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 출발. 07:45. 차창 밖에서 비치는 찬란한 햇빛에 눈이 부시다. 어제 오후엔 천둥번개와 소나기가 요란을 떨며,
휘몰아치는 바람에 조금씩 남아있던 나뭇잎들이 모두 군무하며 떨어지더니...
08:20. 처음 들려보는 황간 휴게소. 찬바람을 맞으며 된장국으로 아침식사.
10:20. 건천 휴게소. 거리가 멀어 두 번 쉰다. 11:25. 등억리 온천지구 옆의 간월산장 앞 도착. 홍류 폭포와 칼바위쪽으로
신불산에 오르는 등산로가 있지만 험로라서 간월재로 오른다. 돌이 많은 가파른 오르막에 옷이 금방 땀에 젖어
겉옷을 벗고 뱀처럼 구불대며 오르는 콘크리트 임도를 가로 지르며 오르느라 임도를 몇 번씩 만났다 헤어진다.
너무 힘들면 임도를 따라 오르기도 하고. 울긋불긋하게 아직도 매달려 있는 단풍잎들이 아침햇살의 역광에 예쁘다.
12:45. 간월재 도착. 임도 옆에 파이프를 타고 가늘게 흐르며 떨어지는 물을 받아마시고, 침목으로 잘 깔아놓은 전망대에 올라서니
가슴이 탁 트이며 산자락의 비경이 펼쳐진다.일주일 전에 만났던 천황, 재약산이 또 왔느냐며 건너편에서 맞아준다.
우측에 우뚝 서있는 간월산은 눈도장만 찍고 좌측의 신불산 쪽으로 방향을 돌려 공비토벌 격전지 안내판’을 본 후
억새보호를 위해 잘 정비된 나무 계단을 오르는데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한줄기의 가을바람이 아닌 온 산에 겨울바람이 몰아친다.
이래서 산 위에 나무가 없구나... 입던 옷 선물로 받은 윈드자켓이 이번에 처음으로 큰 힘을 발휘한다. 잘 정비된 계단을 따라
올라서다 돌아보니 간월산을 차도가 휘감고 있으며 차들도 몇 대 주차되어 있고 간월산 너머로 가지산과 운문산이 보인다.
13:25. 계단과 돌길을 따라 정상 같은 바위에 오르니 작은 소나무 아래 희고 긴 의자가 ‘쉬리’ 영화에서
주인공 남녀가 앉았던 것처럼 분위기는 좋은데 겨울엔 추워 보이니 여름엔 그늘이 없어 무용지물이겠다.
신불산을 따라 좌측으로 능선을 걸으니 우측 뺨을 때리던 바람이 이젠 좌측 뺨을 때린다.
13:35. 신불산 정상(1209m). 눈덮힌 알프스엔 아직 못 가봐 알 수가 없고, 주변으로 보이는 가지, 운문, 재약, 천황, 간월,
영축산 등 1000m가 넘는 일곱 군데의 준봉을 묶어 영남 알프스라 부르는데 그 중에 가지산 다음으로 높다한다.
모나지 않고 둥글게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의 산세 따라 간월산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능선의 신불평원의 물결치는 억새가 사자평원 못지않다.
억새 사이로 다니니 더 넓고 화려해 보인다. 솜사탕 같은 화려한 흰 꽃은 다 날아가고 철지난 갈색 몸매만 남아 출렁이는
가을 정취가 모진 바람 속에서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게 만드는 걸 보면 혼자 다녀도 행복한 시간임에는 틀림없나 보다.
14:15. 바람이 잠깐 쉬는 아늑한 곳에 억새 방석을 깔고 앉아 김 선생님 내외분과 점심.
12월부터는 하산 후에 점심을 준다 했으니 산위에서 먹는 도시락도 아마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14:55. 억새의 바다를 헤엄쳐 영축산 정상에 도착하니 이름이 새겨진 표지석이 세 개가 있는데
'취서산과 영축산'의 표지석엔 높이가 1059m라 적혀 있고, ‘영취산’이라 새겨진 표지석엔 해발 1075m라 적혀있다.
석가모니의 설파 장소가 인도의 영축산이고 한문표기 독수리 鷲(취)字를 '축'으로도 읽어 생기는 혼돈은 그렇다 치고,
해발 높이가 달라서야 말이 되는가?
15:00. 암봉으로 이루어진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고 내려서는데 하루 종일 걷던 길과는 대조적으로 가파르기가
완전히 다른 절벽 상태다. 정상 까진 빤하게 보이는 길이라 표시지가 없어도 잘 왔는데 암봉에서 이어지는 크지도 않은 나무들
낙엽사이로 난 발자국을 따라 내려서는데도 복잡하다.
15:15. 제 멋대로 생긴 바위들과 전망을 찍으며 내려서는데 단애의 낭떠러지 절벽에서 꽃사랑님이 무섭다며 양보하신다.
내려다보니 밧줄은 다 삭아 허름한데 부러진 막대하나가 매달려 있고 아래엔 오래되고 가느다란 통나무가 사다리처럼
바위에 걸쳐있는데 밟으면 무너져 내릴 것 같다. 먼저 내려서신 김 선생님만 믿고 줄과 막대를 잡고 몸을 내리니
발 딛을 곳이 안 보여 줄에만 매달리는 심정으로 한 손 한손 교대로 잡으며 내려선다. 무서움을 많이 타는 꽃사랑님을
안타까운 맘으로 올려다보지만 아무도 도울 수가 없고, 안타까운 시간이 흐른다. 우회로가 어딘가에 있을 텐데 알 수가 없다.
15:40. 뒤 일행들 내려오기 기다리며 조금씩 조금씩 내려서다 낙엽이 많고 길이 이상하여 서서 기다리는데 오지를 않는다.
낯선 사람 두 분이 내려 서기에 물으니 통도사 가는 길이 맞는다는데 너무 험해서 쫓아가지를 못하고 일행을 부르니 대답이 없다.
호루라기를 꺼내 불고 지도를 보고 나침반을 드려다 보지만 영남 쪽엔 인연이 없어 그런가 하산 지점인 통도사엘 안 와 봤으니.
가까스로 어렵게 다시 올라 호루라기를 부니 후미대장님이 다른 방향의 아래에서대답한다. 얼른 쫓아가 함께 내려선다.
임도를 가로지르며 빽빽한 솔밭 지름길로 내달리다 일행과 또 떨어져 임도 따라 구불구불 내려서는데 맞는지 틀리는지...
16:45. 정상에서 보았던 놀이시설과 아파트가 나무사이로 보인다 . 방향을 모르니 아무 곳이고 일단 내려가서
택시라도 타면 되겠지... 돌아서서 우뚝 솟은 영축산을 바라보니 우리가 내려선 쪽이 제일 절벽이다.
임도를 버리고 예쁘게 지어진 집들이 있는 쪽의 밭으로 내려서서 저수지에 도착해 낚시하는 분에게
통도사 가는 길을 물으니 멀리 보이는 아파트 옆의 산기슭 이란다.
해는 다 넘어가고 빤히 보이는 벌판길이 왜 이리 먼지. 환타지아에서 나오는 택시를 타고 통도사입구에 도착하니 17:05.
천년의 고찰인 불보사찰 통도사를 오늘도 또 못 돌아보고 귀가행 버스에 오른다.
오늘의 산행 소요시간 5시간 30분.
2005. 11.29(火). 영남의 알프스 신불산과 영축산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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