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日記

감악산 산행날.

opal* 2005. 12. 24. 15:03

 

 

다른 날과 같은 시각 집을 나서네. 우리가 가야할 남덕유산 눈꽃을 상상하면서,

어쩌면 올해 마지막 산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약속시간 십 분 지나도 차가 안 와 궁금해서 담당자께 전화를 하네.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네. 나름대로 사정이 있나 보구나.

다시 십 분 흐른 후  또 걸어보니 신호는 가는데 여전히 받지를 않네.

이럴리가 없는데 폭설 내려 못 가면 행선지를 바꾸겠지...

지난주도 출발 후에 산행지를 바꿨는데. 혼자서 나름대로 생각해 보네.


하루 중 가장 추운 새벽 찬바람에 손과 얼굴이 꽁꽁 얼어 오네.

다시 십 분 흘러 삼십 분이 지났네. 또 걸어 보니 음성메모 남기라네.

발 얼고 몸까지 동태가 되어가네. 무슨 일이 있기는 있는 모양일세.

어제 간다던 제주도 물거품 되더니 오늘은 이게 또 무어람?


해도 안 뜬 새벽이라 다른 사람에겐 전화도 못하네.

후기 글에 댓글 달며 만나자던 그 사람 이럴 때 웬 일로 생각이 나네. 그렇지만 이 새벽에...


여기 이렇게 오랫동안 서 있는 것 보다야 더 났겠지. 용기 내어 걸어보네.

"언니 취소 되었대요 모르셨어요? 공지 글에 남겼다고 누가 연락해 줬어요".

아뿔사! 나만 바보짓 했군. 이럴 때 쥐구멍은 어디에 있는 걸까?

"언니 그러지 않아도 오늘 번개산행이 있으니 같이 가요

지금 밥 하려고 준비해요". "그럼 내 밥도 싸와". 생각 없이 대꾸 하네.


집으로 돌아오니 식구들이 놀라네. 챙피하여 둘러대네.

‘차가 고장 나 좀 늦게 떠나니 몸 좀 녹이고 다시 나간다’고.

따뜻한 이불속에 발 넣으니 얼었던 몸이 노곤해지네.

무조건, 그냥 이대로 마냥 더 자고 싶네.


문자 오는 소리에 눈이 떠지네.

‘언니 밥까지 많이 해서 싸고 있어요. 꼭 나오세요’.

실없이 대꾸한 게 마음에 걸리네. 갈까 말까 몸은 다 녹아 가는데.


내 도시락 메고 다닐 사람 생각하니 맘이 자꾸 불편해 지네.

그래 늦더라도 어디한번 가보자. 새벽에 멨던 가방 다시 메고 나서네.

산에 가기 위하여 지하철 이용하네. 오랜만에 타 보니 그것도 괜찮네.


시외버스 터미널 도착하니 일곱 명 모였네. 반갑다고 모두들 손을 내미네.

차는 떠나는데 앞자리는 텅 비고 뒷자리 두 줄에 여덟 명만 옹기종기.

버스는 온전히 우리가 전세 냈네. 웬 수다가 그리도 많을까?

남들이 봤으면 처음 나온 소풍 인 줄 알겠네.


무거운 짐 덜자며 뒤에서 먹을 것 꺼내네.

새벽부터 고생한 나  제일 많이 먹으라네.

과일 먹고 과자 먹어 배 든든해도 남보다 산은 더 못 타겠지?

한 시간 반 걸려 적성에 도착했네. 다른 버스로 갈아타는데 십 여분 걸리네.


산행 시작 되니 눈 산행 못 했다며 조금 쌓인 눈 보고도 즐겁다고 떠드네.

하하 호호 룰루 랄라 모두 입 벌어지네. 숨을 헐떡거리며 잘들도 올라가네.

오르다 말고 간식도 먹네. 땀이 날만 하면 힘들다고 또 쉬자네.

눈 덮힌 바위길이 꽤 미끄럽네. 아이젠 안차도 잘들만 올라가네.

통신시설 있는 정상 멀리서도 잘 보이네.


구불구불 임진강이 흰 눈으로 덮혀 있네.

