 시작을 했는데 거리가 너무

길기도 하거니와 2진으로 금당산에만 오르려했던 사람들은 산불 감시원이 지키고 있어 산행을 못했다며 법장사 계곡으로

하산 하라는 연락이 와 거문산, 금당산은 바라보기만 하고 능선 길 도중에서 내려서는데 선두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13:50. 후미 팀의 몇 명이 임도에 모여 함께 내려서는데 송전탑 앞에서 길은 끊기고, 방향을 잘 몰라 길도 없는 가파른 내리막,

얼굴과 온 몸을 나무 가지에 긁히며 한 동안을 내려서고 다시 계곡 따라 내려서니 거문산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진다.


14:30. 법장사 앞 도착. 거문산으로 가는 팻말을 이제야 처음으로 본다. 아스팔트길을 따라 고대동 입구의 주차장으로 향한다.


14:50. 주차장 도착.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피로감이 몰려오는데 장소불확실한 낙엽 쌓인 산에서 개인의 불찰로

잃어버린 물건을 찾겠다며 차를 갖고 다녀오는 사람이 있어 늦게 도착한 몇 명은 추위에 밖에서 떨며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4시가 지나서야 귀가 행 bus출발.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5시간 20분.


2005.12.13.(火). 평창의 절구봉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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