오를수록 좋은 전망, 사진 찍히기 바쁘네.

진행이 늦어져도 바쁠 것이 없다네.

뒤쫓기 바쁜 산악회보다 여유 많아 좋다네.


675m 정상에 도착했네. 생각보다 바람 없으니 밥을 먹자네.

여기서 먹자커니 저 아래서 먹자커니.

남들 먹는 것 보고 우리도 펼치네. 난 밥도 없이 물과 과일 뿐 일세.

송년회 날 받은 상품 보온밥통 따뜻한 밥 그릇 내 몫이라며 건네주네.

덥석 받아 움켜쥐니 막걸리가 먼저라네. 이 몸은 막걸리에 탈나는 바보라네.


모두들 맛있다며 칭찬을 안 아끼네. 얻어먹는 나만 말이 없다네.

참으로 염치도 없는 사람이네. 고맙다는 말도 없이 마구마구 퍼넣네.

남의 것 먹을 땐 이런 거라고 맘과 다른 행동으로 웃으며 보여주네.


두 부부 팀은 밥에다 라면까지 준비 했네.

이걸 다 어떻게 먹나? 반찬의 가지 수가 셀 수 없이 많다네.

안성에서 뽑아온 배추김치 잘 익었네. 따끈한 미역국, 알타리, 취나물, 깻잎

무 고추 장아찌, 각종 전, 도라지, 고사리, 김, 땅콩 감자 졸임, 멸치볶음... ,

막내가 준비한 맨 두부는 그냥 먹어도 고소하네.


옆에서 영양밥 먹어보라 권하시네. 밤과 은행 넣고 기름기가 자르르.

못 이기는 척 한 수저 먹어 보니 배불러도 맛있네.

내 것이 아니라서 더 맛있네. 이 은혜 언제 갚나 걱정이로세.

긴 의자 하나에 빙 둘러서서 게 눈 감추듯 잘들도 드시네.

상큼한 추위 찬바람 속 커피 맛이 또 사람 죽이네.


내려가다 말고 다시 올라 임꺽정 굴로 가니 주변이 모두 바위뿐 일세.

그늘이라 눈이 많아 더 미끄럽고 경사도가 급하여 옆길로 도네.

임꺽정 굴의 밧줄 바닥으로 떨어졌네. 굴이 꽤 깊고 위험하게 생겼네.


위험을 불사하고 밧줄잡고 오르니 몇 명은 겁난다고 우회로로 간다네.

위험하고 힘든 만큼 재미를 느끼며 미끄러운 바위에선 엉덩이로 썰매 타네.

평평한 군 시설의 정상보다 임꺽정 봉우리 훨씬 멋지네.

바위와 어우러진 소나무들 하나 하나 모두 모두 멋지네.


시원하게 탁 트인 사방을 바라본 후 이제 슬슬 하산을 준비하네.

미끄럽고 위험한 바위에서 다른 팀 남자가 디딤돌하며 받쳐주니

용기 좋은 아줌마 고맙다며 바로 '오빠 '소리 나오네.


내려서는 하산 길은 눈이 있어 미끄럽고, 낙엽 많아 미끄럽고,

돌 많아 미끄럽고, 경사 급해 미끄럽네. 그래도 모두들 안전하게 내려섰네.

서로를 보살피고 보듬는 맘씨들이 너무 너무 고마워 하루가 즐겁네.


버스타고 적성오니 빨간 산타복 학생들 거리에서 캐롤 송 불러주네.

갈아 탈 버스 있어 구경 못하고 잽싸게 사진만 얼른 찍네.

못 잔 새벽잠 여파가 오는 건지, 버스에 앉으니 피로가 달려드네.

나 많이 자라고 한 없이 가고 있네. 장거리 산행만큼 시간이 걸리네.

차 밀리는 퇴근시간 내게는 달콤하네. 마음껏 졸았어도 서울은 멀었다네.


오늘 하루 이렇게 보낼 줄은 아침까지 몰랐었네.

더불어 행복한 하루 이렇게 저무네.

함께 한 산우들 모두 고맙고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구료.


2005. 12. 24.(土)  紺嶽山에 올랐더니 京畿 五嶽 중 하나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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